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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검찰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한 때는 '배워먹지 못한 대통령의 막말 리스트' 중 최고의 언사로, 또 한 때는 인간 노무현의 솔직함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발언으로 소환되었던 바로 그 말.

 

문뜩 그리운 그의 음성이 떠올랐던 건 뉴스를 통해 본 이영호 청와대 전 고용노사비서관의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이영호 비서관은 그 자리에서 <오마이뉴스>가 연일 터뜨렸던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문제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를 했다. 그런데, 그 모양새와 내용이 참으로 한심했던 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사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쯤 되면 청와대가 진짜 막가자고 하는 것 아닌가.

 

후안무치의 극치였던 기자회견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용어는 현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이고 정치공작이다"며 해명하고 있다.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용어는 현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이고 정치공작이다"며 해명하고 있다. ⓒ 유성호

이영호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은 말 그대로 후안무치의 극치였다. 비록 사과의 형식은 갖췄지만, 그는 사과할 뜻도, 사과할 내용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 모든 것이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와중에 벌어진 사소한 실수가 야권의 정치공작과 언론의 호들갑으로 인해 큰 범죄마냥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김종익씨에 대한 사찰은 단지  착각해서 일어난 것이고, 자료삭제는 그 삭제의 대상이 불법자료가 아닌 공무상의 자료였으므로 애초부터 증거인멸이 될 수 없다고 항변하는 이영호 비서관. 과연 그는 자신의 진술이 모순으로 점철돼 있음을, 그리고 그 스스로 사건의 몸통이라 밝혀도 아무도 믿지 않음을 알고는 있을까.

 

그러나 개인적으로 기자회견의 내용보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사과를 하러 나왔다는 이영호 전 비서관의 태도였다. 비록 그는 서두에 허리를 숙이며 국민 여러분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했지만, 이후 원고를 읽는 그의 모습에서 사과하는 이의 송구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찾아보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떳떳했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 군기반장'이라는 명성대로 기자회견 내내 호통을 쳤다. 기자들을 상대로, 또한 국민들을 상대로 훈계하듯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자신이 바로 그 '몸통'이라고 우기면서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의 뻔뻔함. 이영호 전 비서관의 모습에서 왕년의 장세동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전두환에게 장세동이 있었다면, 이명박에겐 이영호가 있는 것인가.

 

특히 그의 목소리는 야당을 언급할 때마다 톤이 높아지고 격해졌다. 감히 추측하건대 그것은 억울함과 두려움에서 기인한 듯했다. 겉으로는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때도 자료삭제는 있었다며 억울해 했지만, 그것은 깃털에 지나지 않은 자신이 몸통을 자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억울함 때문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번 사태가 결코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더욱 더 번지리라는 예측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나타나는 과잉반응으로 해석됐다. 옛말에도 방귀 뀐 놈이 더 화를 낸다고 하지 않았는가.

 

 청와대 정문과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
청와대 정문과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 ⓒ 권우성

총선 이후로도 대통령의 임기는 무려 8개월이나 남는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기자회견 혹은 해명은 앞으로도 계속해 나올지도 모르겠다. 4대강부터 시작해서 천안함, 저축은행 등등. 아마도 정권 말이 되면 장진수 주무관과 같은 내부고발과 양심선언이 줄을 이을 것이다. 

 

당장 청와대의 수장 이명박 대통령을 생각해보자. 이영호 전 비서관과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나도 닮았다.

 

우선 소통불가.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이는 결국 자신의 경험이 전부라는 그들의 오만함 때문 아닐까 기자회견 도중 뜬금없이 등장했던 이영호 전 비서관의 어린 시절 타령도 같은 맥락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의 전매특허인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마찬가지로, 이영호 역시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시키지 못한 채 스스로의 도그마에 갇힌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뻔뻔함'은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르겠다.그들은 그 어떤 지적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혹은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도 함께 저지르는 관행이기 때문에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운운하는 것이나, 이영호 전 비서관이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에 대해 되레 호통을 치는 것은 결국 그들의 관점에서 스스로가 떳떳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고함·호통은 없길 바란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의 안위를 위해 비슷한 사람들을 뽑았을 테지만, 이로 인해 청와대는 얼토당토 않는 나르시즘에 빠지고 말았다. 자신들의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민간인 사찰을 하고, 이를 덮기 위해 자료를 삭제하고, 또 돈봉투를 제시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게다가 이처럼 명확한 증거를 앞에 두고도 큰 소리 치는 뻔뻔함이란. 

 

총선이 끝나고 나면 청와대는 계속해서 청문회를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야당은 현 정부의 부정부패를 물고 늘어질 것이며, 여당은 현 정부와 분명한 선을 긋기 위해 비리캐기에 적극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그때는 청와대가 이번과 같은 촌극을 벌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영호#민간인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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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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