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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과 4월 선거운동 국면을 휩쓸었던 국무총리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4․11 총선의 표심을 흔들었을까?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인 '이슈를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서 지난 3월 초부터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음을 연속으로 폭로했을 때만 해도 이 사안의 폭발력은 커 보였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MB정권 심판론'을 더욱 고조시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연대 진영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사진 왼쪽)와 이 사건의 청와대 개입 및 은혜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30일 오전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하고 있다. 김종익씨와 장진수 전 주무관은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이털남'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사진 왼쪽)와 이 사건의 청와대 개입 및 은혜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30일 오전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하고 있다. 김종익씨와 장진수 전 주무관은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이털남'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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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표 결과는 이러한 관측과 크게 달랐다. 서울과 부산에서 민주통합당 등 야권연대 진영이 선전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새누리당이 제1당을 유지했고, 야권연대 진영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면죄부'를 준 선거결과라는 냉혹한 지적마저 나온다. 

이는 민간인 사찰 사건이 김용민 '막말 파문' 등과 맞물리면서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급속도로 결집시키면서 MB정권 심판론이 힘을 잃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연대 진영의 예상과 다른 측면에서 민간인 사찰 사건이 표심을 크게 뒤흔든 셈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사찰" 물타기 반격 먹혀 들어

<이털남>의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청와대 개입' 연속 폭로는 지난 2010년 검찰에서 부실하게 수사했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다시 점화시켰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6급)의 양심고백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의 육성파일이 공개된 직후 검찰에서는 특별수사팀을 꾸렸고, 관련자들을 줄지어 소환했다.

30일 오전 올라온 KBS 새노조의 <리셋 KBS뉴스9>의 한 장면
 30일 오전 올라온 KBS 새노조의 <리셋 KBS뉴스9>의 한 장면
ⓒ KBS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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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국면'은 지난 3월 30일 만들어지는 듯했다. KBS 새노조에서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문건을 입수해 공개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간인 사찰 사건이 총선의 결정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압도적이었다. 증언을 넘어서는 구체적 증거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날(3월 31일) 실시된 <한겨레>․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됐다.

전국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여론조사에서 '민간인 사찰이 이번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67.3%가 '여당에 불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25%에 불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찰문건 공개'의 파급효과가 커 보였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 이를 MB정권 심판론의 주요재료로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 등 여권에서 "사찰문건의 80%가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졌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민간인 사찰이 이루어졌다"고 반격에 나서면서 여론은 조정국면에 들어갔다. 실제로 KBS 새노조에서 이명박 정부의 사찰문건이라고 공개한 2619건 가운데 이명박 정부에서 작성된 것은 400여 건에 불과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불법사찰이고, 노무현 정부는 합법적 감찰이다"라는 야권의 여론전이 잘 먹혀들지 않았다. 

지난 3일 <중앙일보>가 한국갤럽과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지역구 9곳 유권자 5400명 대상) 결과 '선거참여와 후보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응답이 47.8%로 '영향을 미쳤다'(36.5%)보다 높았다. 비슷한 시기 실시된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여야 모두에 불리하지 않거나(26.3%), 모르겠다(27.4%)'고 답변했다.  

이를 두고 여권의 대응이 효과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민간인 사찰이 이루어졌다"는 청와대의 '물타기 반격'이 먹혀 들었고, 특히 박근혜 위원장이 '민간인 사찰 특검 도입-권재진 법무부장관 퇴진'이라는 수습책을 내놓으며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MB'로부터 분리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민간인 사찰 사건을 매개로 한 야권의 'MB 심판론'은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통합민주당의 한 인사조차도 "새누리당이 '전 정부에서도 민간인 사찰이 이루어졌다'고 반격하면서 민간인 사찰 사건을 희석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이는 새누리당이 '프레임 전략'을 잘 짰다는 걸 뜻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 김용민 막말 파문 이슈 관리에서 문제점 노출

조선일보 등 4월 7일자 보수 언론들은 '나꼼수' 출신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한국 교회 비판 발언을 '기독교 모독'으로 몰아가는 한편 '총선 최대 변수'로 부각시켰다.
 조선일보 등 4월 7일자 보수 언론들은 '나꼼수' 출신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한국 교회 비판 발언을 '기독교 모독'으로 몰아가는 한편 '총선 최대 변수'로 부각시켰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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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통합민주당은 막판 악재로 터진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민심은 최소한 공식 사과, 더 나아가 김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명숙 대표가 지난 8일에서야 "마음의 상처를 드려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8일)했지만 한참 때를 놓친 대처였다. 야당 지도부가 선거이슈 관리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틈을 타고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조중동 등 보수성향 매체들과 시민단체들이 '막말파문' 이슈화에 진력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급속도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양상을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다.

조용휴 폴앤폴 대표는 "보수우파 유권자들의 결집을 크게 부른 제1요인은 민간인 사찰 사건이고, 제2요인은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이었다"며 "그런 점에서 보면 민간인 사찰 사건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발휘한 셈"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민간인 사찰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50세 이상 보수우파 유권자들의 적극 투표 참여 의사가 낮은 편이었지만 그 사건이 터진 이후 투표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보수우파 유권자들이 많아졌다"며 "그러면서 보수우파 유권자들이 급속도로 결집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조 대표는 "민간인 사찰 사건에 이어 보수우파 유권자들을 결집시킨 제2요인은 김용민 막말 파문이었다"며 "좌로 갈까, 우로 갈까 고민하는 중도적 보수층이 있는데 막말 파문은 이들을 새누리당으로 가게 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김용민 후보가 막말을 잘 해왔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려진 사실인데도 통합민주당은 그를 공천했다"며 "막팔 파문이 난 뒤에도 1주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등 의사결정과 선거기획, 이슈관리 등에서 큰 문제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거 전문가는 "민심의 저류에는 분명히 민간인 사찰을 향한 분노가 존재했지만 통합민주당이 그런 민심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며 "공천과정에서부터 헛발질로 민심을 잃기 시작하더니 김용민 막말 파문은 총선가도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꼬집었다.

직접 선거를 뛰었던 박성수 민주통합당 후보(서울 송파갑)는 "막판에 김용민 막팔 파문까지 터지면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의 물타기 작전이 더욱 효과를 발휘했다"며 "게다가 영향력이 큰 방송3사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민간인 사찰건을 충분하게 이슈화할 수 없었던 것도 한 가지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의 한 핵심 당직자도 "방송3사가 파업에 들어간 것은 분명히 (야권연대 진영에) 마이너스였다"며 "아무리 팟캐스트 등으로 공정보도를 한다고 했지만 민간인 사찰 사건 등을 선거이슈로 확장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 사건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결집시킨 반면, 제1야당 지도부는 공천과 선거이슈 관리 등에서 치명적인 무능함을 드러내면서 '중도층 끌어오기'에 실패했다. 여기에다 공정보도로 민간인 사찰 사건 등 주요 총선이슈를 영향력있게 확장해줘야 할 방송3사까지 파업을 하면서 예상과 상당히 다른 선거결과가 왔다는 지적이다.


태그:#민간인 사찰 의혹, #4.11 총선,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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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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