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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원 관장과 그를 이어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박상빈 대표.
▲ 배다리 막걸리 박물관. 박관원 관장과 그를 이어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박상빈 대표.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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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10번의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변함없는 술맛을 지키고 있는 경기도 고양에 있는 '배다리 술도가'를 찾아갔다.

1915년 '인근상회'라는 이름으로 시작, 능곡양조장을 거쳐 지금의 배다리 술도가라는 이름을 얻은 이 양조장은 5대에 걸쳐 이어오는 전통있는 양조장이다. 2004년부터 '배다리 술 박물관'을 열어 대중들에게 전통주의 역사와 우수성을 홍보 중이다. 배다리 술도가의 4대 대표이자 현 배다리 술 박물관의 관장인 박관원(80)씨와 그의 아들 박상빈(50. 현 배다리 술도가 5대 대표)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막걸리와 함께한 희로애락  

"1945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틀도 안지나 삼촌들이 이권을 상속해 달라고 했어. 같은 해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지. 그럼에도 어머니와 나는 꿋꿋이 지켰어. 그래서 지금의 배다리 막걸리가 있는 거야." 

14세 때 박관원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같은 해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며 큰 위기에 직면했다. 양조면허를 탐내는 주변 사람들의 유혹을 뿌리치며 어머니와 함께 양조장을 지켰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양조장 건물이 불타버렸다. 1970년대 행정 통합으로 주변 양조장들이 통폐합(특별법으로 지역 양조장이 통폐합되며, 고양시 안에 5개 양조장이 고양 탁주 합동 제조장으로 통합되었다)되는 등 수차례 고비도 맞았다.

고양 탁주 합동제조장에서는 공동으로 '배다리 막걸리'와 '통일 막걸리'를 생산·판매 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배다리 술도가는 프리미엄 막걸리를 개발, 고양 탁주 합동 제조장에 주문·제작을 위탁 판매하고 있다. 현재 고양탁주 합동 제조장 대표는 박상빈씨가 맡고 있다.

시간이 흘러 14세 소년이었던 박관원씨는 어느덧 여든의 장인이 되었다. 그가 겪어온 세월만큼 막걸리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절이 변해 도시의 젊은이들도 유행처럼 막걸리를 찾는다. 반면 시골에서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졌다. 소주와 맥주에게 자리를 내어 준 것이다. 막걸리가 겪고 있는 커다란 변화 앞에 박관원씨가 바라는 것은 배다리 술도가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전통주의 역사를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손자에게 대를 물려줘서 5대에 걸쳐 이어온 전통주를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급화 전략으로 틈새시장 노려

배다리 박걸리 박물관 2층에는 우리나라의 술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우리 일행에게 전시된 물건을 설명하고 있다.
▲ 박관원 관장. 배다리 박걸리 박물관 2층에는 우리나라의 술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우리 일행에게 전시된 물건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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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도 고급 식당과 백화점에서 판매될 수 있어요."

박상빈씨는 거대 제조업체와 후발 주자들과의 경쟁에서 고급화 전략을 택했다. 기존의 비슷한 품질과 가격의 경쟁은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생각에서 내놓은 야심작이 바로 '배다리 프리미엄 막걸리(블루라벨 ,블랙라벨)'이다. 기존의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고급스런 유리병에 담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더하며, 건강을 생각해 인공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친환경 인증 햅쌀을 사용했단다. 미래의 잠재 고객인 젊은 층의 호응을 얻으려면 '시각'뿐만 아니라 '건강'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블랙 라벨 프리미엄 막걸리는 한 달 평균 약 5천 병이 판매되고 있으며, 기존의 막걸리의 5배 비싼 가격에 서울 내 고급 식당과 백화점에 팔려나가고 있다고 있다.

한국 틈새시장 성공에 힘을 얻어 지난 2월에 일본에 2000병의 프리미엄 막걸리(블루 라벨)를 수출했다. 신주쿠의 번화가 술집에 샘플을 보내 현지의 반응도 조사 중이다.



막걸리 제조의 원칙 '자식 같은 막걸리' 


배다리 막걸리 양조장.
 배다리 막걸리 양조장.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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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원, 박상빈 부자의 막걸리 사랑은 특별했다. 예상 판매량만큼 생산을 하고 있다. 많이 생산하면 반품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자식' 같은 막걸리를 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판매보다는 품질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박관원 관장은 지금도 틈틈이 제조 시설을 점검한다고 한다. 이곳저곳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점검을 하니 직원들도 자연스레 애정을 갖는다고 한다. 또한 매일 시음을 하며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노력들이 지금의 '배다리 막걸리'의 원동력이었다.

현대 사회가 자극적인 음식을 좇다 보니 막걸리도 자극적(단맛)인 맛으로 변했다. 인공감미료를 첨가하면서, 유해성 문제와 전통 막걸리의 본연의 맛을 잃어간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 감미료를 넣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첨가하지 않으면 쓴 맛이 강하고 , 보관기간을 10일을 넘기기가 힘들다."

소비자들의 요구와 건강을 생각하며 실패를 거듭해 대안을 찾았다. 극소량의 인공감미료 아스파탐과 천연감미료 스테비아를 적절히 혼합한 것이다. 인공 감미료의 첨가를 줄이고 천연 감미료를 넣음으로써 '건강과 맛'을 동시에 잡았다고 한다.    

