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드디어 천안함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난 3일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예고대로 천안함 2주기를 맞아 '봉주 10회'를 통해 그동안 많은 이들이 알고도 모르는 척, 의심스럽지만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던 천안함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천안함 거론에 대해서는 <나꼼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은 듯하다. 어쨌든 천안함은 대법관 후보자도 떨어뜨릴 만큼 보수세력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주목하는 이슈다. <나꼼수>가 이를 거론하면 또 지긋지긋한 색깔론과 음모론이 언론 첫 면을 장식할 것인데,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 그것은 야당에게 결코 유리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게다가 최근에는 김용민 후보의 과거 발언으로 <나꼼수>가 언론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생각해보자. 사실 지금까지 현 정권이 버티는 이유 중 하나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연달아 터뜨려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분산시켰기 때문이었다. 전 정권이라면 당장에 탄핵 운운할 사건들이 계속 터지니 그만큼 사람들이 현 정권의 비리에 둔감해진 것이며, 정치에 대한 관심은 환멸을 넘어 무관심과 냉소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냉소를 자양분으로 더 해먹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부.

 

따라서 현재 필요한 건 확실한 타격 포인트다. 어차피 이번 총선이 정권심판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면 MB 정권에 대한 응징의 이유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결정적인 것 하나를 골라 집중적으로 타격해야 한다. 분식집보다는 단품 전문점이 더 인기 있듯이 한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더 집중할 것이요, 그것을 바탕으로, 혹은 매개로 다른 현상 또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로 그것이 바로 프레임 아니던가.

 

이런 맥락으로 현재 총선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이슈는 <오마이뉴스>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민간인 불법 사찰이다. 비록 여당과 청와대가 노무현 전 정권의 감찰을 이용해 물타기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민간인 불법 사찰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이미지까지 끌고 들어오면서 사람들에게 이 정권이 민주주의의 아주 기본적인 상식마저 져버리고 있음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연예인 불법 사찰까지 불거지면서 '나도 국가의 사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번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나꼼수>가 천안함 문제를 들고 나왔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 시점에 천안함을 운운했을까? 민간인 사찰에만 집중해도 바쁜 이 시국에, 이슈에 대한 관심이 이분화 될 것을 뻔히 알면서, 그들이 천안함을 거론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대한민국과 1972년 미국

 

 

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이승헌 교수와 존스홉킨스대 정치학과 서재정 교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참여하여, 나 같은 과학의 문외한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이야기한 <나꼼수>의 결론은 분명했다. 국방부의 발표와 달리 천안함이 어뢰폭발로 침몰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은 그 근거로 합조단이 발표한 천안함 최종보고서의 에너지분광 데이터를 들고 있었는데, 이야기인 즉 천안함 폭발의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는 그 데이터가 침천물이 아닌 폭발의 증거물로 조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는 합조단 관계자 내부에서도 증언이 있었다고 밝혔다. 요컨대 천안함 어뢰폭발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북한과는 상관없다는 추론이었다.

 

이어서 김어준은 말한다.

 

"우리가 천안함 다룬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그 두려움이 천안함 진실을 숨기는 원동력이었다. 그동안 진실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은 저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공포 때문이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각종 천안함 시나리오 돌아다니는 것 우리도 싫다."

 

결국 <나꼼수>가 이 시점에 천안함을 들고 나온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 유통되고 있는 레드콤플렉스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그나마 완화된 것 같았던 그 지긋지긋한 '빨갱이 담론'이 되살아나 다시금 시민들의 합리적인 판단마저 방해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그들은 MB 정권의 핵심인 천안함을 공론화 시킨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쫄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쫄지 않고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공포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민간인 불법 사찰이 불거진 이후 드러난 여론의 행방이다. 혹자들은 여론조사의 문제라고, 기저에는 다른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실 민간인 불법사찰의 충격은 생각 외로 작은 편이다. 물론 정치권과 언론은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만만치 않은 세력을 과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이는 결국 많은 국민들이 이번 사찰 사건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MB의 부도덕성은 다시 한 번 드러났지만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뿐이다. MB시대 사람들은 그만큼 정부의 비리에 무뎌져 있으며, 한편 두려워하고 있다. 이전 정부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건만, 사람들은 현 정부니까 그러려니 한다. 오류를 오류로 인정할 수 없는 조직의 공포스러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비록 진보 세력들은 이번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을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규정하지만, 현재 우리가 다시금 상기해야 할 역사적 사례는 미국의 '매카시즘'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튼튼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하야한 '워터게이트'보다 20년 전 미국의 모습에 가깝다. 천안함, 반값등록금, 구럼비 바위만 언급해도 '종북좌파'라 몰리고, 재갈 물린 언론들이 자아검열을 하고, 민간인 불법 사찰을 했던 청와대가 오히려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이제 당신이 입을 열 차례다

 

 

아직까지도 '빨갱이' 사냥이 존재하는 사회, 대한민국. 따라서 이번 <나꼼수>의 천안함 문제 제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민간인 불법 사찰과 달리 레드콤플렉스를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면에서, 지금 이 정부가 국민들에게 심어준 공포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민간인 불법 사찰이나 천안함 역시 내부고발자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현 정부의 끝이 보이기 때문인데, 이는 총선 이후 이와 같은 내부고발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탐욕을 매개로 이루어진 권력 카르텔에서 소외당한 이들이, 그리고 공포 앞에서 양심을 지키지 못했던 이들이 하나 둘씩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꼼수>는 이번 천안함 문제를 12월 대선을 위해 터뜨렸을 것이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서 '천안함' 문제는 결국 의혹으로 남아 있을 것이 거의 확정적인 바, 천안함으로 보수 언론들이 '빨갱이 사냥'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게 된다면, 아직 진실을 고백하지 않은 내부고발자들은 용기를 얻을 것이다. 내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빨갱이' 덧칠을 당하더라도, 결국에는 사회가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바로 이번 총선에서 정의가 승리해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하루. 다시 한 번 말한다. 

 

"쫄지마, 씨바."


태그:#총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