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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5천분의 1 지도를 닳도록 살피고, 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광주 인근 50km이내의 부동산 매물을 쫓아다니기 3년, 그 세월까지 합하면 거의 10년을 헤맨 끝에 찾은 땅이었다.

생면부지의 땅에 노후를 기약하며 자리 잡은 지 만 5년, 지나간 날들은 엊그제 일 같다고들 말하지만 그러나 60년 인생에서 5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냥 '아내의 뜨락'으로 불리운 4필지 약 1천 평의 논과 밭이었던 농지에 집을 지을 정원과 텃밭으로 구획하여 잔디를 심고 각종 나무를 심었던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아마 우리에게 소박하지만 꿈이 있었기에 어려움도 재미있는 일이고 보람이었을 것이다.
귀촌을 꿈꾸었던 배경, 땅을 구입하고 숙지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공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다시 쓰지 않겠다.

다만 지난 5년 동안 서둘지 말고 모든 일은 내 힘으로 하고, 채소만이라도 자급하는 텃밭을 일구고,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한 정원을 만들겠다는 처음의 각오에서 크게 벗어남이 없었다는 점만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 내가 땀 흘려 심은 나무가 가득하고, 아내의 손길에 자란 꽃들이 자라는 숙지원에도 여섯 번째의 봄이 시작되고 있다. 집을 짓기 위해 기왕의 비닐하우스를 헐고 텃밭에 새로 비닐하우스를 만들다 보니 약간 어수선한 느낌이 있지만 산수유는 벌써 노랗다.

매화는 조금 늦고, 자두나무는 매화를 뒤따르기 위해 분주하다. 아내의 꽃밭에는 크로커스와 비욜라가 앙징스럽고 겨울을 이겨낸 수선화 튤립이 꽃대를 밀어올리고 있다. 숨어있는 자투리 땅에도 할미꽃, 아이리스, 샤스타데이지, 끈끈이대나물, 낮달맞이꽃, 꽃양귀 등이 푸르게 올라와 키재기를 하고 있다. 어디선가 여름에 피는 접시꽃, 다알리아, 분꽃, 백일홍, 봉숭아, 담배꽃, 해바라기, 누드베키아, 매발톱, 도라지꽃, 파라솔도 숨어서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1억 넘는 농업인이 수 만 명?...이것만은 알아두세요

사람마다 지향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숙지원을 돌아보며 5년 전의 선택이 아주 잘된 선택이었음을 다시 확인한다. 요즘 귀농 혹은 귀촌 인구가 늘었다는 소식이다. 귀농학교에는 희망자들이 밀려든다는 소문도 듣고 있다. 많은 사람이 확실한 목표를 갖고 귀농을 결정한다면 그건 국가 차원에서 고무적인 일이요 농촌에도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필요하다면 나 역시 지난 5년의 경험을 나누고도 싶다.

아직 농촌은 돈을 벌기는 어려운 곳이다. 최근 여러 매체에서 1년 소득이 1억을 넘는 농가가 수만 명이 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심지어 10억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농가도 있다고 소개했다. 고소득을 올리는 농민이 많다는 사실은 국가 차원에서 다행한 일이요, 귀농을 계획하는  도시인들에게 희망일 수 있지만, 나는 그런 보도를 거의 신용하지 않는다.

보도만으로 농민들의 소득이라는 것이 명목 소득인지 아니면 농가 부채를 정리하고 남은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인지 알 길도 없으려니와, 주변의 고소득 농민일수록 정부와 농협 융자금 등 빚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설사 1년에 1억 이상의 실질적인 고소득 농민이 많다손 치더라도 어쩌다 운이 맞아 한 두 해 반짝하는 결과일 뿐 매년 고소득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안정적으로 년 1억 소득만 보장이 된다면, 아니 5천만 원 소득만 보장된다면 부자 아닌 농민도 없고 지금과 같은 노인들만 남은 농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배회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농사가 도박처럼 되어버렸고, 한미 fta, 한중fta로 인해 앞으로 농촌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마당에 1년 1억 이상의 고소득 농민이 몇 명이라는 발표는 의미 없는 일이다. 혹시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그런 보도에 현혹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생계형 농업은 소득도 불안하고 힘들 뿐 아니라, 한마디로 농촌이 어려운 도시민들의 피난처 내지는 구원처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농사가 아니라도 생계에 지장이 없고, 텃밭 농사에 보람을 거두고자 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적극 귀촌을 권하고 싶다. 현재 농촌에 남은 노인들의 시대가 끝나면 농사를 지을 농민도 없고, 농사 기술도 전수되지 못하여 앞으로 우리 농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양은 전반적으로 급격하게 줄게 될 것이 뻔한데, 그럴 경우를 대비하여 나와 가족만이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채소 등 농작물을 기르겠다면 결코 실패할 염려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건강 회복한 아내... 이게 다 식물 덕!

지난 5년, 숙지원도 변했지만 아내와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무의 성장을 보고 수확의 기쁨도 컸지만 그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던 아내가 건강을 많이 회복한 사실은 더 할 수 없는 다행이라고 여긴다. 물론 텃밭농사를 한다고 모든 사람의 모든 병이 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건강이 좋아진 것은 텃밭농사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텃밭 농사의 체험, 즉 식물치료(혹은 원예치료)의 효험을 의심하지 않는다. 또한 식물은 사람에게 먹을거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지켜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도 의심하지 않는다.

지난 2월 40년의 교직 생활을 마쳤다. 요즘 나는 오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후에는 숙지원에 간다. 그러면서 눈을 뜨면 어딘가 가야할 곳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곳,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은 곳, 피곤한 경쟁과 다툼이 없는 곳에서 농작물을 심을 자리를 마련하고 자라는 나무들에게 말을 건다.

 비닐하우스와 바깥에 비닐을 씌운 밭을 만들어 고추, 야콘, 옥수수 등 농사준비를 완료했다.
비닐하우스와 바깥에 비닐을 씌운 밭을 만들어 고추, 야콘, 옥수수 등 농사준비를 완료했다. ⓒ 홍광석

금년에도 야콘, 고구마, 옥수수, 고추, 참외, 가지 등 많은 작물을 심을 것이다. 거기에 특별히 금년에는 참깨 농사를 늘릴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참깨를 한 되 반쯤 수확했는데 수확할 때의 기쁨도 컸지만 먹을 때의 고소함이 시장의 참깨와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년에는 숙지원에 작은 집을 지을 계획이다. 이미 설계를 맡겼고 대지 분할 측량을 의뢰했으니 4월 중에 건축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늦어도 금년 가을에는 출퇴근하는 농부에서 벗어나 완전한 귀촌을 이루게 될 것이다. 

지난 5년, 텃밭 농사는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고 보람도 컸다. 5년 단위로 세월을 묶는다면 금년은 다시 5년을 시작하는 첫 해다. 5년 후면 나도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 것이다.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듯이 늙음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욕심, 그리고 사람과의 복잡한 관계에서 벗어나 그저 내려놓을 수 있는데까지 마음을 비우고 살면 좋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살아갈 작정이다.

텃밭 농사는 건강을 지키는 노동이요, 수확하는 보람을 거두는 일이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 특히 뜻있는 은퇴자 혹은 은퇴 예정자들에게 귀촌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권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심신의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도 귀촌을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필통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숙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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