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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섭 전이 열리는 관훈미술관 1층 전시실. 중앙에 '울릉도 향나무(2008)'가 보이고 아래는 그의 대작 '탑(2007-2008)'의 부분화로 자신을 역사의 증인으로 보는 것 같다. 실제 작가의 인상도 이 그림과 흡사하다
손장섭 전이 열리는 관훈미술관 1층 전시실. 중앙에 '울릉도 향나무(2008)'가 보이고 아래는 그의 대작 '탑(2007-2008)'의 부분화로 자신을 역사의 증인으로 보는 것 같다. 실제 작가의 인상도 이 그림과 흡사하다 ⓒ 김형순

손장섭 작가의 회고전이 인사동 관훈미술관 1,2,3층 전관에서 5월 1일까지 열린다. 대형작품 10점을 포함, 50여 점을 선보인다. 우리는 그를 4·19 등 격동의 현대사를 주제로 그리는 역사화가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연과 서민의 삶과 신목 등도 많이 그렸다. 또한 분단시대를 아프게 살아가는 작가로서 한 시대의 증언자 몫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손 작가는 1941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서라벌 고등학교를 거쳐 홍익대미대에 입학한다. 개인전 6번을 열었고 제2회 민족미술상, 제10회 이중섭미술상, 제15회 금호미술상을 수상했다. <삶의 길, 회화의 길>을 출간했고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이고 '민족미술협회' 초대대표'를 지냈다. 지금은 '민족예술인 총연합'과 '민족미술협의회' 회원이다.

4·19세대와 그 시대를 증언하다

 손장섭 I '사월의 함성' 종이에 수채화 65×53cm 1960
손장섭 I '사월의 함성' 종이에 수채화 65×53cm 1960 ⓒ 손장섭

'사월의 함성'은 손 작가가 19살 고3 때 그린 그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다. 4·19혁명 당시의 함성소리와 시위의 격렬함과 긴박한 분위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그날 현장을 경험하지 않고는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분단시대가 식민시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도 알아차린 것인가. 그는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민중이 역사의 주인임을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다.

위 작품을 보니 1960년 '민중은 영원히 앞서 있소이다'라고 노래한 김수영 시인이 생각난다. 그는 시를 '행동의 계시'로 보고 한국시사에서 역사의식과 사회적 정서를 기반으로 현실 참여적 시를 도입한 선구자다. 김수영은 1960년부터 1961년까지 혁명의 순수성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지만 위 작품은 그날의 현장감만은 생생하게 전해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그 현실을 고발하다

 손장섭 I '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400cm 2007-2008
손장섭 I '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400cm 2007-2008 ⓒ 김형순

세계에서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은 허리가 잘린 불구의 몸이나 마찬가지다. 백낙청 교수는 그래서 분단을 괴물로 비유한다. 우리도 괴물이 될 수 있고 괴물지도자를 뽑고 괴물정권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린 여전히 휴전체제라 교육비에 비해 군사비는 엄청 많고 젊은이는 군에서 삶의 전성기를 다 보내야 하고 또한 제대로 된 민주주의도 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린 4대강국 사이에 끼여 산다. 게다가 북한이 막혀 걸어서 세계여행도 할 수 없다. 남한은 그렇게 완전히 고립된 섬이다. 여기서 탑이란 그런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는 탑을 의미하는가. 다산 정약용은 19세기 통일조선을 살면서 "아! 우리 겨레는 마치 자루 속에 갇힌 것 같구나"라고 자조어린 시를 토해냈지만 분단된 우리처지는 어찌하랴.

걸게 형식으로 그린 역사화

 손장섭 I '우리가 보고 의식하는 것들(부분화)'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300cm 2011
손장섭 I '우리가 보고 의식하는 것들(부분화)'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300cm 2011 ⓒ 김형순

위 작품은 그의 70여 년 생애를 정리하듯 걸게 형식으로 그린 역사화로 민주화과정에서 일어난 주요사건을 농축해서 보여준다.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와 1973년 납치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무모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인혁당사건, 전태일의 분신과 5월 광주민중항쟁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의 말대로 그는 회화로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맥을 읽고 현실적 삶을 녹여내어 증언으로서 역사를 다시 세우는 메타한 풍경을 그린다.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그림이 개념적인 글보다 훨씬 파급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뼈아픈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작가는 갈급한 심정으로 이런 그림을 고집하는지 모른다.

