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만난 김광식(57) 전 조폐공사 감사는 당시를 떠올리다 쓴 웃음을 지었다.
국무총리실의 '하명사건처리부'에 이름을 올린 김 전 감사는 환경단체 등 시민운동을 해오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지난 2007년 2월 말 한국조폐공사 감사직을 맡았다. 말하자면 막차를 탄 셈이다. 하지만 그는 3년 임기 중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년 10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김 전 감사는 "처음에는 야비한 행태에 끝까지 싸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조폐공사의 다른 임원들과 직원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인격적인 모멸감과 삶에 대한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1단계 압박] 재경부 국장의 집요한 사퇴종용 전화
그에 대한 사퇴압박은 3단계로 이뤄졌다. 첫 압박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직후인 2008년 3월 초부터 시작됐다. 김 전 감사에 따르면 어느 날 조폐공사를 담당하는 재경부 담당국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해당 국장은 '정권이 바뀌었으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 아니냐. 물러나시는 게 순리에 맞는 것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사퇴를 종용했다. 김 전 감사는 "매주 1-2차례씩 3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사퇴를 종용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전 감사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래도 되느냐. 법으로 보장된 임기동안 일 하겠다'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자 해당 국장은 '이러시면 저도 힘들어진다'는 말로 위로부터 지시를 받고 사퇴를 종용하고 있음을 간접 시사했다.
해당 국장의 종용은 같은 해 5월경까지 이어졌다. 김 전 감사는 "'정 그렇다면 왜 물러나야하는지를 서면으로 보내달라'고 하자 더 이상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2단계 압박]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 투입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투여된 것은 이때부터다. 김 전 감사는 "같은 해 7월 경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가 조폐공사가 있는 대전으로 직접 내려왔다"고 말했다. 2단계 사퇴압박이 시작된 것이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하명사건처리부'에도 접수일을 7월로, 접수내용을 '공기업임원사표거부'로 기록돼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는 직접 나서지 않고 자신의 또 다른 정보라인을 동원해 '비리를 캐라. 10만 원만 나와도 그걸 빌미로 퇴직시킬 수 있다'며 약점 찾기를 시작했다. 아무런 약점을 찾아낼 수 없자 같은 해 9월 경에는 김 전 감사의 지인이 찾아와 '제가 죽겠다'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김 전 감사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나오면 언론과 시민단체, 야당 등에 알려 공식적으로 문제 삼겠다"고 맞섰다. 이후 이 관계자를 통한 더 이상의 압박은 없었다.
[3단계 압박] 조폐공사 대대적인 감사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해 10월부터 또 다른 방식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김 전 감사는 "조폐공사 감사실을 통해 조폐공사 임원들의 골프장 출입기록, 관용차 운행일지, 평일 행선지 등 자료를 요구하며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별다른 비위혐의를 잡지 못하자 온갖 자료를 요구하며 감사실 직원들을 들볶았다.
결국 김 전 감사는 "나만 괴롭히는 것은 참고 견딜 수 있었지만 나로 인해 다른 직원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싸움을 멈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 1일 사표를 제출했고 이듬해인 2009년 1월 5일자로 사퇴했다. 겉모습은 자진사퇴였으나 그의 자존감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하명사건처리부에는 '진행상태/ 종료', 12월 1일 사표'라고 기록했다.
김 전 감사의 후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 임용됐다.
김 전 감사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권력장악과 측근들의 자리보전을 위해 이같은 야비한 일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데 대해 경악했다"며 "정치적 협의를 통한 제도화로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감사는 현재 충남평생교육진흥원장직을 맡아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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