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후쿠시마 사태'가 지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아직도 상황은 진행 중이고,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지진과 해일로 한 달 뒤 사망자는 1만4천 명을 넘었고, 행방불명자도 1만2천 명에 달했다. 이재민 11만 명은 피폭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1년이 지나가는 동안 이들 중 200여 명은 목숨을 잃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임을 알면서도 왜 그들은 원전을 고집했을까. 원전 피해가 세계 여러 나라에 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과연 일본의 원전사고로부터 무엇을 내다봐야 할까. 이 세 가지 궁금증이 지난 1년 동안 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은 그 궁금증을 없애줬다.
정남구의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과 쓰루미 슌스케 외 여럿이서 쓴 <사상으로서의 3·11>. 앞의 책은 <한겨레신문> 특파원인 정남구 기자의 후쿠시마 사태에 관한 일련의 취재기록이라면, 뒤의 책은 그 사태를 두고 일본 내 사상가, 평론가, 활동가 등 다양한 시각을 지닌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데 엮은 것이다.
"실제 3·11 대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지진에 의한 건물 붕괴가 아니라, 대부분 쓰나미에 의한 것이었다. 2011년 3월 12일 아침 <요미우리신문>은 11일 오후 11시 경찰청 집계를 인용해 사망자가 110명, 행방불명자가 350명이라고 보도했다. 2011년 3월 12일 석간에서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합해 120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이는 실제 피해보다 엄청나게 적게 집계된 것이었다."(<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 31쪽 중)
이는 지진 피해보다 쓰나미 피해의 심각성을 알린 정남구의 취재기록이다. 진도 6강 이상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를 도입한 건축물이 많아 지진에 의한 붕괴 피해는 적었지만, 10미터 높이의 거대한 쓰나미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이 밀어닥쳤던 까닭에 피해가 컸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원전 폭발사고에 있었다. 그때 1호기와 3호기와 2호기에서 연일 폭발 사고가 일어났는데, 더 큰 문제는 사용후 핵연료에 있었다고 한다. 그걸 냉각시키기 위해 헬기로 바닷물까지 투입했는데, 결국은 하이퍼소방대의 진압으로 제자리에 서게 됐다고 한다. 헌데 그곳에서 새 나오는 방사성 물질은 30km내에 사는 주민들을 모두 몰아냈고, 그로부터 2011년 4월 25일까지 45명이 원전사고로 죽었다. 원전난민은 무려 11만 명에 달했다.
그들은 과연 '원전지진 재앙'을 예측하지 못하고서 그런 화를 당한 걸까. 아니다. 이시바시 가쓰히코 고베대학 도시안전연구센터 교수는 1997년 10월과 1999년 8월 27일에도 원전지진재앙이 앞으로 반드시 일어날 걸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노우라 고지 도호쿠대학원 교수는 <일본삼대실록>에 나오는 869년 7월 9일에 일어난 '조간(貞觀) 지진'을 연구한 결과, 800년에서 1100년에 그와 비슷한 지진이 한 차례 더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대지가 무너지는 순간 약탈이 시작된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원자력발전을 고집했던 걸까. 사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한 우라늄 원자폭탄과 8월 9일 나가사키에 터트린 플루토늄 핵폭탄으로 인해, 일본은 그 전부터 추진해온 핵무기 개발을 전면 중단했다고 한다.
문제는 1954년부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그 여론 몰이는 미국의 도움을 얻어 정치적인 야망을 달성코자 했던<요미우리>의 사주인 쇼리키가 했다고 한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슬로건은 어떻게 피폭국가에서 활개를 칠 수 있었을까. 전후 성립된 냉전 체제에서 소련과 핵 경쟁에 나선 미국은 일본에 원자력을 추진하도록 권했다. 그리고 정치인- 행정관료 - 산업계 - 매스컴 - 학계로 짜여진 '원자력 마피아'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슬로건을 사회에 유포시켰고, 그때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자가 당시 <요미우리>의 사장이었던 쇼리키 마츠타로다."(<사상으로서의 3·11> 27쪽 중)
3·11 원전피해가 세계 여러 나라에 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사상으로서의 3·11>을 통해 여러 사상가들은 한결 같이 이렇게 말한다. '대지를 지키고, 세계를 지키자'고 말이다. 하나의 대지가 무너지는 순간 그 조화가 무너지고, 점차 약탈과 전쟁과 테러로 가속화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해를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원전 가동은 중단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원전이 '제어된' 원폭이라는 점에서 원전과 원폭이 구별된다고들 하지만 수사에 불과한 말이다. 원폭이 다른 고전적인 대량살상무기와 다른 점은 폭발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잠재적 에너지는 티끌만큼도 소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폭이 폭발하면 가공할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아래서 벌어지는 일이 아무리 처참하다고 해도 이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원폭 투하로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이 마주하는 것은 종지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휴지부이며, 그것은 언제까지고 미해결로 남겨지는 과잉된 문제의 지속이다."(<사상으로서의 3·11> 250쪽 중)
2024년까지 원전 13기 추가 증설... 문제 있다
후쿠시마로부터 약 1240km에 떨어져 있는 우리는 무얼 내다봐야 할까. 현재 우리나라는 21기의 원전이 돌아가고 있고, 원전 개수는 일본의 절반 수준이지만 국토면적의 원자력 발전 용량은 일본을 능가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2024년까지 원전 13기를 추가로 증설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60%까지 끌어 올리고, 2020년까지 6조 원을 원전에 쏟아 부을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안전지대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도 후쿠시마처럼 언제라도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지진 때문은 아닐지라도 군사적 대치 상황이 그걸 가늠케 한다는 것이다. 그것 외에도 지난 5년 동안 아홉 차례나 사고가 난 '고리원전'을 통해서도 떠오르는 게 있다. 누적된 피로가 쌓이면 어느 한 순간 그게 폭발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문제는 또 있다. 핵 폐기장 건설이 바로 그것. 그곳은 대부분 안전한 곳보다 정치적 반대가 적은 곳에 들어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수명이 30년에 불과한 원전을 해체하려면 1기당 1조 원에 육박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그것들이 누락되거나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원자력 에너지가 가장 값싼 에너지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원전 건설을 적극적으로 말려야 하는 건 아닐까. 언제라도 시한폭탄처럼 터질지 모르는 원전가동도 점차 다른 에너지로 준비하고 중단시켜야 하는 건 아닐까. 그것이 곧 우리의 대지를 지키고, 세계를 지키는 길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3·11 사태 이후 우리가 1년 동안 논의하고 내다봤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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