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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열두어 살 적 야트막한 창문의 여탕을 훔쳐보다가 목욕탕 주인한테 들켜 귀싸대기 맞은 후로 여탕에 대한 호기심을 접고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아내가 목욕탕 다녀오는 날에는 나도 덩달아 신이 납니다.

창피한 얘기지만 군대 말년휴가를 나오니 어머니께서 세 살 아래의 아우가 구치소에서 정부가 공짜로 주는 밥을 먹고 있답니다. 웬 구치소냐 물으니 아우 녀석이 여탕을 훔쳐보다가 콩밥을 자시고 있다는 사연입니다. 집안 내력치고는 참 그렇지만 내가 해왔던 짓이 있으니 아우만 나무랄 일도 아니지요.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꽃구경하세요.
▲ 금꿩의 다리꽃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꽃구경하세요.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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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내가 목욕탕을 다녀오는 날이면 내가 왜 신나느냐고요? 궁금한 게 많아서이지요. 그리고 아내는 그 궁금증을 제법 풀어주기도 합니다. 여탕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대개가 이러한 것들입니다.

'남탕은 치약도 있고 비누도 있고 수건도 몇 장씩 마음대로 써도 되는데 왜 여탕은 수건도 따로 주고 비누도 없느냐?'
'여자들도 탕의 타일바닥에 가랑이를 벌리고 누워서 자기도 하느냐?'
'여자도 한증막에 빙 둘러 앉아서 음담패설을 즐기느냐?'

이 외에도 궁금한 것이 많지만 글이 길어질까 무서워 일일이 모두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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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꿩의바람꽃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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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질문을 해대는 내가 재미가 있었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웠는지 묻지도 않은 것까지 보태어 곧잘 대답을 해주더랍니다. 아내의 충실한 대답 덕분에 매일 마주치는 동네아줌마들의 남에게 감추고만 싶은 신체적 특징을 제법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제 동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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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린내풀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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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사진관을 열자마자 안경점을 하는 친구가 들어오더니 어제 너 때문에 휴대폰가게 사장이 부부싸움을 크게 했다는 겁니다. 저는 아무런 기억이 없어 눈만 멀뚱멀뚱 뜨고 바라보고 있는데 전해주는 사연이 기가 막힙니다.

어제 친구 넷이서 빙 둘러 앉아 대나무 숯에 소 막창을 구워놓고 술을 한잔 하는데 한 친구가 마누라 얘기를 꺼내더랍니다. 마누라 흉이나 봤겠지요. 그런데 점잖게 술 마시고 앉았던 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얘기했다는 겁니다.

"저 녀석  마누라 허벅지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지도 그려져 있다. 이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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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광산딸나무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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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내에게 들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나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맹세코 없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사우나에서 마주치는 친구인데 얼굴 마주칠까 피해다니 게 생겼습니다. 헬스클럽은 관두고라도 매일 아침 진달래 입에 물고 물장구치며 놀던 버릇 때문에 사우나를 못 가는 게 참으로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니다. 그나저나 이 녀석 달래려면 술값 꽤나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나는 죽을 맛인데 안경점 사장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야, 휴대폰가게 마누라 허벅지에 우리나라 지도 그려진 건 어떻게 봤냐? 너 재주 좋다!"


태그:#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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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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