감미료뿐만 아니라 '수입산 쌀'의 사용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통주인 막걸리에 수입산 쌀을 쓰는 것은 단가를 낮추려는 양조장의 상술이다"라며 비판했다.

박상빈 대표에 의하면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는 쌀 가공식품 활성화 방안으로 가공용 수입쌀, 공공비축용 재고미 등을 장려했다고 한다. 때문에 배다리 막걸리는 수입쌀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요구에 2010년부터 우리 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상빈씨는 "소비자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트림도 두통도 없어요"

박물관 한쪽에서는 방문객들이 시음을 하고 있었다. 우무균(42. 건축업)씨는 "다른 막걸리에 비해 탄산이 적어 목 넘김이 부드럽고, 두통이 없는 깔끔한 맛이 특징"이라 말했다. 강혜원(30. 사무직)씨는 "젊은 여성층의 취향에 딱 맞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분당에서 막걸리 동호회 <백막>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주영(50. 건축업)씨는 "보통 전통방식 막걸리는 마신 후 신맛 다음에 단맛이 느껴지고, 대량 생산 방식은 단맛 다음에 신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배다리 막걸리는 두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의 융합 


배다리 막걸리
 배다리 막걸리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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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융합'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장인정신이 깃든 전통과 새로운 기술의 융합은 막걸리의 변신을 가져왔다. 이러한 점에서 '배다리 술도가'는 중소 양조장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대량생산의 획일화된 맛이 아닌 소량생산의 독특한 맛과 고급화 전략으로 대형업체와의 경쟁에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는 나에게 인생이나 다름없고, 모든 것을 쏟아 정성스레 연구하고 만들었습니다. 막걸리는 '정'이 있는 술이니만큼 고달픈 삶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친구로서 즐겨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배다리 술도가를 지켜가고 있는 박상빈 대표의 진심 어린 바람이다.

2층 전시관 한켠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밀랍과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 박정희와 막걸리 2층 전시관 한켠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밀랍과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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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를 사랑한 박정희... 그리고 김정일         
'배다리 막걸리'하면 흔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막걸리를 찾으면 능곡양조장 관할 파출소장이 직접 청와대까지 배달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그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쌀로 막걸리를 빚는 것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의 충성스런 경호 실장은 막걸리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쌀을 첨가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 쌀 막걸리를 금지시킨 장본인이 그 사실을 알면서 마셨나?
"쌀로 만든 것을 아는 사람은 경호 실장 , 감식관 , 나(박관원 대표) 밖에 없었지."

배다리 막걸리를 두 번째로 찾은 사람은 '김정일'이었다. 1999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평양 방문시 김정일 위원장의 부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시던 막걸리를 맛보고 싶다"라고 말해 2000년 남북정상 회담 만찬주로 사용되었다.

상반되는 두 인물이 찾았던 막걸리,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공통분모는 한민족은 '막걸리'를 마신다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마케팅을 식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박정희와 김정일이 관련된 광고 문구는 최대한 자제하고, 100년 전통의 전통과 품질로 승부하겠다"고 박상빈 대표는 말했다.

배다리박물관에 가면?
배다리 박물관의 문을 열면 '막걸리 오덕'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1. 허기를 면해 줍니다.
2. 취기가 심하지 않게 합니다.
3. 추위를 덜어 줍니다.
4.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아 줍니다.
5. 평소에 못하던 말을 하게 하여 의사를 소통시켜 줍니다.

더불어 좌측에 술 빚기에 앞서 술이 잘 익기를 기원하는 아낙을 재연해 놓은 작은 인형은 술 장인의 술 빚는 마음가짐을 보여주고 있다.

2층의 제 1전시장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에 전시된 책이 한 권 있다. 1907년부터 1935년까지 작성된 우리나라 주류업에 관한 공식기록을 편역한 것으로 1935년에 발간된 '조선 주조사'라는 책이다. 이 책에 배다리술도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전시실 내부에는 술을 빚을 때 쓰였던 각종 도구들(술을 거르기 위한 체와 용수, 누룩을 만드는 데 쓰는 누룩틀, 나무 깔때기 등 다수)과 조선시대 이후부터의 술보관용기(나무술통, 술장군, 페트병 등)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나 2미터 높이의 정종 사입통은 그 크기와 위엄이 보는 이들을 압도할 만하다. 

제2전시장에서는 배다리 술도가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유품들과 '삼송리-주막집 실비옥'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밀랍인형이 전시되어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전통주의 역사를 보존하고 알리고자 발품을 팔아 소장품을 모은 장인의 애틋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2004년에 개장한 배다리 박물관은 현재 방문객이 한 달에 1500명~2000명이다. 주말에 자전거 동호회나 걷기모임의 회원들이 찾아와 박물관을 관람하고 1층에 마련된 카페에서 막걸리를 즐긴다. 앞으로 방문객을 상대로 '직접 술 빚기'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배다리 술 박물관>

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1동 470-1번지(3호선 원당역 6번 출구 도보 5분)
관람 및 카페 운영시간: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휴관 매주 월요일)
문의: 031)967-8052



태그:#배다리막걸리, #막걸리, #프리미엄, #전통주, #고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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