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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지난 3월 1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 '4·11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야권연대 합의문 서명식'에서 각자 서명한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당시 야권연대의 공약은 '공사 중단과 재검토'였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지난 3월 1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 '4·11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야권연대 합의문 서명식'에서 각자 서명한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당시 야권연대의 공약은 '공사 중단과 재검토'였다. ⓒ 권우성

'민주통합당이 선거 패배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돌리면 어쩌나?'

4.11 총선 다음날, 제주 강정마을로 향하면서 든 걱정이었다. 기우이기를 바랐지만, 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통합당 내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좌클릭'을 한 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또 걱정이 앞선다. 민주통합당에서 '중도강화론'이 득세해 한미FTA와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대선 국면에서도 또 다시 새누리당의 '말 바꾸기 프레임'에 걸려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4.11 총선 전에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야권연대의 공약은 '공사 중단과 재검토'였다. 당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 고문의 입장은 '안보적 가치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공사 중단과 재검토'는 입장이지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 전 대표와 문 고문이 말한 '안보적 가치'가 무엇인지 설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절차적 문제의 씨앗은 노무현 정부 때 뿌려졌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87명이 모여 박수치며 통과시킨 국책사업

 2007년 해군기지건설 강정마을 찬반주민투표 당시를 담은 유튜브 동영상(양동규 감독 제작).
2007년 해군기지건설 강정마을 찬반주민투표 당시를 담은 유튜브 동영상(양동규 감독 제작). ⓒ 유튜브 갈무리

1900여 명의 마을 주민 가운데 불과 87명이 모여 표결도 없이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시점은 노무현 정부 임기 때인 2007년 4월 26일이었다.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마을 총회 이전에 설명회나 공청회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고, 군사작전 하듯이 단 15일만에 결정하고 말았다.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마을 주민들은 2007년 8월 20일 다시 임시총회를 소집했다. 마을주민 725명 가운데 680명이 반대표를 던졌음에도 이 결과는 묵살당했다.

제주 해군기지가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할 때, 민주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당사자는 노무현 정부였던 셈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그리고 지난해 7월 보수진영에서 해군기지 문제를 '이념 대결'로 몰고 가기로 작심한 이후, 절차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이 절차적 문제와 사회적 갈등 비용을 들어 공사 중단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참여정부 때 이뤄진 잘못된 결정 방식에 대해 강정마을 주민들과 국민들에게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그리고 절차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나아가 화순-위미-강정으로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궁극적인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래야 새누리당의 '말 바꾸기'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고, 또 많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다가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념 문제로 변질된 국책사업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가 평탄화 작업을 하기 위해 모래를 투하하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가 평탄화 작업을 하기 위해 모래를 투하하고 있다. ⓒ 유성호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국책사업이나 안보사업의 성격보다는 정치와 이념 문제로 변질된 지 1년 가까이 지났다. 지난해 봄부터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은 해군기지 반대 운동 주민과 활동가들을 '종북좌파' '김정일의 꼭두각시' '친중 사대주의'로 몰아붙이면서 색깔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노선을 '반미'로 몰아붙였던 보수진영은 지난해부터 자주국방을 위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전을 거치면서 '노무현 정부 때 천명한 대양해군 전략이 연안 방어를 망쳤다'고 맹비난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대양해군을 위해 제주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운운한다.

2007년 6월, 해군기지 결정 과정의 문제점을 인식한 박근혜 위원장이 당시에는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한 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총선 국면에서는 야당을 겨냥해 "해군기지 건설을 이제 와서 당리당략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선거를 의식한 '말 바꾸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주통합당 역시 떳떳하지 못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군기지에 대한 입장 변화의 사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도, 과거 잘못된 결정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는 결국 민주통합당의 입장 변화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위한 '전술적 변화'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보수진영의 비난에 시달리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다.

결자해지 자세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지난 3월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참여정부와 비교할 때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사유는 많다. '민군 복합관광 미항'이라는 당초 사업 취지는 많이 퇴색된 지 오래다. 해군 보고서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입지로 적당한 지도 다시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저항과 무리한 공권력 투입이 충돌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급등하고 있다.

국가전략과 안보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때 해군기지 사업 추진의 가장 큰 명분은 말라카 해협의 해적 위협 대처였지만, 주변 국가들의 공조에 힘입어 말라카 해적은 거의 소탕됐다. 또 다른 명분인 이어도 문제 역시 영유권 분쟁 대상이 아니고, 이명박-후진타오 정상회담 차원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해놓고 한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해 이어도 초계 활동에 나서면, 한중 관계의 마찰과 이에 따른 한국 안보와 경제 불안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서해상의 안보가 크게 불안해진 상황에서, 제주 남방해역에서 중국과의 마찰을 야기할 수 있는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한 지도 따져봐야 한다.

동아시아 지정학의 맥락에서도 재검토의 사유는 더욱 커졌다. 이미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에 해군력의 60%를 집중하기로 하고 기지와 기항지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또한 '한미 전략동맹'을 천명한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간의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은 은밀하면서도 깊숙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한-미-일 3자 안보 대화가 시작됐다며 핵심 의제가 바로 'MD'라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MD를 고리로 한 한-미-일 삼각 동맹체제가 부상하고 있는 상황, 또한 남중국해-대만해협-동중국해-서해를 잇는 동아시아 해양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제주도에 건설되고 있는 해군기지가 이와 무관하다는 정부와 해군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주 해군기지가 미중 갈등에 한국을 휘말리게 하는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했을 때에 비해 국가안보적 필요성은 줄어든 반면, 건설 강행 시 직면하게 될 전략적 부담과 위험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러한 점들에 주목해, 결자해지 차원에서 해군기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항과 화순항에 건설 예정인 해경 부두를 해군이 기항지로 이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대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관련기사 보기). 공청회와 설명회를 거쳐 강정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묻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분명한 것은 12월 대선에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수당을 차지한, 그리고 총선에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안보 프레임'에 넣어 야권 공세의 도구로 활용해온 새누리당은 대선에서도 이 문제를 쟁점화하고 내년도 예산안에 이 사업 예산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에 맞서 강정마을과 시민사회단체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해온 많은 국회의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내년도 해군기지 예산 삭감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도 총선 결과에 대한 '작은 낙담'은 대선에서 해군기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큰 결의'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민주통합당이 해군기지 문제를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그렇다면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정의 아픔과 꿈을 알리는데 적극 나서고, 국민들에게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원죄를 씻는 길이고, 진정한 평화와 안보를 여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쓴 책으로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2012년)이 있습니다.



#제주해군기지#강정마을#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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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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