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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이웃 천호석 선생의 새로운 집짓기가 시작됐다. 지난해부터 새로운 터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공간 구성을 생각했다고 한다. 천 선생은 넓은 지하 공간을 원했다. 음악의 연주와 감상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천 선생은 지하가 소음을 통제하기가 좋고 갤러리를 병행할 수 있으니 의도를 설계에 반영했다.

4월 13일, 첫 삽을 든 천호석 선생의 집짓기 첫날
 4월 13일, 첫 삽을 든 천호석 선생의 집짓기 첫날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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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종적으로 지하를 포기했다. 높은 비용과 효율성이 떨어져서 란다. 그리고, 방수 등 건물 관리의 문제를 고민한 결과다.

멧비둘기 한 쌍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둥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모티프원의 옛 둥지를 방문해 점검하고 또 점검하고 있다. 모티프원의 난간에 있는 두개의 옛 둥지를 번갈아 오가다가 지난주에는 마침내 윗 둥지에 만 하루를 앉아서 산란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 멧비둘기의 집에 대한 장고가 끝날 날이 언제일지 궁금하다.

모티프원의 2층 난간에서 집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 멧비둘기
 모티프원의 2층 난간에서 집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 멧비둘기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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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의 건물 모서리 정원에 쌍살벌집이 떨어져 있었다. 그 집을 살펴보니 나무의 줄기가 아니라 등나무의 잎에다 집을 지은 듯하다. 등나무 잎의 크기로 보아 잎이 완전히 성숙한 한 여름에 집을 짓기 시작해 가을 단풍으로 바뀌고 겨울의 초입에 낙엽이 지면서 벌집이 낙염과 함께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작년 가을, 등나무 낙엽과 함께 진 쌍살벌집
 작년 가을, 등나무 낙엽과 함께 진 쌍살벌집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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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의 애완견 해모를 위해 나는 노출 콘크리트와 천연방수 기능이 뛰어난 밤나무 집을 지어줬다. 해모가 집안과 집밖에 있는 빈도를 종잡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비가 오는 때도, 비 맞기를 즐기고 폭설이 오는 날, 그 눈을 뒤집어쓰고 있기를 즐긴다. 14일 아침에는 짙은 봄 안개를 집 밖에서 즐기고 있었다.

노출콘크리트와 밤나무판재로 지어진 해모의 집
 노출콘크리트와 밤나무판재로 지어진 해모의 집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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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비둘기, 야생벌, 애완견…. 모두가 집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다. 사람은 집을 영속적으로 소유하려 들며 그 속에서의 안락함 외에도 신분의 과시나 재산의 증식을 기대하기도 한다.

건축이 계속되고 있는 헤이리
 건축이 계속되고 있는 헤이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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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비둘기는 단지 번식만을 위해 집을 활용한다. 포란과 육추가 끝나면 미련 없이 집을 떠난다.

멧비둘기의 둥지
 멧비둘기의 둥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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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 집 모서리에 나뒹굴고 있는 쌍살벌의 주인들은 과연 등나무 잎이 한 계절 뒤에 낙엽이 진다는 것을 모르고 나뭇잎전면에 건축을 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다. 유전자 속에 집짓는 건축술을 각인하고 태어나는 그들은 분명 집터를 고르는 능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벌들이 낙엽이 질 것이 분명한 등나무 잎에 건축을 한 것은 자신들이 이 나뭇잎의 낙엽이 지기 전 분명 그 집을 떠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꿀벌을 제외한 말벌과 쌍살벌 등 야생의 벌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모두 둥지를 떠난다. 수벌과 짝짓기를 끝낸 여왕벌은 번식의 의무를 지고 나무 속이나 땅 속에서 동면을 하게 되고, 일벌들은 삶을 마친다. 꿀벌을 제외한 벌들은 한 해에 생을 마치므로 더 이상 집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먹는 문제가 해결된 집 짐승의 경우, 주인의 뜻에 따라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집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쌍살벌의 식구들은 등나무 잎에다 집을 지었다.
 이 쌍살벌의 식구들은 등나무 잎에다 집을 지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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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휩싸인 오늘 아침 집 밖에서 아침을 음미하는 해모. 가축화된 짐승의 집은 주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안개에 휩싸인 오늘 아침 집 밖에서 아침을 음미하는 해모. 가축화된 짐승의 집은 주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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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의 건축은 아직 전체 구성의 반 정도 밖에 완성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수 년에 걸쳐서 계속 건축물이 지어질 것이다. 헤이리에는 상당히 많은 건축 규정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 규정이 제정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규정이 현재의 건축 흐름과 헤이리의 현재 상황을 여전히 잘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종종 도마 위에 오른다. 약 10여 년을 그 기준에 맞게 건축해 살아온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헤이리 건축공사 현장
 헤이리 건축공사 현장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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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가장 크게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에너지 문제다. 건축가의 개성적인 디자인 욕구가 앞서다보니 에너지 효율성에 대한 고민과 건축적 반영이 허술하다. 그 결과는 매월 전기세와 도시가스비의 청구서에 반영돼 지속적으로 대가를 치러야한다.

헤이리는 건축에 관한 많은 자체규정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헤이리의 건축이 우리사회의 건축에 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 규정이 기능성과 경제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헤이리는 건축에 관한 많은 자체규정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헤이리의 건축이 우리사회의 건축에 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 규정이 기능성과 경제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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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에 직접 건축을 하고, 또한 많은 이웃들의 건축을 지켜보면서 동물들의 집짓기에 주목하게 됐다.

동물들은 건축이 가진 본래의 목적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게 집을 짓는다. 한 치의 공간 낭비도, 에너지의 낭비도 허락치 않는다. 건축을 학습한 적이 없는 그들이 먹이의 저장과 새끼를 기르기 위한 기능성과 자연과 합일되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건축을 마치는 경제성은 신기(神技)의 솜씨임에 틀림없다.

동물과 곤충의 건축. 분수를 절대 넘어서지 않은 친환경적인 건축을 통해 사람의 건축을 반성해본다(관련 글 보기 : 폭력의 건축).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헤이리,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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