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개의 강의실을 청소하고, 대학 교정 곳곳을 관리하면서도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어려움을 겪던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5개월의 집단교섭 끝에 임금 11% 인상, 명절상여금 지급 등을 얻어냈다.
24일 낮12시 공공운수노조·연맹(공공노조)은 서울시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희대, 고려대, 고려대병원,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6개 사업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집단교섭 결과를 발표했다.
시급 10% 올라가고, 점심값과 명절 상여금도 받게 돼각 사업장에서 지금껏 시간당 4600원을 받고 일했던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 1000여 명은 앞으로 시간당 5100원씩, 한 달에 106만5900원을 받고 일한다. 3만~4만 원 정도 나오거나 본인이 부담해야 했던 점심값도 매월 6만 원씩 지급받는다. 작은 선물세트 하나로 끝나던 명절에도 상여금 15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현정희 공공노조 부위원장은 "유령 같던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 우리의 근로조건을 스스로 개선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집단적으로 투쟁했다는 성과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했다.
단체교섭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던 대학당국이 교섭에 적극 나선 점도 5개월간 지지부진했던 교섭이 타결돼 지난 19일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데 주효했다.
그러나 청소·노동자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이숙희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 홍익대분회 분회장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았다. 지난해 홍익대는 용역업체를 바꿀 때 고용승계를 하지 않아 미화원과 경비원을 170여명 해고했다. 49일간 농성한 끝에 노동자들은 복직됐지만 대학 측이 노조를 상대로 2억8000여만 원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갈등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이 분회장은 "홍익대가 청구한 금액이 며칠 전까지 제 머릿속에서 벌레처럼 구물구물 기어다닌 것 같았는데 (1심에서 승소하니) 이제야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19일 "학교 쪽의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비정규직들의 49일간 투쟁 끝난 홍대... 아직 갈등 남아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75명 전원이 홍대분회 소속인 것과 달리, 경비노동자 63명 가운데 절반 가량은 '홍경회 노동조합(아래 홍경회)'이라는 다른 노조에 속해 있다.
지난해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정부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일 경우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해 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했다.
공공운수노조는 단체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냈다. 하지만 3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홍경회 소속 경비원이 과반이라며(36명) 경비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은 홍경회에 있다고 판단했다.
홍대 분회는 지난해 2월 농성을 풀면서 용역업체 '용진실업'과 '이후 보충교섭은 공공노조와 진행한다'는 조항에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에도 사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자 홍대 분회는 교섭응낙 가처분 소송을 냈고, 지난 1월은 '공공노조가 교섭대표노조'라고 판결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용진실업은 '홍대분회에는 교섭권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분회장은 "집단교섭은 모두가 함께 했던 공동투쟁이었지만 단 하나의 사업장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며 "(이번 단체교섭 결과의) 기쁨은 잠시 뒤로 하고, 함께 시작한 모두가 함께 승리할 때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공공노조 관계자와 생활임금쟁취여성비정규직 공동투쟁연대, 청소·경비노동자 등 40여명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공공노조는 홍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오는 5월 둘째 주부터 시작하는 동덕여대와 덕성여대 집단교섭에서도 임금 인상과 근무환경 개선 등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