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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 대한 배려

나는 3년간(2004년, 2005년, 2007년) 70여 일 동안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의 한 숙소에 머물면서 가까운 곳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한국전쟁 사진 자료를 검색하였다. 매일 아침 8시 10분 숙소를 출발하였는데, 그 시간은 미국 초등학교 등교시간과 일치하여 가는 도중에 이따금 스쿨버스의 뒤를 따랐다.   

작품명 : Another Dream
 작품명 : Another Dream
ⓒ 박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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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스쿨버스는 드문 드문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를 태웠는데, 스쿨버스가 설 때는 상대편 차선의 차들도 모두 정지한 채, 아이의 승차 장면을 지켜보았다. 나는 여러 번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는 어린이를 비롯한 여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 사회 밑바닥에 깔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견주면 지난날 우리 사회는 어른 중심의 사회요, 강자,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더욱이 산 자보다 죽은 자를 위한 관념에 사로잡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1907년 12월, 경기도 양주에 집결한 전국 의병장들은 회의를 열어 통합의병부대로서 '13도창의대진소'를 성립시키고, 이인영(李麟榮)을 총대장으로 추대하였다.

1908년 1월 말, 13도창의대진소는 전체적인 편제를 정한 직후부터 즉시 서울 진공작전에 돌입하였다. 이때 진동창의대장 허위(許蔿)는 3백 명의 선발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후발부대의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사를 치르기 위해 문경 고향집으로 급히 귀향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허위가 전투 현장에서 군사장 직책을 물려받는 일이 벌어졌었다.

그 당시 사회의 윤리관으로서는 부친의 장례는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문제로 용인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과 전투 직전 아버지의 초상을 치르고자 대장이 집으로 달려가는 것은 한낱 코미디로 대의를 그르치는 일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고루한 유교문화가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 근본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주말 사람들로 북적이는 북촌 골목
 주말 사람들로 북적이는 북촌 골목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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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은 두려운 존재다

사실 일찍이 공자도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하여 후배들이란 두려운 존재라고 하였지만, 사람들이 이 대목은 귀담아 듣지 않아 우리 사회의 개혁이 정체되어 마침내 나라까지 망하는 비운을 맞았던 것이다.

인류의 문화와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은 사제관계의 맥이 이어져온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바, 예수의 12제자, 석가모니의 10제자, 공자의 70제자들이 있었기에 그분들의 사상과 학덕이 후세에 빛날 수 있었고, 길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 내 글은 머리말이 길고 거창해졌다. 이달 초 한 제자가 개인전을 연다고 초대장을 보내왔다. 사실 나는 이즈음 쓰고 있는 작품 마무리로 조금 바빴지만 옛 훈장을 잊지 않고 초대해준 데 그 제자의 고마움이 앞서 원주역에서 청량리행 열차를 탔다. 마침 전시장 갤러리가 안국동으로 나에게는 눈물과 땀, 그리고 추억이 어린 북촌이 아닌가.

꼭 51년 전인 1961년 나는 까까머리 고교생으로 아침저녁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서 가회동, 삼청동, 안국동 골목골목을 누볐다. 나는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옛 추억을 되새기고자 지하철 안국역에서 내려 재동 네거리를 거슬러 올라갔다. 고바우 모자를 쓴 창덕여중 고교생들의 모교 새빨간 벽돌건물은 흔적도 없고 대신 헌법재판소의 우람한 석조건물이 버티고 있었다.

조금 오르자 재동국민학교 건물은 옛날 그대로인데 다만 학교 이름만 재동초등학교로 바꿨다. 가회동 삼청동 길은 다음으로 미루고 갤러리가 있는 안국동 길로 향하자 경기중고등학교 옛 건물이 정독도서관, 서울교육박물관이 되어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거기서 다시 안국동 어귀로 내려오는데 옛 한옥 좁은 골목길이 문화의 거리로 사람들이 바글바글 길을 메웠다.

평화로운 공존에 관한 이야기

한 호떡 집에는 사람들이 20~30미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 팔자만 아니라 동네 팔자도 시간 문제였다. 북촌이 이렇게 문화의 중심지가 될 줄이야.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자 덕성여고, 풍문여고는 강남바람을 타지 않고 옛 터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날 신문을 끼고 이 거리를 지날 때는 왜 그렇게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창피했던지.

마름모꼴의 경기중고생의 명찰에 마냥 주눅이 들었고, 덕성여고와 풍문여고생의 틈바구니를 지날 때는 괜히 얼굴이 붉혀졌다. 그런 며칠이 지나자 '내가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뭘?'하는 자위감이 생기며 나는 장차 "대문호나 신문사 사장이 될 거다"고 호기를 부리니까 그 다음부터는 주눅도 들지 않고 부끄러움도 사라졌다.

작품 앞에 선 아티스트 박세진
 작품 앞에 선 아티스트 박세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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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옛 추억에 잠겨 한창 셔터를 누르는데 "선생님"하고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날의 주인공 아티스트 박세진이었다. 거기서 북촌 순례를 멈추고 전시장 '담'으로 갔다.

갤러리 '담'은 안국동 옛 윤보선 대통령 생가 바로 담을 헐고 만든 전람회장이었다. 아마 그래서 갤러리 이름이 담인가 보았다.

"Another Earth"라는 주제의 전람회는 눈에 익은 생활 언저리의 소품들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들과 회화 몇 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현실이 담아내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은, 나의 의식을 확장시키며 나에게 화두를 던진다. 가상의 공간은 과거 나의 상상 속에 존재했던 소우주와도 같이 나에게 새로운 내적 심연의 공간을 제공한다. 나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면에 위치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조형언어를 찾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나와 작업의 접점을 찾아 나선다. 회화작업과 함께 소개될 이번 사진작업은 인간과 지구 환경, 이 둘의 평화로운 공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 아티스트 박세진의 말

한 제자가 보낸 편지

마침 그 시간에 모인 제자들과 함께 가까운 밥집으로 갔다. 하필이면 안국동 그 밥집이 고3때 내 짝(염동연)의 집이었다. 그때 그 친구는 전남 보성양조장 집 아들로 동생들과 서울 로 유학 와서 그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가난한 짝을 불러다가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하인즈 코헛의 <자기심리학 이야기1 >
 하인즈 코헛의 <자기심리학 이야기1 >
ⓒ 한국심리치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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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청량리에서 원주로 돌아오는 열차를 타고 이런저런 추억에 잠겼다. 다른 날보다 지루한 줄 모르게 열차여행을 마치고 내 집에 돌아오자, 책상 위에 우편물이 놓였다. 봉투를 뜯자 대학에 있는 한 제자가 자기가 쓴 책 한 권을 보내며, 아울러 편지도 담았다.

…제 졸고가 한 권 출판되었기에 선생님께 보내드립니다. 고등학교 시절 백일장을 나갈 때마다 제 등 뒤에서 흐뭇한 눈길을 보내주셨던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교지 편집을 할 때도 "이화는 나중에 글을 잘 쓰겠다"고 격려하셨던 말씀도 저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곱고 예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제 책을 쓰면서 문득 문득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직 미숙하지만 보다 성실하고 책임 있는 학자의 길을 잘 걸어가도록 애쓰려 합니다. - 2012. 3. 홍이화 드림

그날은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로 피로했지만 흐뭇하고 뿌듯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전람회에서 만난 제자들(왼쪽부터 박진경, 강화선, 필자, 강승모, 김영희, 오영경, 박세진)
 전람회에서 만난 제자들(왼쪽부터 박진경, 강화선, 필자, 강승모, 김영희, 오영경, 박세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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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자, #전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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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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