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5일 오후 11시 27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류충렬 전 공직복무관리관으로부터 받은 5000만 원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입막음용 자금'의 출처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너간 돈은 총 1억1000만 원이다. 먼저 그는 지난 2010년 9월께 이동걸 고용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에게 4000만 원을 받았다. 이 4000만 원 가운데 1500만 원은 변호사 비용(성공보수)으로 썼고, 나머지 2500만 원은 최종석 전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또 장 전 주무관은 2011년 4월 류충렬 당시 공직복무관에게 5000만 원을 받았다. 장석명 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 비서관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지난 4일 <오마이뉴스>의 팟캐스트 방송인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를 통해 공개된 '돈묶음' 사진이 이때 전달된 5000만 원이다. 그는 "5000만 원 가운데 4500만 원은 전세자금 대출금을 갚는 데, 200만 원은 생활비로 썼고, 300만 원은 부모님께 송금했다"고 말했다.
이어 4개월 뒤인 지난 2011년 8월 포항 출신 노무사인 이아무개씨가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건넸다. 2000만 원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마련한 것이었다. 하지만 장씨는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윗선을 폭로한 직후 돌려줬다.
앞서 이영호 전 비서관은 같은 해 5월 중순께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을 통해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진 전 과장은 종로구청 앞에서 2000만 원이 든 비닐봉투를 장씨에게 건넸지만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2000만 원을 건넨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들어 줬다"지만 '실세 비자금설' 등 분분
문제는 이렇게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네진 총 1억1000만 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이 돈이 대부분 장 전 주무관이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윗선과 관련된 양심고백을 고민하고 있을 때 건네졌다는 점에서 '입막음용' 성격이 짙다.
각각 4000만 원과 5000만 원을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한 이동걸 보좌관과 류충렬 전 복무관은 "장 전 주무관의 경제적 어려움을 생각해 주변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이 보좌관은 지난 3월 26일 민영통신사 <뉴스1>과 한 인터뷰에서 "2010년 8월 여름 휴가를 마치고 몇몇 지인들과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 내가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구속된) 이인규 지원관과 진경락 과장의 변호사 비용을 모아보자고 제안했다"며 "나를 포함해 총 7명 내외의 지인들이 4000만 원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류충렬 전 복무관도 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어디에서 5000만 원을 융통해 장 전 주무관에게 줬고, 국무총리실 직원들이 여러 차례 50만 원, 100만 원씩 모아서 주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준 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전달한 이영호 전 비서관은 지난 3월 20일 기자회견에서 자금 출처는 밝히지 않은 채 "장 주무관의 경제적 어려움 등을 고려해 선의의 목적으로 건넨 것"이라고 말했다. 입막음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1억1000만 원 전달자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돈을 마련해 전달한 것이지 청와대 등에서 마련한 돈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돈을 전달한 인사들이 권력 실세(이영호 전 비서관)이거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측근(이동걸 보좌관)이고, 흔치 않은 '관봉 형태'로 돈이 전달됐다는 점 등을 볼 때 이들의 해명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 보인다. 자금 출처와 관련해 대통령 특수활동비설이나 통치자금설, 정권 실세 비자금설 등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다.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네진 돈의 출처를 캐고 있는 검찰은 '비자금'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네진 돈이 대체로 비자금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박영준-이영호 라인이 활동을 위해 조성한 비자금 중 일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사정기관을 통해 비자금을 만드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덧붙였다.
오래 전부터 시중에서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자원외교 등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정치자금)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돌았다. 하지만 박 전 차관은 지난 1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왜 정치자금이 필요하냐?"며 "나는 누구한테도 당당하다"고 부인했다. 그는 "(역대 정권에서) 사조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구속됐다"며 "하지만 나는 구속되기 싫어서 처음부터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박영준 전 차관 "이명박 정부에서 통치자금은 없다"
정치권은 대통령 특수활동비에서 나온 돈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 특수활동비란 대통령이 특별한 업무수행에 사용하는 예산으로 주로 각 기관이나 단체에 주는 금일봉, 조의금, 명절 격려금 등으로 사용된다.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돈으로 연간 110억 원에 이른다. 지난 2009년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총 12억5000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는 5일 "지금 청와대에서 입막음으로 준 5000만 원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데 만약 저것이 대통령 특수활동비에서 나왔다면 그것은 완전히 탄핵감이 되는 범죄"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통치자금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예산 가운데 특별한 용도를 정해두지 않았다가 필요에 따라 시·군·구에 배정해주는 돈을 특별교부금(정확한 명칭은 '특별교부세')이라고 하는데 연간 1조 원 이상이 책정된다. 여기에는 대통령이 사용처를 임의로 지정해 사용할 수 있는 돈이 포함돼 있어서 '통치자금'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권력층의 쌈짓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직후인 지난 2003년 3월 "특별교부금을 보통교부금에 흡수하는 폐지 방안까지 포함해 근본적 개선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대통령의 통치자금을 포기한 결단"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노무현 정부 이후 통치자금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시켰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박영준 전 차관은 지난 1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년까지는 통치자금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통치자금을 확실히 없애 버렸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통치자금은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전 차관은 "국정원 기조실장이 통치자금을 관리해 왔는데 안풍사건(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안기부의 예산을 선거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사건) 이후 안기부 자금이 드러나면서 국정원도 이제는 통치자금 관리를 하지 않는다"며 "국정원이 힘을 잃은 원인 중 하나가 통치자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