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월 16일 오전 7시 30분 제주발 김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박 2일 동안 '한국입양홍보회'에서 주관하는 반 편견 입양교육 강사 신규 양성과정 1차 연수를 받기 위해서였다.

2007년 6월, 지금은 여섯 살인 딸 소린이를 생후 27일 되던 날 공개 입양했다. 위로 오빠가 있었지만 순전히 딸 하나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냥 아들이든 딸이든 아무거나 하나 낳고 말지 뭐 하러 입양 같은 걸 하냐"는 어머니의 싫은 소리를 외면하고 나서였다.

어머니 말씀 대로 '아들이든 딸이든 아무거나 낳'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 부부는 간절하게 딸을 원했다. 그러나 딸을 낳아야겠다고 제 아무리 굳게 결심을 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부부가 일부러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입양이었다.

입양을 결심한 우리 부부에게 주위 사람들은 사랑과 감동의 메시지를 아낌없이 전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머니처럼 "왜 하필 그 어려운 선택을 하려 하느냐?"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이유란 것이 '사랑과 감동'이 어린 순정한 그 무엇이 아니라 순전히 딸을 키우고 싶다는 것이라는 데 대해서도 의아해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입양해서 키우는 자식이, 아무려면 제 피가 섞인 자식만 하겠냐는 그런 마음임도 숨기지 않았다.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입양을 결심하기 전에 그런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숱한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한번쯤은 생각해보지만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가 내 아이가 되어서 생길 수 있는, 그러나 겪어보지는 못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상상해 보다 그만 포기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생의 길에 마주쳐야 하는 무수한 선택의 순간 어떤 불온한 상상을 짓누를 수 있는 건 역시 절실함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아이가 필요했고 그 아이가 딸이기를 절실하게 바랐던 것이다.

가슴으로 낳은 딸 '소린이'... 이제 여섯 살이 됐습니다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양성과정 연수중 2012년 2월 16일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양성과정 중 활동강사의 시연회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양성과정 연수중2012년 2월 16일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양성과정 중 활동강사의 시연회 ⓒ 한국입양홍보회

그리고 그 딸아이는 아주 밝고 건강하게 자라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 여느 가족들처럼 그만 한 나이에 맞게 엄마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저를 끔찍하게 예뻐하는 아빠를 끔찍하게 이용할 줄 안다. 위로 아홉 살 많은 오빠와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오빠가 며칠 안 보이면 보고 싶어 울기도 한다. 여느 집 딸처럼 조잘조잘 집 안에 사람 사는 기운을 불어넣고, 기분이 좋을 때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가족들에게 웃음을 준다.

입양은 단지 가족을 이루는 또 다른 방식일 뿐, 가족들의 삶에는 전혀 특별할 게 없는 보통의 가정형태다. 공개입양은 주위에 널리 아이의 입양사실을 알려 사실을 사실대로 모두가 인식하게 하는, 그래서 그런 사실 위에 서로의 관계를 은밀하지 않고 비밀스럽지 않게 그래서 올바르게 맺어가는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공개입양의 본래 의미는 그 대상이 주위 사람들이 먼저가 아니라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에 있다.

공개입양을 한 부모들은 아이가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알아나가는 때부터 아이에게 입양사실을 알려준다. 물론 한동안 제 엄마에게 '왜 뱃속에서 낳지 가슴으로 낳았느냐'는 원망도 하고, '진짜 배로 낳아준 엄마는 그럼 어디에 살고 어떻게 생겼느냐'는 질문도 하며 자신의 태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그 나이에 걸맞게 한다.

그렇지만 가족들과의 솔직한 소통과 한결같은 사랑의 힘은 곧 아이가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입양사실을 자신의 큰 행복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일반의 인식으로는 비밀입양이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좋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 입양사실이 평생 동안 비밀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중에 성인이 돼서 어떤 경로든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가 겪는 각종 사례를 보면, 심한 배신감과 함께 심지어는 가족들과 의절하는 사태까지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말이 비밀입양이지 알고 보면 주위의 친척들이나 이웃들은 모두 알고 쉬쉬했을 뿐 자신만 모르는 비밀입양인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자신에게만 '비밀입양'이었던 셈이다. '입양'이라는 따뜻한 단어 앞에 굳이 '비밀'이라는 은밀한 의미를 품은 단어가 앞서는 개념의 비대칭은 우리나라의 입양 문화가 그동안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입양'이란 따뜻한 말 앞에 왜 '비밀'이란 은밀한 말이 올까 

