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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장 인증샷
 투표장 인증샷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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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러 간다고 하자 여덟 살 아들 녀석이 어디 멀리 가는 줄 알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좀 멋쩍었다. 채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가면서 치르는 이별 의식 치고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거창하다. 그래도 기분은 '새콤달콤'.

투표 장소는 내가 사는 아파트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경로당. 씩씩하게 걸어들어가니 불과 세 시간 전까지 한 이불 속에 있던 아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인 양 "어서 오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하며 사무적으로 맞는다. 아내는 투표 참관인이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투표용지를 받자마자 가슴이 두근두근. 이놈의 소심증은 마흔이 넘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되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 이제야 투표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됐기 때문이리라 답을 내가며 기표소로 들어갔다.

모두 익숙한 이름이다. 명함 받고 악수한 일밖에 없는데도 몇 달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름이라 그런지 친한 사람 같았다. 누구를 찍을 것인지 확실하게 정하지 않은 사람은 오락가락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오래전에 점 찍어둔 후보와 정당이 있어 갈등을 할 필요는 없었다. 기표를 마치고 나와서 기표 용지를 투표함에 집어넣으며 "이곳에서 인증샷 찍어도 될까요?" 하고 묻자 약속이라도 한 듯 여러 사람이 "안 돼요" 하며 손사래를 쳤다.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했지만 꾹 눌러 참고 투표소 밖으로 나와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투표소 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표지와 내 얼굴을 모두 잘 나오게 찍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셔터를 몇 번이나 눌러댔지만 맘에 드는 구도가 나오지 않았다.

좋은 구도를 잡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있을 때, 그 모습이 답답해 보였는지 학생인 듯한 투표 안내원이 반가운 제안을 했다.

"제가 찍어드릴까요?"
"네, 한 장 부탁할게요."

투표율 70% 넘으면 70킬로그램으로 다이어트!

이렇게 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투표는 막을 내렸다. 투표는 마쳤지만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인증샷'을 주변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이다. 달랑 사진 한 장만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에 올리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몇 자 끄적거려서 보낸다는 게 엄청난 약속을 하고 말았다.

"방금 투표, 오전 8시 30분경. 투표율 높이기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유명인은 아니지만 약속 한 가지. 투표율 70% 넘으면 몸무게 70킬로그램 만들고 다이어트 수기 쓰겠습니다. 지금 몸무게 82킬로그램."

다이어트는 정말로 자신 없는 일이다.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꼭 의지력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10년 전, 그 어렵다는 금연도 성공했던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엄청난 약속을 한 것은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세력이 당선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도 달라진다. 세금 액수도 그들이 결정하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도 그들이 결정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크고 중요한 대부분을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투표장에만 들어서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다.

유명한 사람들이 투표율 70%가 넘으면 재미있는 일을 한다고 약속했다. 공지영 작가는 얼굴에 점 찍고 캉캉 춤을, 남자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치마 입고 춤을 추겠다고 했다. 개그맨 김제동씨는 장가를 간다고 한다.

다음주쯤 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꼭 보았으면 좋겠다. 김제동씨가 결혼하는 모습도 몇 개월 후에 봤으며 좋겠고, 나도 독한 맘 먹고 다이어트에 돌입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우리 아이들 미래를 결정할 사람을 뽑는데, 최소한 70% 정도는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태그:#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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