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에게 민주주의란 사람들 개개인에게 팽이처럼 돌 수 있는 힘이 생길 때 비로소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중심을 잡고 스스로 돌 때 재벌이나 권력자들이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기란 대단히 어렵지요. 김수영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도는 그런 사회를 꿈꿨습니다."팽이. <철학 VS 철학>을 지은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시인 김수영이 생각했던 바람직한 인간상을 드러내는 시어로 <달나라의 장난>에 등장하는 '팽이'를 꼽았다.
강 박사는 지난 18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렸던 '김수영 다시 읽기' 여섯 번째 강의에서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꿨던 김수영과 그의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이 가진 의미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이날 강의에서 "<달나라의 장난>은 김수영의 첫 시집의 제목으로 승격됐던 시이고 그래서 다른 시들과는 그 격이 다르다"라며 "<달나라의 장난>에는 꼿꼿이 서서 열심히 도는 팽이를 보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을 의식했던 김수영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팽이' 같은 인간을 꿈꾼 김수영시인 김수영의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은 1959년 발표됐다. 그전까지 발표했던 시 40여 편을 모아놓은 이 시집은 김수영이 직접 손을 댄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라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갖는다. 강 박사는 "시집을 낼 때 어려운 것이 시집의 제목이 될 시를 고르는 것"이라며 "제목으로 승격된 시는 시집에 실린 시들의 어머니, 혹은 시인 자신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시집의 제목이 되는 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시의 이미지가 시집의 이미지, 나아가 시인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요절한 시인 기형도는 생전에 시집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를 아끼던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의 사후에 시집을 출간하며 제목을 <입속의 검은 잎>으로 붙였지요. 사람이 죽으면 혀가 빠른 속도로 부패합니다. 그러면서 입이 벌어져요. 입속의 검은 잎은 시신 속 부패한 혀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당시 불치병에 걸려있던 김현은 시집 전체의 제목으로 이 시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입속의 검은 잎이라는 우울한 이미지가 기형도에 덧씌워졌지요. 얼마 전 몇 명의 젊은 평론가들이 모여서 낸 기형도 평론집 제목은 <정거장에서의 충고>입니다. 그들은 <정거장에서의 충고>가 기형도의 정신이라고 본 것이지요. 두 시가 이미지가 많이 다르지요?"김수영의 시 <달나라의 장난>은 시적 화자인 김수영이 돌고있는 팽이를 바라보는 내용이다. 그는 시 속에서 팽이에 매혹되고, 비웃음당하고 운다. 강 박사는 "김수영은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팽이를 보면서 삶과 자신이, 나아가 인간의 모습이 돌아가는 팽이와 같다는 이해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팽이의 존재 이유가 도는 것에 있듯 사람 삶의 목적도 팽이처럼 스스로 돌며 살아가는 것에 있다는 얘기다.
강 박사는 "팽이의 특징은 두 팽이가 부딪치면 둘 중 하나나 둘 모두가 돌기를 멈추고 바닥에 내팽겨친다는 것"이라며 "김수영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시속에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서럽게 응시한다"고 말했다.
"돌고 있는 팽이는 모두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돕니다. 그런데 두 팽이가 부딪친다는 것은 한 팽이가 다른 팽이의 회전 스타일을 따라서 돌고 있다는 얘기지요. 부딪치는 순간 팽이는 쓰러지고 맙니다. 김수영은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보았습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지 못하고 남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순간 인간은 자기 삶을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보통 인간이 고독하기 때문에 서로 기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수영의 통찰이 옳다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의 스타일로 삶을 마무리해야 하지요."
"예술은 '자기' 없이는 불가능한 것"강 박사는 "김수영이 평생 독재에 대해 치열하게 저항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독재란 거대한 팽이가 자기의 회전 스타일을 모두에게 강요하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강 박사는 "김수영의 통찰이 옳다면 인간은 결코 타인과 하나가 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셈"이라며 "1950년대 김수영은 단독적인 스타일을 가져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서럽게 통찰했지만 1960년대 들어서는 오히려 이 점을 서럽게 생각하지 않고 당당하게 여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예술가적 면모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보통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술을 시작하고 또 예술을 잘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김수영도 이와 비슷한 인식을 1967년에 쓴 <문단추천제 폐지론>이라는 글에서 드러낸 바 있습니다.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예술가에 가깝다는 얘기지요. 여러분들도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살면 말이지요."강 박사는 "예술은 자기 이해에 도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고 동시에 자기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김수영은 예술, 혹은 진정한 인문학은 모두 고유명사로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라는 김수영의 말을 인용하며 강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