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곧 노동의 역사였다. 인간은 대지에 씨 뿌리는 노동을 통해 비로소 인간으로 거듭났다…"
거창하지만, 원래는 이 글을 이렇게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첫 문장을 쓰고 보니 다음 문장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노동과 노동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서술할 차례지만, 그럴 역량이 없었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을 읽었다. 노동 문제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노동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물론 이 책을 읽은 지금도 그런 역량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이 걸어온 길을 되짚으면서 얻은 한 가지 깨달음이 있다. 노동운동이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뚜렷한 확신이다.
정치파업? 그래, 정치파업!"국가경제를 볼모로 한 파업"에서 "정규직의 집단이기주의"까지, 노동운동을 향한 다양한 비판 가운데는 "명분 없는 정치파업"이라는 것도 있다. 순수하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를 띈 불순한 파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노동운동 탄압이야말로 대단히 정치적이었으며, 노동운동의 정치성이 오히려 당연한 것임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근대적인 임금노동자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라는 정치 상황은 이들이 겪었던 일상적 노동탄압에 민족 차별까지 더해 한국의 노동운동이 민족해방운동과 결합하게 만들었다.
해방 후 우리나라를 통치한 미군정 역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노동자 자주관리를 불법화하고, 전평에 대항하기 위해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을 결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대한노총은 이승만 정권에서도 명맥을 이어가 어용노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한노총은 이승만 개인의 권력유지 및 연장을 위해 '개헌반대궐기대회'(1950.2.19.)를 개최하는가 하면 1955년 12월에는 사사오입 개헌에 따른 이승만의 대통령 출마 지지를 위해 우마차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유당의 기간단체가 되기도 하죠.-<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149p4.19 혁명 이후의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대한노총계와 개혁적인 노동계 인사가 함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련)을 만들기도 했으나 박정희 정권은 이를 해산시키고, 자신들이 지명한 간부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만듦으로써 노동운동의 혁신은 좌절됐다. 그 외에도 박정희 정권은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정부의 개입은 노동자들의 체포, 연행, 구속, 시위 저지, 긴급조정권 발동, 노동쟁의 조정에의 비공식적인 개입 등 다양했습니다. 국가권력은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였지만 노동쟁의나 시위에 대해서는 극히 엄격했죠.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198p~199p물론 이런 식의 통제는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정권은 임금인상 가이드 라인을 설정하여 임금인상을 억제했고, 중앙과 지방에 '노동대책회의'를 설치 운영하여 노동자 저항을 봉쇄했습니다. 이와 함께 활동가들을 현장에서 분리해내는 방법으로 '블랙리스트'가 활용됐죠. 블랙리스트는 1978년에 나온 것인데 거기에 더해 전두환 군사정권은 1980년 5‧17 이후 1천여 명의 해고 노동자 명단을 각 사업장과 노동부, 정보기관에 두고 취업을 차단했어요.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272p~273p이처럼 한국 노동운동사는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해 왔으며, 이에 맞서는 노동운동 역시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정권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서 어떻게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향상시킬 수 있겠는가.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봐도 정치는 본디 한정된 재화를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행위이며, 노동운동의 주요과제 역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몫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정치파업은 잘못된 것" 운운하는 말들이야말로 노동운동을 억압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대단히 정치적이고 기만적인 수사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문제는 정치파업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한정된 재화가 온전히 자본의 몫으로 돌아가고, 분배 과정에서 노동이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정치가 한정된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데 실패해 자본의 독점을 초래한 점, 한국 정치가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정착된 점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노동 없는 민주주의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는 민주화됐다. 그러나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은 민주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민주노조를 향한 열망을 모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설립하고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개악에 맞선 총파업을 하는 등 부분적 성과가 있었지만, 소위 민주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은 IMF 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자를 희생시켰다.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에 의한 노동조합의 양보, 즉 노동의 유연화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어요.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는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합법화 외에는 합의된 사회개혁을 실천해 내지 못했죠. 더욱이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자의 희생은 막대했습니다. 이에 노동조합은 김대중 정권을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격렬히 대항하였고, 김대중 정권은 '법치주의'를 내세워 가차 없이 노동자들을 억압했습니다. 그 결과로 김영삼 정권 시절보다 훨씬 많은 구속‧수배‧해고 노동자가 생겨났어요.-<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329p~330p 김대중 정권의 뒤를 이은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 역시 억압적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크레인에서 300일이 넘는 시간을 버티며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노무현 정권을 이렇게 회상한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잘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조차 적이 되었습니다.-김진숙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중에서그래서 이 책의 후반부를 읽으며 착잡했다. 민주정부에서 왜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잘리고, 구속되고, 목숨을 잃어야 했는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귀결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큰 부문 가운데 하나인 노동이 배제된 민주주의를 진정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가. 그런 한계가 이명박 정권의 탄생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여러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장 정치적인 죽음'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노동자는 비국민?이 책에 담긴 노동운동의 역사는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2004년 즈음에서 멈춘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노동운동은 여전히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의 의회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많은 기대와 가능성을 낳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좋다고 보기 어렵다. 노동유연성이란 미명 하에 벌어지는 정리해고는 더욱 일상화됐고,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정리해고 문제의 상징이 된 쌍용자동차에서는 3년 동안 22명의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이 세상을 떠났지만, 정치권은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총선 정국에서 발생한 22번째 희생자 고 이윤형 씨의 죽음, 자본과 이명박 정부의 공모 속에서 발생한 이 "가장 정치적인 죽음"은 선거 의제가 되지 못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1일 저녁, 평택에서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텐트 4차 집중 포위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고, 트위터에는 그에 대한 소식들이 올라오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3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연행됐다는 트윗, 쏟아지는 비에도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트윗. 그 중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jomosamo)의 트윗이 눈에 띈다.
정치권에서 선거 전후 쌍차 노동자 죽음이나 해고 비정규직 문제가 의제화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봅니다 2008촛불 때나 최근까지 시민의 이름으로 열린 광장에 적극 참여했던 정치인들은 왜 쌍차 현장엔 잘 오지 않는 걸까. 노동자는 비국민인가 하는…그의 짧은 글을 읽으며 아픈 마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은 아직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더 정치적인 노동운동이다. 노동유연성이라는 미명 하에서 벌어지는 정리해고와 억압적 노동정책에 맞서는 운동, 자본의 독점을 깨고 노동이 온당한 몫을 되찾는 운동.
"가장 정치적인 죽음"을 막기 위한 '가장 정치적인 노동운동'이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이원보 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펴냄, 2005년 5월, 1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