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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공개한 광명성 3호 궤적
 국방부가 공개한 광명성 3호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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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북한 주민을 정치와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의 포로로 삼을 것인가?'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강행과 이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든 안타까움이다.

우선 김정은 체제의 '민생 결핍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와 만류에도 위성 발사를 강행한 데에는 할아버지 탄생 100주년을 기리고 아버지의 유훈을 관철해 '3대 세습'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국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24만 톤의 영양 지원과 어렵게 재개된 북미대화를 수포로 만들더라도, 그리고 북한의 고립과 대북 제재가 강화되어 북한 주민의 고통이 가중되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판단이었던 셈이다. 이는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체제 결속과 과시를 우위에 둔 북한 체제의 '민생 결핍증'이 거듭 확인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의 위성 발사가 유별난 것만은 아니다. 위성 발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많은 나라들은 이를 국가의 자부심으로 삼아왔다. 1950-60년대 소련과 미국은 자존심을 내걸고 위성 및 이와 종이 한 장 차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경쟁을 벌였다. 1960년대 중국이 양탄일성(원자폭탄과 수소폭탄 및 위성을 의미함)을 손에 움켜지는 동안 수천만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이란은 물론이고 한국도 위성 발사에 국가적 자존심을 내걸기는 마찬가지였다. 

MB 정부의 '네오콘식' 프로파간다

분명한 것은 위성 발사 강행으로 가중될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김정은 정권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응도 인도주의적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북한이 이번 발사에 쓴 직접 비용만 해도 무려 8억5000만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며 "미사일 한 번 쏘는 돈이면 북한의 6년치 식량 부족분, 옥수수 250만 톤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미사일 발사로 지난 2월 29일 북-미합의를 파기함으로써 영양지원 24만 톤도 받을 수 없게 됐다"며 "북한 주민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이는 주민들의 식량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정부는 북한이 13일 발사한 '광명성 3호 위성(장거리 로켓)'이 "발사 후 바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09년 4월 5일 발사된 광명성2호.
 정부는 북한이 13일 발사한 '광명성 3호 위성(장거리 로켓)'이 "발사 후 바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09년 4월 5일 발사된 광명성2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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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로켓 발사와 식량난을 연계해 북한을 비난해온 MB 정부의 프로파간다는 북한이 광명성 3호 발사 계획을 천명한 3월 17일 직후부터 시작됐다. 통일부 등 정부 기관은 북한의 로켓 발사 비용 추정치가 8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며, 이 정도면 북한 주민 1900만 명을 1년간 먹일 수 있는 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핵안보 정상회의 기간 동안 열린 각국 정상들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특히 '북한 로켓 발사 비용이 8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MB 정부의 과장된 추정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는 결국 '북한 정권이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혈안이다'라는 인식을 심화·확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말았다. 인도적 문제와 정치를 분리해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을 유도했어야 할 한국 정부가 네오콘식 정치 선전에만 매몰되고 만 것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 비용이 8억5000만 달러(약 9300억 원)에 달한다는 MB 정부의 추정이 과장되었다는 것은 남한의 나로호 발사 비용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2009년 8월 실패한 '나로호(KSLV-1)' 발사 때 들어간 비용은 5000억 원 수준이다.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와 축적된 로켓 기술을 감안할 때, 이보다 2배나 많은 돈이 들어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초청을 받아 참관인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우주과학 아카데미 소속의 유리 카라슈는 한 통신을 통해 "북한에서 로켓과 위성 제작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 평가하긴 어렵지만 대략 5000만~6000만 달러가 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 정부 추산치의 '17분의 1' 정도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궁색한 논리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발사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장관 접견실에서 김관진(오른쪽부터) 국방부장관, 성김 주한미국대사,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사령관이 회동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발사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장관 접견실에서 김관진(오른쪽부터) 국방부장관, 성김 주한미국대사,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사령관이 회동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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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만 톤의 대북 영양 지원 중단과 관련해서 오바마 행정부도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정치와 인도적 지원은 별개"라던 미국은 13일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하자 영양 지원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자신들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이 쏘아올린 것도 소형 위성을 장착한 우주발사체였지 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은 아니었다. 위성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위반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북한은 줄곧 안보리 결의안을 배격한다고 말해왔다. 또한 북미간의 2.29 합의에는 위성 발사를 금지한다는 어떠한 명시적인 내용도 없고, 북한이 여러 차례에 걸쳐 위성 발사 의사를 내비친 상황에서 이를 합의에 넣지 못한 것은 미국의 외교 실책에 해당된다.

더구나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영양 지원 합의를 발표했을 때에는 분배의 투명성을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다며 보수파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별개의 사안을 무리하게 엮어버림으로써, "정치와 인도적 지원은 별개"라는 미국 외교의 오랜 전통을 스스로 훼손하고 말았다.

결국 북한 위성 발사의 최대 피해자는 북한 주민이 되고 있다. 대결의 늪에서, 정치와 프로파간다의 경쟁에서 북한 주민의 생존권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그 1차 책임이 북한 정권에 있다고 하더라도, 네오콘식 선전전에만 몰두한 이명박 정부나 미국 스스로 자랑해온 외교 원칙을 스스로 저버린 오바마 행정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http://blog.ohmynews.com/wooksik/)에도 게재했습니다. 최근에 쓴 책으로는 <핵의 세계사>가 있습니다.



태그:#광명성 3호, #미사일,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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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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