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처럼 눈이 내렸다. 아니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폭설이다. 영동 산간 지역에 최대 20cm의 눈이 올 거라는 예보는 있었지만 4월로 접어든 시기의 눈발치고는 사뭇 거세다.
3일 이른 아침까지는 비가 내렸다. 이곳 '정자골' 계곡은 밤새 내린 비와 삿갓봉에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면서 물이 불어나 장마철을 연상케 했다. 오전 8시경부터 눈으로 바뀌더니 아예 함박눈이 금세 온 천지를 하얗게 덮어 버렸다. 땅이 녹으면서 한껏 물이 오른 나뭇가지들이 짓누르는 눈 무게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다.
눈이 내리면서 기온도 함께 떨어지는 느낌이다. 도로에 떨어진 눈이 녹지 않고 질퍽해지며 미끄럽다. 윈도 브러시를 빠른 속도로 작동하지 않으면 금세 시야가 가려진다. 안흥(강원 횡성)을 휘감아 도는 주천강 물살을 통제하는 '통무고개' 옆 안흥보가 검붉은 흙탕물로 넘쳐나고 있다. 쏟아지는 눈과 대비되는 흔치 않은 광경이다.
5일마다 서는 안흥 장터가 한산하다. 아예 전을 편 상인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장터를 찾은 상인이 쏟아지는 눈의 기세에 눌려 보따리를 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4월의 첫 안흥장은 서지도 못한 채 파장될 것이 뻔하다.
부지런한 뒷집 문현씨가 바로 어제 갈고 골을 켜 비닐까지 씌운 옆 밭이 어느새 하얀 눈으로 덮였다. 담배를 사러 온 윗동네 충현씨의 트럭은 번호판 글씨가 아예 식별되지 않는다. 눈은 그칠 줄 모른다. 기세도 그대로인데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아마 춘사월 또 하나의 멋진 설경이 그려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