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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신문이야, 뭐야! 조중동하고 다른 게 뭐 있어. 우리 신문 그만 끊어요."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듯하다. '뭐야, 왜 그래' 아내가 팽개친 신문을 펼쳤다. 그래, 화가 날 만도 했다. 나꼼수의 열혈 팬인 아내의 화를 돋운 건 신문의 사설이었다. '막말파문 김용민 후보 사퇴해야'라는 사설을 꼼꼼히 읽었다. 행간을 놓치는 게 있나 하고 한 번 더 읽었다. 결론은, 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촛불집회 때부터 구독해 오던 신문을 끊기로 부부가 합의하고, 난 해당 신문사에 '논조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 신문을 그만 보겠다'는 전화를 했다.

 

내 눈에 가장 거슬리는 건 새누리당에서 공천했던 석호익 후보(무소속, 고령성주칠곡)도 성희롱 전력을 문제 삼아 공천을 철회했으니, 김용민 후보도 당연히 사퇴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확인하자. 김용민 후보가 한 문제 발언은 2004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회원가입을 해서 성인인증 받아야만 시청할 수 있는 성인대상 자칭 B급 방송이었다.

 

새누리당에서 사퇴한 석호익 후보의 문제 발언은 2007년 5월 16일 서울시내 모호텔에서 이뤄진 조찬모임 자리였다. 전현직 CEO와 기업인, 언론사 대표 등 30여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강사의 자격으로 한 말이다.

 

발언 내용만 놓고 본다면 누구의 말이 저급한지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다. 연속성과 자극성으로 본다면 김용민 후보가 한 수 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발언의 내용과 더불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은 발언의 장소와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조건의 고려 없이 석호익 후보도 공천 철회했으니 김용민 후보도 사퇴하라는 논조엔 동의하기 어렵다.

 

김용민 사퇴 주장... 그럼 문대성과 하태경은?

 

석호익 후보의 발언이 조금은 저질스럽고 자극적이어야 상업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곳인 성인방송에서 행해졌다면 새누리당에서 과연 공천 철회까지 갔을까? 물론 난 김용민 후보의 발언내용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것을 빌미로 사찰국면을 모면해 보자는 새누리당의 얄팍한 선거 전술이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일까. 새누리당 등 보수들은 반성과 사과만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수준을 넘었으니, 사퇴하라는데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가 망해야 한다는 발언 하나만 해도 그렇다. 대형교회의 탐욕을 경고한다는 내용이 당시 인터뷰를 했던 담당기자나 당시의 녹취파일에 의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 들은 한국교회 전체를 매도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 보수언론을 근거로 보수 기독교 단체가  민주당사 앞에 모여 사퇴 촉구를 하는 것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악의적이고 음모적이다.  

 

혹자들은 진보의 생명은 도덕성이고 통합민주당의 도덕적 품위를 위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보만이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진보, 보수를 떠나 정치의 기본이 도덕성이다. 문제투성이인 새누리당 후보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통합민주당 후보는 19금 성인방송에서 한 발언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그 검증의 잣대는 공평하다고 볼 수 없다.

 

새누리당 하태경(해운대기장을) 후보의 경우를 보자. 독도는 분쟁지역이라는 그의 주장이 확대되고 왜곡되어 진의가 다르게 전달되었다는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2008년 5월 8일 '데일리NK'에 "일제시대 우리 조상은 일본제국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한다", "조국이 일본이었다면 조국이 참가하는 전쟁에 조국을 응원하는 것은 정상참작의 사유가 되지 않을까"라고 올린 칼럼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봉합할 수 없는 수준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8일 천안 유세에서 김용민 후보를 겨냥해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자랄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만약 내가 대답할 위치에 있거나 말할 기회가 있다면 이런 대답을 할 것이다. 김용민 후보에게는 그나마 반성하는 모습이라도 배우라고 하겠지만, 남의 논문을 표절하고,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한 것도 정상참작 하자는 얼빠진 주장을 해놓고 반성은커녕 변명하기 급급한 후보에게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겠냐고 말이다.

 

논리학에 우물에 독뿌리기 오류(원천봉쇄의 오류)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특정한 논지에 대한 반론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우물)을 비판함(독뿌림)으로써 반론의 제기 자체를 불가능하게 해 자신의 논지를 옹호하고자 하는 불공정한 전략이다. 새누리당이나 보수 언론의 김용민 후보의 사퇴압력은 전형적인 불공정 전략이다.

 

혹시 일부 진보언론이 내놓는 김용민 후보 사퇴 주장이 이런 새누리당의 우물에 독뿌리기 전략에 휘말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고 김용민 후보의 사퇴가 모든 문제의 중심인 것처럼, 또 해결의 열쇄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들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김용민 논란, 이제 결정은 지역유권자에게 맡기자

 

사실 이런 문제에 있어 어느 한쪽의 주장을 편들기는 쉽지 않다. 성희롱, 노인폄하 등 언급된 문제를 덮어 진보의 도덕성에 먹칠하고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는 국면을 만들자는 말이냐는 지적도 충분히 이해는 한다. 또 당신도 김용민 후보만큼 저급한 여성관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을 염려하면서도 나의 주장을 드러내는 진보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온갖 악행을 일삼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MB정권 심판에 있다는 되짚어 보자는 것이다.

 

만약, 김용민 후보가 사퇴한다면 새누리당의 반응은 어떨까? 문제 있는 후보가 낙마했으니 이제 정책대결로 가자고 할 것인가, 아니면 문대성과 하태경 후보의 사퇴를 결의한다고 하겠는가? 결코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김용민 후보는 사퇴 요구는 명분일뿐 정작 그들은 사찰정국을 일거에 반격할 수 있는 먹잇감이 필요할 뿐이다. 김용민 후보가 사퇴한다면 통합민주당이나 진보통합당 후보 누군가는 또 다른 김용민이 되어 그들의 먹잇감이 될지도 모른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들이 김용민 죽이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국면을 벗어나는 길은 김용민 후보의 사퇴에 있지 않다. 오히려 반성할 줄 모르는 MB정권, 논문을 표절하고도 반성 없는 문대성 후보, 친일을 강변하고도 변명에 급급한 하태경 후보에게 심판과 검증을 요구해야 된다.

 

김용민 후보 막말 논란, 그 정도 검증을 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이제 결정은 지역유권자에게 맡겨도 좋지 않을까? 4.11 총선에서 검증받고 심판 받아야 할 세력은 누가 뭐래도 MB정권이고 정치적 동반자인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이다. 나는 한쪽에는 지나칠 정도의 검증을 요구하는 일부 진보 언론의 논조에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촛불집회 때부터 보아온 신문을 끊은 이유다. 


태그:#4.11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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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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