입양교육 가이드북 한국입양홍보회의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양성과정 교육자료
입양교육 가이드북한국입양홍보회의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양성과정 교육자료 ⓒ 한국입양홍보회

그래서였다. 내게 끔찍한 딸 소린이의 밝은 미래는 내 인생에도 정말 소중한 미래고, 사회적으로도 국내입양을 포함한 입양문화의 인식전환은 꼭 필요한 미래다. 나뿐만 아니라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인 우리나라의 입양문화가 좀 더 밝고 미래지향적인 문화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많은 입양부모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이 만든 단체가 필자가 소속된 한국입양홍보회(누리집 바로가기)다.

이 단체가 2003년 경기도 과천에서 유치원생부터 초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반편견 입양교육'이 어느덧 만으로 10년이 되었다. 2006년부터는 보건복지부의 교부금을 지원받고 교육과학기술부의 협조를 얻어 그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되었다.

2005년 과천시 소재 초등학교 대상 반편견 입양교육 전후에 입양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29%의 부정적인 응답이 2%로 줄어들고, 63%의 긍정적인 응답이 93%로 증가했다. 반편견 입양교육은 비록 수업시간 한 시간을 할애 받아 시행하는 짧은 순간이지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생명에 대한, 그리고 입양과 가정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아주 호의적으로 강렬하게 바뀐다는 것을 설문조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입양부모들로만 이루어진 반편견 입양교육 강사들은 전문적인 연수를 통해 올바른 입양문화를 미래의 어른들인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하지만 핏줄에 대한 맹목적인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가족문화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만큼 핏줄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은 여전히 소수의 그리고 소외된 형태로 인식된다.

작년 한 해 한국입양홍보회가 전국에서 한 반편견 입양교육 교육생 수가 56개 기관 1만6500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소린이가 편견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아빠는 공부했습니다

반편견입양교육 강사들 2012년 한국입양홍보회 반편견입양교육 강사양성과정 수료 후 기념촬영
반편견입양교육 강사들2012년 한국입양홍보회 반편견입양교육 강사양성과정 수료 후 기념촬영 ⓒ 한국입양홍보회

제주도에서 경기도 과천에 있는 강의실까지 두 차례에 걸쳐 자동차와 비행기와 전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면서 달려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이유는 솔직히 내 딸의 미래에 대한 아비의 절실함이 먼저였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부디 내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입양가족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 되기를, 입양아는 그저 생모로부터 버림받은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부모를 만나야 했지만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이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보호받는 자연인일 뿐이라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인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한다. 사람에게 향한 편견의 심각한 문제는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 때문에 정당하지 못한 대접을 받기 쉽다는 사실이다.

반편견 입양교육은?
 전국의 초중고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교육사업입니다. 교육내용은 생명의 소중함, 가정의 소중함, 요보호아동의 실태, 입양의 의미와 절차, 입양가정의 생생한 사례 등으로 구성되며 보건복지부의 교부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해당 학교에서는 별도의 비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각 학교 선생님들의 신청을 환영합니다. 학교가 아닌 단체나 모임 등에서도 입양에 대한 강의와 교육을 원할 경우 언제든 문의바랍니다. ※교육문의: 02)503-8301~2, 한국입양홍보회(www.mpak.org)
'사랑의 입양교육'이라는 말처럼 달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딱딱하게 '반편견 입양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그만큼 입양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 현실을 사는 입양부모들에게는 더 절실하게 와닿기 때문일 수 있다. 시린 한 겨울 동안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강사 자격을 얻은 나는 다시 따뜻한 가족이 있는 제주도로 날아왔다. 그리고 얼었던 땅이 녹고 노란 유채가 피어나는 봄이 목전에 와 있다. 그동안 한국입양홍보회에서는 보건복지부의 후원과 교육과학기술부의 협조를 통해 전국에 있는 초중고대학교에 '반편견 입양교육'에 대한 안내공문을 발송했다.

2012년 올 한 해도 스물다섯 명 안팎의 입양 부모들로 구성된 전문 강사들은 전국의 학교와 단체를 돌며 미래의 부모들에게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그리고 공개입양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입양#한국입양홍보회#반편견입양교육#입양교육 강사#공개입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