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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부터 서울형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는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새누리당 문대성 국회의원 당선자
 새누리당 문대성 국회의원 당선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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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사학위 논문 표절문제로 시끄럽지요? 결국 아니라고 버티며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해당 대학교에서 표절 확인 발표를 하자 바로 탈당을 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학교는 '표절 천국'입니다

'표절', 분명 도둑질입니다. 저도 최근에 표절을 당했습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수많은 회의를 거쳐서 1년여 넘게 정리한 내용과, 제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 노력과 정성을 들여서 만든 자료를, 다른 학교에서 아무 말 없이 거의 대부분 그대로 그 학교 이름과 교사 이름을 넣어서 낸 것입니다.

그 학교 교사들이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한다고 했지만, 피해를 당한 당사자는 사과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끝나는 일이 아니더군요. 특히 다른 곳도 아니고 새로운 교육을 한다는 혁신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 제가 받은 충격이 매우 큽니다.

학교에서 표절을 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학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표절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표절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해마다 3, 4월이면 나오는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서(학교교육계획서)는 처음에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게 이 학교 저 학교 서로 베껴서 만든다는 것은 교사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은 학교교육계획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학교 이름이 들어 있는 곳도 종종 발견도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 학교의 철학과 내용은 간 데 없고 온갖 자료와 업무를 다 베껴넣어서 분량이 400쪽이나 되는 곳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편집디자인은 왜 그리 쓸데없이 화려한지요. 큰돈 들여 화려하게 내놓지만, 아무도 안 본다는 것이 또 큰 문제입니다.

우리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서를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는 그동안 학교현장에서 느끼던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기에 작년 첫 해부터 학교교육과정 계획서를 새롭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작년에 처음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서를 편집하면서 가장 먼저 그동안 학교교육계획서 내용이 각 부서별 업무만 잔뜩 들어가 있던 것을 우리 학교가 추구하는 철학이 충분히 담길 수 있게 조정했고, 교육내용을 사람 중심으로 바꾸었습니다.

올해는 두 번째로 작년에 바꾸어 본 경험에 따라 작년에 완전히 바꾸지 못한 것, 부족한 것을 좀더 새롭게 바꾸었는데,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쓸데없는 내용 줄이기, 즉 '다이어트'입니다.

학교교육계획서에 이것저것 다 넣을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내용만 넣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학교교육계획서를 읽기 싫게 딱딱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는 '목표', '방침', '세부실천사항'이라는 틀을 없애서 부드럽게 했습니다. 특히 학교교육계획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인 '지시', '지침' 같은 것과 '등', '및'이란 말을 많이 없앴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178쪽이던 것을 반으로 확 줄여서 올해는 부록 포함해서 96쪽짜리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서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편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어떤 내용을 넣고 빼느냐'입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 고민은 더욱 심했습니다. 그래도 나온 것을 보니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입니다. 내년에는 두 해 고민한 것을 바탕으로 올해보다 더 나은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서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 교육과정은 교사들이 함께 만듭니다

대부분의 일반 학교들은 먼저 관리자와 부장들 중심으로 학교교육계획서를 만듭니다. 교사들은 위에서 만들어서 내려보낸 학교교육계획서를 바탕으로 해서 학년과 학급 교육과정을 짜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반대로 진행됩니다.

먼저 전체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교와 학년에서 할 일을 함께 논의해서 결정한 것을 학년교육과정에 담고, 교육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저는 교사들이 함께 의논한 학교전체 내용을 담아 편집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체제로 운영되는 우리 학교에서는 학교교육계획서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사들은 이미 논의과정에서 결정된 내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학교 교육계획서에 반드시 들어가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빠진 내용이 '학교장 경영방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는 학교장 경영방침으로 돌아가는 학교가 아니라, 전체 교사들의 논의로 이루어지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편집하면서 고민한 점은 우리 학교 교사들이 여러 날을 함께 논의한 결과를 어떻게 잘 담느냐입니다. 기존의 다른 학교 교육계획서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거나 베끼지 않고, 우리 학교의 철학을 담은 우리 학교만의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을 내느라 표 하나하나 우리 학교 내용에 맞게 새로 다 만들고 바꾸었기 때문에 시간이 무척 많이 걸렸습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날 동안 오며가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내용을 앞뒤로 이리저리 바꾸고 또 바꾸기를 여러 번 하는 바람에 다른 학교보다 학교운영계획서 발행이 늦어졌습니다.

