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분야는 많은 개혁이 요구되는 분야다. 무상의료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반면, 한미FTA를 비롯한 의료민영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 건강권 실현을 위해서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하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현 의료시스템을 극복하여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해야 한다. 4·11총선에서 부각되고 있는 보건의료분야의 핵심 쟁점을 건강세상네트워크와 보건의료단체연합,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몇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말] |
2012년은 한국 사회시스템을 전환하는 시기가 돼야 한다. 정권교체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상당수준의 복지확충과 분배구조 개선이 가능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 의료는 ▲무상의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의료비 통제기전 마련 등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주장과 의료상업화를 더욱 추진하려는 세력 간의 충돌로 점철되어 왔다.
힘의 균형추는 시장에 있었다. 현재 의료 상업화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전국민건강보험으로 간신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정부는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의료민영화를 통한 경제성장에만 몰두해 왔다. 여기에 한미FTA 체결로 의료 공공성은 심각하게 침해될 위기에 처해 있다.
반면 정치권을 중심으로 무상의료가 복지정책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건강보험으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자는 운동은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을 넘어 전국민 의료보장의 획기적 강화를 주장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의료시스템 개혁논의로 이어져 ▲공공의료 확충 ▲민간 대형병원에 대한 합리적 규제 ▲건강보험 지불제도 등의 정책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무상의료의 실현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일에서부터 민영화 폐지, 미국을 비롯한 제약·의료·보험자본에 대한 대응, 이익단체들의 반대 극복 등이 그것이다. 4·11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보건의료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무상의료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짚어보고자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어디까지 해야 하나일단 건강보험 보장성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보자. 민주통합당의 경우 단계적 무상의료정책을 내놓았다. 입원비에서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본인부담금)은 소득 수준에 따라 연간 100~200만 원 이하로 정했다. 또 건강보험 보장률을 2017년까지 단계적(입원 90%, 외래 60~70%)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환자 간병은 단계적 보험적용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통합진보당은 2016년까지 치료 목적의 모든 진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보장률을 9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또 본인이 부담해야 할 연간 병원비 상한선을 100만 원 이하로 잡았다. 아울러 상대 빈곤선 이하 보험료 면제와 간병서비스 보험 적용을 약속하고 있으며 실손민간보험 판매금지도 포함되어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의료에 대한 전문적인 공약은 거의 없다. 의료안전망 기금 조성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비를 지원하겠다는 정도이며 기금의 구체적 조성방안이나 의료비지원 방안 등은 부재하다.
재원조달방안으로 민주통합당은 ▲정부지원금 30% 확대 ▲사후정산제와 부과대상 확대를, 통합진보당은 ▲저소득층 및 중소기업 건강보험경감 및 면제 ▲국고 40% 확대 및 대기업 건강보험기금(매출0.1%~1%) 조성 ▲보험료 상한선 폐지(현재 건강보험료는 최대 440만 원을 넘지 않도록 돼 있다. 따라서 고액연봉자라도 440만 원 이상을 내지 않고 있으므로 이 상한선을 폐지해 재원을 조달하자는 것) ▲건강보험 누진률 적용(고소득 체납자들에게 벌칙성 누진률을 적용해 건강보험료를 징수해야 한다는 것) 등을 내놓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부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비급여 전면급여화와 비급여 통제, 지불제도 개혁(현재는 같은 질병이라고 하더라도 검사를 몇 번 받았는지, 의사가 주사를 몇 번 놨는지에 따라 병원비가 달라진다. 이를 바꾸자는 주장)여부 등이다.
재원조달 영역에서는 보편적 보험료 인상 vs. 부유층·대기업 및 국고지원 확대, 간병 및 상병수당(질병 발생 시 임금근로자의 소득상실을 보전해주는 것) 등이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보장률 부분은 상당히 높게 잡고 있으나 상병수당은 제외되어 있고 비급여 통제와 그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지불제도 개혁 등은 빠져있다.
특히 재원조달영역에서 부유층 및 대기업 기여 확대 내용이 제외되어 실현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가장 안정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있고 약제비 총액제(건강보험 예산 중 일부를 약제비 총액으로 산정해놓는 것)를 포함한 총액계약제(현재 의료보험공단에선 진료 건수 별로 병원에 돈을 지불하는데, 총액계약제는 예산의 총액을 미리 정해 지급하는 방식) 등 지불제도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나 비급여 항목을 통제하는 것과 상병수당은 빠져있다.
의료공공성 확보 없이는 무상의료 불가능
공급체계의 공공성 영역에서 민주통합당의 공약은 ▲보호자 없는 병원 ▲과잉병상해소 ▲입원·외래 수가체계분리 ▲병상총량제 ▲한시적 병상 명퇴제도 등이다. 진보통합당은 ▲공공병원 확충 ▲인구 5만명 당 1개소의 도시보건지소 ▲지역거점 공공의료 및 도시형 보건지소 확대 ▲병상 및 의료기기 허가제 등을 제안하고 있다.
