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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랜만에 다시 찾은 워싱턴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북한 광명성 3호 발사 실패 소식의 영향일까. 일전에 가보지 못했던 '항공우주박물관'에 먼저 들렀다.

나사(NASA) 조직까지 갖추고 있는 미국의 항공 수준이야 익히 짐작은 했지만, 1960년대 만들었다는 달 탐사선을 비롯해 비행체의 꼼꼼한 부품체계를 본 순간, 저것이 과연 5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백악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백악관, 사실 나는 백악관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백악관 앞에 홀로 서서 반핵 시위를 하던 '콘셉션 피시오트' 여사는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을까, 정말 하루도 안 빠지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머리 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한 여성과 반핵 이유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피시오트 여사
한 여성과 반핵 이유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피시오트 여사 ⓒ 김원식

멀리 차를 대고 백악관 앞으로 걸어가자 여느 때처럼 시위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재미 이란인들이 미국의 반 이란 정부인사들에 대한 처우를 비판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피시오트 여사는?'이라며 고개를 돌리자 피시오트 여사가 눈에 들어왔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워싱턴에 방문했던 5년 전,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말이다.

피시오트 여사는 한 흑인 여성과 이야기하며 10여 분 동안 핵무기 반대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10분을 기다린 후에야 피시오트 여사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피시오트 여사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닐 텐트 안에서 20년 전 <동아일보>에 보도된 기사의 복사본을 내 손에 꼭 쥐여 줬다. 나는 유인물을 전해주는 야윈 손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내가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피시오트 여사는 태극 모양에 '평화'라고 적혀 있는 돌덩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미래에는 핵무기가 없어야 합니다"

- 여기에서 이렇게 시위하신 지 얼마나 됐나요?
"글쎄…. 아마 20년이 훨씬 넘었겠죠(피시오트 여사는 1981년부터 경찰의 철거 조치에도 지금까지 31년 째 반핵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힘들지 않으세요?
"아니, 힘든 건 없습니다. 저는 희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위해 내가 일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힘들지 않습니다. 그냥 희생(sacrifice)이라면 몰라도 힘든 것은 없습니다."

- 개인적으로 힘든 것은 없으세요?
"개인적으로 힘든 거요? 핵무기의 위험성을 일반인에게 알리는 것이 힘들다면 힘든 것이겠죠.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생활 등 개인적인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다시금 물어 봤지만, 여사는 항상 반핵운동의 중요성만 강조했다. 아마 이 지칠 줄 모르는 힘이 31년 동안 한자리에서 1인 시위를 가능하게 한 힘임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부터 정의 찾아야"

 태극무니와 '평화'라고 쓰여진 돌을 들어 보이는 피시오트 여사
태극무니와 '평화'라고 쓰여진 돌을 들어 보이는 피시오트 여사 ⓒ 김원식
- 건강은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불편한 게 없습니다. 내가 힘이 있는 동안은 영원히 여기에 서 있을 것이다(stay here forever)."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제는 그나마 없던 치아도 다 빠지고, 키가 더욱 작아 보일 만큼 허리가 휘었다. 5년 전 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여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북한도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이제는 이란마저도 핵을 보유하려 하고 있어요. 북한 핵 보유의 경우, 이는 북한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부시의 잘못(fault)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내가 반핵운동을하는 이유입니다. 미국이 솔선수범해 핵을 먼저 폐기해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핵무기가 없어져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 한국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는 분단된 한국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통일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핵무기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핵은 끊임없이 핵을 부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핵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not matter). 하지만 미국이 문제입니다. 더 늦기 전에 미국부터 모든 핵을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부터 정의(justice)를 찾아야 합니다. 그게 나의 목표입니다."

나는 영원히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필자와 함께 V표시를 하며 사진 촬영에 응하는 피시오트 여사
필자와 함께 V표시를 하며 사진 촬영에 응하는 피시오트 여사 ⓒ 김원식

- 혹시 오바마 대통령은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오바마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니 관계 없습니다(웃음)."

- 건강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걱정 마라. 나는 괜찮다. 여기가 내 삶이 이뤄지는 곳이다. 나는 핵무기가 폐기되는 그날까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죽어도)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갑자기 피시오트 여사 주변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여사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반핵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30년 이상 홀로 반핵운동을 한 세계적 투사. 여든이 다 돼 보이는 모습에서 가슴이 뭉클해져 비켜선 자리를 좀처럼 떠날 수 없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경찰에게 다가가 피시오트 여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 경찰은 "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이 돌아왔다. 하지만, 경찰들이 할머니가 다 된 운동가를 추운 겨울에도 저렇게 놔뒀다는 생각에 분노가 밀려왔다.

다시 차를 몰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6시간. 내 머리 속에는 이미 늙어버린 여사의 모습과 "나는 죽어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핵무기와 전쟁이 없는 평화, 이땅의 평화는 그리 멀기만 한 것일까.

콘셉션 피시오트(Concepcion Picciotto)는 누구인가?
1981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백악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반전·반핵 운동가.

콘치타(Conchita), 코니(Connie)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45년 생(68세)으로 스페인 출신이며 18세 때 미국으로 이민 와 21세 때 이탈리아계 사업인과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평탄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에서의 스페인 영사관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1979년경 유명한 반전 활동가인 윌리엄 토마스(2009년 사망), 노만 메이어(1982년 경찰 총격으로 사망)등과 조우하면서 본격적인 반전·반핵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백악관 앞에서 1인 시위가 시작되자 이의 합법성 유무를 둘러싸고 논쟁과 법률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녀의 모국인 스페인에서는 그녀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한국 언론도 21년 전인 1991년, 그녀의 백악관 앞 반핵시위를 보도한 바 있다.

2004년, 마이클 무어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화씨 9/11>에도 그녀의 활동이 나오는 등 끊임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에는 부시의 악마 축 발언을 빗대어 "진정 악마는 부시이며 그는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관광객이 주로 사진 촬영을 하는 백악관 바로 앞에서 작은 간이 비닐 텐트로 생활하며 일인 반핵 시위를 31년째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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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 시위#콘셉션 피시오트#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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