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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진씨가 결혼축의금에 대한 답례로 준 봉투엔  딸에게 보내는 시와 여수엑스포에 대한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한창진씨가 결혼축의금에 대한 답례로 준 봉투엔 딸에게 보내는 시와 여수엑스포에 대한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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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로를 잘 알며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지인의 딸이 결혼했다. 집안의 첫 번째 결혼이라 가슴 설렜을 것은 당연지사. 결혼식장에서 딸은 울먹이며 지금껏 키워주신 부모에게 큰 절로 인사를 드렸다. 혼기를 앞둔 아들과 딸을 둔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요즘은 결혼식에 식사를 대접하는 것보다 답례로 봉투 속에 사례비를 넣어 되돌려 주는 일이 흔하다. 3월 30일은 길일이라나. 여러 군데 결혼식에 참석했다. 아는 지인은 그날 하루에 9군데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빠서 봉투를 확인하지 못하고 월요일에 출근해서야 짬이 있는 시간에 봉투를 개봉했다.  

정성스럽게 풀로 붙인 봉투를 개봉한 순간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딸 '빛나'에게 보내는 시이자 편지글과 함께 '2012 여수세계박람회 실컷 즐기기'라는 안내장이 또 한 장 들어있었다. 자료 맨 마지막에는 '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자료를 바탕으로 '여수갈매기 한창진'이 만들었습니다"라는 문구가 곁들여 있었다. 한창진씨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글 중 몇 대목이다.

"빛나는 좋겠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활짝 피어가는 봄날,
이순신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선소 앞 바닷가
마리나 웨딩홀에서
멋진 신랑 '양성식'군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지금껏 산 날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 통틀어
가장 큰 행운일 것이다


…중략…

빛깔 고운 여수의 마음으로
이 감동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으로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 실컷 즐기기'에는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의 각 코너별 일정과 특별공연 날짜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지금껏 여러 사람으로부터 답례 봉투를 받았지만 "감사하다"는 내용이 전부였었다. 시는 그렇다 치고, 지역의 중요한 행사일정을 스스로 제작해 보낸 경우는 처음이다.

한창진씨의 딸 결혼식에 양가 부모가 함께 촬영했다. 뒷줄 오른쪽 끝이 한창진
 한창진씨의 딸 결혼식에 양가 부모가 함께 촬영했다. 뒷줄 오른쪽 끝이 한창진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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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진! 그는 누구인가?  전교조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학교 바로세우기 운동이 한창일 때 사립학교 교사로서는 전국 최초로 해직되어 명동성당에서 단식 투쟁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참여연대의 일종인 여수시민협을 창간하고 오랫동안 상임대표로 일하며 여수 시민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시정에 참여하고 봉사활동과 쓰레기 줍기 등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시민운동에 앞장섰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여수의 모든 골목과 산하를 그 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여수에 생산기지를 둔 공장들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하라"는 운동을 전개해 GS칼텍스로부터 1000억 원을 들인 문화공연장 '예울마루'를 세우도록 하는 데 주축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4월 11일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여수는 시의원들의 수뢰사건으로 보궐선거까지 동시에 치른다. 길거리를 가다 보면 너도나도 선거에 뛰어들어 동원된 아주머니들과 후보자들이 손을 흔들며 90도로 인사를 하며 한 표를 부탁한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모두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후보자들 중에는 지역을 위해 열심히 뛰며 공헌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연설과 후보자 안내문을 보면 모두가 애국자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시민들을 위해 연탄 한 장이라도 되어 시민들 가슴을 따뜻하게 한 적이 있었던가를….

수많은 고초를 겪고 전남시민사회단체 상임대표까지 역임하며 보수층으로부터 욕을 먹었던 그가 딸에게 보낸 편지와 여수박람회 안내프로그램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와 박람회 안내 자료를 보며 생각해 본다. 한창진 답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한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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