분단의 창으로 본 슬픈 현실

 손장섭 I '역사의 창(부분화)'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16cm 2009
손장섭 I '역사의 창(부분화)'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16cm 2009 ⓒ 김형순

분단된 역사의 창으로 본 한국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냉전의식 속에 단절감과 적대감이 몸에 배여 우리는 모르게 피해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 미완이 혁명처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일이 많음을 아쉬워하는지 그림 속 구름은 눈물을 흘린다. 이런 참담한 세월을 50년이나 낭비하고 있으니 그 시간이 아깝다는 뜻이리라.

하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이 많다. 신자유주의시대, 젊은이들은 시대와 역사의 과제보다는 취업이나 스펙 쌓기에 정신없고 어른들은 생존과 가족부양문제로 하루하루 힘겹게 산다. 이런 틈을 타 분단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잡고 세상을 호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문제를 민족적 양심에서 통찰력 있게 봐야한다는 주문이 담겨있다.

금수강산, 정감어린 붓질로 살리다

 손장섭 I '금강산 만물상'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00×200cm 2008
손장섭 I '금강산 만물상'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00×200cm 2008 ⓒ 김형순

손 작가는 또한 10대에 6·25를 비롯하여 그 이후 수없는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 힘겨운 현실과 역사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안으로 자연경관을 그린 것인가. 하여간 그는 전국을 돌며 산과 바다를 많이 그린다. 정감어린 금수강산을 두꺼운 붓질로 살려낸다. '금강산 만물상'에서도 우리는 겸재의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멋과 기백이 느껴진다.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 신목을 그리다

 손장섭 I '궁촌 신목'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300cm 2006-2009
손장섭 I '궁촌 신목'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300cm 2006-2009 ⓒ 김형순

손장섭 작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그리는 것은 바로 덕송, 적송, 반송, 은행나무, 정자마무 등 신목이다. 나무에 신(神)이 붙은 것은 그만큼 거룩하고 신령하다는 뜻이다. 신목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을의 친교와 소통과 축제와 제사가 벌어지는 곳이다. 여기서 소원도 빌고 대동굿도 하면서 힘을 얻었다.

작가가 이렇게 신목에 애착을 보이는 건 마을공동체를 잘 이루면 이게 국가공동체도 잘 이루어지고 마을의 작은 통일이 나라의 큰 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는 뜻인가. 하여간 신목이야말로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같이 견디어낸 버팀목 같은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신성한 숭배를 받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다.

독도의 동도에서 서도를 보다

 손장섭 I '독도 동도에서 서도를 보다'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7×290cm 2009
손장섭 I '독도 동도에서 서도를 보다'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7×290cm 2009 ⓒ 김형순

독도의 영토문제가 미해결인 것은 우리가 8·15 해방을 맞이했으나 아직도 진정한 독립국가가 아님을 암시한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만약 한국이 통일국가라면 그렇게 무리하고 무례한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다.

'동도에서 서도를 보다'를 보면 이게 마치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것의 축소판 같다. 남북대치는 우리가 민주국가라고 하나 헌법 위에 법인 국가법이 있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고 우리역사를 왜곡시킬 위험도 높다. 독도문제도 결국은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아 일어나는 비극 중 하나다. 작가는 이런 점을 아쉬워한다.

일상에 숨은 작은 분단 형상화

 손장섭 I '달동네에서 아파트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16cm 2009
손장섭 I '달동네에서 아파트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16cm 2009 ⓒ 김형순

끝으로 '달동네에서 아파트로'를 보자. 달동네까지도 재개발구역이 되면서 아파트가 새로 세워지고 결국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나가게 되고 외부사람들만 남게 되는 이런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렇다고 당장 무슨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 아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우리주변에 보이지 않는 분단이 이렇게 확대되고 있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관훈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2-47번지 02) 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입장무료



#손장섭#분단시대#419혁명#민중미술#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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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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