교육청에서는 제출기일이 넘었다고 빨리 안 낸다고 독촉을 했지만, 저는 도저히 고민이 덜 끝난 채로 서둘러서 만들거나 또는 다른 학교처럼 베껴서 낼 수 없었기에 교육청 담당 장학사한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해서 나온 것이 우리 학교 교육과정 운영계획서입니다.

 우리 학교가 낸 자료가 귀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이 자료 안에 있는 내용을 채우기까지 우리 학교 전체 교사들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과 땀, 고민과 정성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베낀다해서 우리처럼 할 수 없습니다. 베껴가면 겉모습만 그럴싸한 짝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올해 우리 학교에서 낸 학교교육과정 안내 자료들 우리 학교가 낸 자료가 귀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이 자료 안에 있는 내용을 채우기까지 우리 학교 전체 교사들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과 땀, 고민과 정성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베낀다해서 우리처럼 할 수 없습니다. 베껴가면 겉모습만 그럴싸한 짝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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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과 '베끼기'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나온 내용을 그대로 베끼다니요? 학교 안내자료로 우리 학교 자료를 거의 그대로 베껴쓰다시피 해서 만든 학교도 있었지만, 올해 나온 다른 학교 교육계획서를 보니 작년 우리 학교 것을 그대로 베낀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우리 학교 것을 그대로 베낀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급해서', '우리 학교와 하는 프로그램이 같아서', '내용이 좋아서', '우리 학교에서는 도저히 그런 내용을 만들 수가 없어서', '표 만드는 데 힘들고 시간이 걸려서'라고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우리 학교 내용이 좋아서', '우리 학교를 따라하고 싶어서' 우리 학교교육내용까지 똑같이 베껴 쓸 권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같은 내용을 준비한다 하더라도 학교마다 그 학교 구성원들과 학교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해서 내용을 만들어야지 남의 학교 것을 똑같이 베껴서는 안됩니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남의 것이 아닌 내게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려면 스스로 새롭게 해석해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프로그램이 가지는 알맹이, 즉 '철학'입니다. 문서만 베낀다고 내용까지 따라할 수 없습니다. 껍데기만 그럴싸한 짝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학교 내용도 모두 다 창작한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앞서 간 여러 학교들 것을 토대로 삼아서 우리 학교가 따라하면 좋을 것과 절대로 따라해서는 안 될 것들을 구분하고, 따라하면 좋을 것은 그대로 베끼지 않고 오랜 논의 끝에 우리 식으로 다르게 해석하고 내용을 채웠습니다. 표도 되도록 남의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쓰지 않고 우리의 내용에 맞게 바꿔서 썼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 것을 보고 내가 고민하면서 새롭게 해석해서 온전한 내 것으로 삼는 것이 바로 '벤치마킹'이라는 것인데, '벤치마킹'은 '베끼기'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 학교 내용과 틀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하지만 그대로 '베끼는' 것은 사양합니다. 아무리 교육적으로 좋아서 '공유'한 자료라 해도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복사해서 쓰면 안 됩니다.

학교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표절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교육계획서 베끼기 문제만 얘기했지만, 학교 안에서 교사들이 하고 있는 표절은 무지 많습니다. 학습지도안, 학습지, 평가문항도 교사 자신이 만들어 쓰는 일이 드물고 대부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씁니다.

그리고 승진점수를 위해서 연구대회에 제출하는 연구보고서도 대필해주는 업체에 돈을 주고 부탁을 하거나, 지방 연구대회에 출품한 자료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제출하는 일이 많다는 것은 이미 교사들 사이에 다 알고 있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심지어 교장공모 때 교장선생님들이 낸 학교장 경영계획서도 다른 사람이 쓴 내용을 그대로 베껴서 내서 똑같은 내용이 여기저기에서 발견이 되고 있으니 말 다했지요?(관련기사: 서로 다른 사람이 낸 학교경영계획서가 똑같다니!)

저는 우리 나라 교육이 발전되지 않는 것이 함부로 하고 있는 '표절'에도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학교교육계획서는 물론이고, 학습지도안, 학습지, 평가문항…. 자신의 내용을 정리해서 자신이 스스로 내용을 채우지 않고, 힘들고 어렵다고 남의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서 어렵게 만든 것을 쉽게 복사해다 쓰는 한, 우리 학교 교육은 늘 요 모양 요 꼴일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번 국회의원의 논문 표절 문제를 지켜보면서, 남의 문제에는 매우 분개하면서 자신에게는 너무 관대하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번 기회에 강 건너 일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쉽게 하고 있는, 내 안의 습관처럼 굳어진 표절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표절문제, #학교교육계획서, #학교안표절문제,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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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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