민간중심 상업의료의 폐해를 극복하고 양질의 의료제공 및 시스템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선 의료공공성 확립이 핵심 과제다. 특히 민간을 활용해 공공성을 견인하기보단, 공적 의료기관을 확대해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 경영에 실패한 질 낮은 민간병의원은 단계적으로 퇴출하거나 공공영역으로 흡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민주통합당 공약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공병상 확충계획이 제외됐다는 점이다. 공공병상과 도시형 보건지소, 지역거점 공공병원 등은 공공인프라 확충의 필수 과제이며 민간영역의 반대가 거센 정책이다. 때문에 정치권은 적극적 정책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민간을 활용한 공공성 확대 정도만 이야기하고 있다.
일차의료 강화는 의료비를 적정하게 유지하면서도 국민건강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지난 2월 27일 OECD는 한국보건의료에 대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일차의료 수준저하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주치의제도(질병 치료 이외에 질병 예방이나 건강관리 등을 책임짐) 등 일차의료 강화를 위한 제도개혁을 강조했다.
일차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차의료전담인력 양성과 주치의제도의 단계적 도입,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을 통한 의료전달체계 구축 등의 과제가 필수적이다. 민주통합당은 ▲아동청소년 치과주치의제 ▲응급진료 ▲정신보건 서비스 확대 ▲인구 5만명당 1개 도시보건지소를 공약했다. 통합진보당은 ▲국공립대 의대 무상교육 및 국가의료인 복무제도 ▲주치의서비스의 단계적 도입을 주장한다.
민주통합당은 전면적 주치의제도 도입을 제외했는데, 다른 공약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되면 추상적 수준의 공약이 되고 만다. 한국에서는 의료인들의 반발과 일차의료전담인력 부재 등으로 주치의제도의 조기 실현이 어렵다는 주장이 대체적이다. 때문에 정치권과 정부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전체적인 개혁 프레임 하에서 동시에 주치의제도를 추진해야 실현이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의 공약에도 주치의제도가 포함돼 있었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한 이유는 강력한 추진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료시스템 개혁, 총대선 핵심 이슈돼야 한다지금까지 ①건강보험 보장성 및 지불제도 개혁 ②공공의료 확충과 공공성 강화 ③일차의료 강화라는 한국 보건의료 개혁 핵심과제를 간단히 살펴보고 그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을 정리해보았다. 상당히 진전된 내용도 많고 정책의 엄밀성 역시 개선되었다.
새누리당을 제외하곤 대다수 당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보건의료 정책들을 대부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무상의료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무상의료를 실현하려면 구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와 집권초기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권교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무상의료가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
걱정되는 부분은 민주통합당 대다수가 의료민영화와 한미FTA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으며 의료 공급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인 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공약도 처음 주장에서 계속 후퇴하고 있다. 보장성을 올리는 대신 의료자본과 공급자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식으로 타협할 가능성마저 있다. 의료민영화에 대한 입장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보장성을 올린다 하더라도, 공급시스템 개혁과 비급여에 대한 통제구조를 동시에 추진하지 못하면 오히려 재앙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때문에 현재 경쟁적으로 제기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넘어 실질적인 무상의료가 가능한 의료시스템 개혁이 총대선의 핵심 이슈가 되어야 한다.
무상의료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려면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필수 공공재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일차의료 강화 ▲총액계약제 등 지불제도 개선 ▲공공의료 확충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가와 부유층의 기여확대를 통한 재정확충 등이 전면에 제기돼야 한다. 특히 과도하게 시장화돼 있는 민간의료자본을 합리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의료개혁시기엔 개혁주체의 관점과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집단들은 손쉬운 보장성 강화 일부만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본 장악력이 높고 의료영역의 이해관계가 참예한 한국에서 의료시스템을 개혁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의료 규제 않으면, 의료비 폭등 초래할 것
서구 대부분 국가들은 공공영역을 튼튼하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건강보장을 강화하고 의료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민간중심 의료가 발전하면서 번번이 의료개혁에 실패했다. 극도로 강화된 의료, 보험, 제약, 자본의 반대를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료는 상업의료의 전형인 미국보다 민간의 비율이 훨씬 높고 영리적 병의원 경쟁도 더 심각하다. 거기에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의료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합리적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비 폭등을 초래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들의 감시와 요구가 정치로 표현되는 복지정치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다. 정권교체 이후 뭘 할 것인지, 어떤 의료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의료비 걱정 없는 세상, 실질적 무상의료에 대한 지지와 통한다. 따라서 정치권은 실질적 무상의료를 이룰 수 있은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국민들의 보건의료정치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2012년이 의료상업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무상의료 실현의 분수령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은경 기자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