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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젊은 작가들이 모였습니다. 떼를 지어 구럼비 해안을 맴도는 남방 돌고래처럼 떼를 지어 시를 쓰고, 산문을 적으려 합니다. 구럼비가 다시 온전한 구럼비로 남을 때까지 글은 계속됩니다. 이 글은 '구럼비를 생각하는 젊은작가포럼'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 기자말

누군가의 의해 내 삶이 완전히 망가진다. 누군가에 의해 삶의 영토가 완전히 파괴된다. 누군가의 의해 마을이 부서지고 공동체가 와해된다. 이날까지 우리는 전쟁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착각했다.

직장인 S는 위장이 '발파'되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가까스로 정시에 출근했지만, 직장인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대단하게 자랑할 것도 없다. 접대를 위해 입꼬리를 귀밑에 붙이고 열심히 손바닥을 비볐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복잡한 책상과 모니터의 엑셀 화면만이 그를 반길 뿐이다. 숫자가 맞지 않는다. 머리가 아프지만 보고서는 오전까지 작성해야 한다. 정리해고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앞과 뒤 그리고 옆에 경쟁자들이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화약 여러 개가 동시에 터지는 소리 들린다. S는 마른 세수를 하고 자신에게 더욱 집중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S는 살아남는 게 평화라고 생각한다.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고 인터넷 뉴스를 본다. 여성 국회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해 눈물을 흘린다.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가 이건 사기라고 호소한다. '곧 선거가 있군.' 심드렁한 마음이 군사기지처럼 외피를 두른다. 한때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던 청년이 자살했단다. 연예인이 휴식기에 자살할 생각을 했었다고 고백한다. 유럽에 진출한 축구선수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S의 마음에 군함이 들어오고 나간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S의 서핑은 직장 상사에게 곧 걸리고, 그는 인사고과에 불리한 여러 정황에 놓이게 된다. 곧 해고될지도 모른다. 그가 세 들어 사는 집은 재개발 예정지에 있고, 고향의 부모님은 얼마 전 들어선 군 사격장 때문에 귀가 먹고 있다. 유명 학습지 회사의 교사인 아내는 돈을 벌어오기는커녕 다달이 유령회원의 회비를 자기 돈으로 내고 있고, 아들은 엊그제 사준 고가의 점퍼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S에게 펼쳐진, 암울하지만 평범한 미래에 그를 편들어줄 이는 없다. 그는 홀로 살아남아야 하고, 노력하겠지만 실패할 것이다. 누군가, S의 삶을 부숴버린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자

 망설임없는 '그들'의 평화를 위해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는 없어질 위기에 놓여있다.
 망설임없는 '그들'의 평화를 위해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는 없어질 위기에 놓여있다.
ⓒ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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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에게 가해지는 무차별한 파괴는 흔히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자연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파괴하며, 인간성을 앗아간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고, 불법 비디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 땅의 많은 어른 사람들은 그런 전쟁을 몸과 마음으로 겪었고, 다행스럽게도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몸으로는) 겪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전쟁을 겪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그것은 삶을 유지시키는 일이다.

우리의 평화로운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지 못할 일은 없다. 우리의 강과 산, 내 곁에 사람, 내 곁 사람의 먼 곁에 있는 사람, 넓어진 곁에서 이런 미친 세상을 함께 사는 모든 이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단단하게 받쳐준 우리 발밑의 암석까지.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S도 그중 한 명이다. S는 나였고, 나는 나만 지키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속한 국기기관이, 그것도 군과 경찰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사람들을 밀어붙이고 수만 년 된 바위를 폭파할지는 몰랐다. 30년 전 광주에서, 60년 전 제주에서 수많은 S들이 죽어간 것처럼 2012년 지금 강정은 전쟁터다. 악몽이다.

안보를 위해 국가는 해군기지를 설치하려고 한다. 그들은 망설임이 없다. 그들은 단호하다. 그들은 안보를 위한 군함이 들어오도록, 안보만큼 귀중한 경제를 위한 크루즈가 들어오도록, 모난 돌 따위야 조각내 없애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평화를 위해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는 완전히 망가지고, 파괴되고, 부서져서 종국에는 없어진다. 그들의 평화를 위해.

평화롭지 않은 방식으로 평화를 지키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전쟁을 일으킨다. 지켜야 할 것들을 파괴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때린다. 그것이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국가는 괴물인가. 그렇다, 국가는 괴물이다. 괴물의 평화는 우리의 평화와는 다르다. 괴물에게는 괴물의 논리가 있고, 괴물의 방식이 있다. 강정에는 사람과 괴물의 싸움이 한창이다. 그들과 우리는 분리됐다. 용산에서, 강에서, 쌍용차에서 그리고 강정에서…. 우리의 평화는 무너졌다. S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군함이 오가도 나만 살면 되는 걸까

해군이 이틀째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 8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변연식 평통사 공동대표가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해군이 이틀째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 8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변연식 평통사 공동대표가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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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S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누가 그를 지켜줄 것인가. 누가 구럼비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누가 강정을 지킬 것인가. 무너진 개인은 공동체를 지킬 수 없다. 우리는 평화로운가. 살아남은 S는 평화로운 사람인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거기에 포탄을 실은 군함이 나다닌다고 해도, 내가 살아남았으면, S와 그의 가족이 멀쩡하다면, 그것이 평화일까. 그것은 우리의 평화인가, 그들의 평화인가. 우리는 괴물이 되고 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다시 강정을 생각한다.

멈춰라. 지금 멈춰라. 카약을 타고 S가 인간 띠를 만든다. S가 노래하고 S가 춤춘다. 안녕 S? 이제 우리는 조금 평화롭구나.

누군가의 의해 내 삶이 회복된다. 누군가에 의해 삶의 영토가 확장된다. 누군가의 의해 마을 잔치가 열리고, 우리는 서로 눈 마주치며 웃는다. 그날까지 우리는 전쟁 같은 평화를 지속해야 한다. 그들이 강정에서 떠날 때까지.

'구럼비, 우리의 무한한 혁명에게' 홍보 포스터
 '구럼비, 우리의 무한한 혁명에게' 홍보 포스터
ⓒ www.artize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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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서효인 기자는 시인으로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소년 파르타잔 행동 지침>을 썼으며 2011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태그:#강정마을, #구럼비, #제주 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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