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월이 흘러가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모르고 있던 혹은 보이지 않던 것들을 재발견하게 된다. 행복하고 화목하게만 보였던 어르신들의 사이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사이가 나빴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것,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부모님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 등 수많은 '재발견'을 거치며 인생의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재발견들 중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은 재발견은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는 고전적인 의미로만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항상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만 인식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요새는 엄마라는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발견하게 되는 엄마의 참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이렇게 웃을 수 있다니... 엄마의 욕망

 엄마도 활짝 웃을 수 있는 존재임을 모르고 살았다. 영화 <친정 엄마> 중 한 장면
엄마도 활짝 웃을 수 있는 존재임을 모르고 살았다. 영화 <친정 엄마> 중 한 장면 ⓒ 아일랜드픽쳐스

1년에 5번 정도 내려가는 고향집.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의 대화 시간이었다. 이야기만 시작했다 하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난 3월, 엄마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엄마가 그렇게 '파안대소'하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확실한 것은 엄마가 그동안 본 적 없는 방정(?)맞은 웃음으로 한바탕 크게 웃으셨다는 것.

나는 그때 '우와! 엄마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후 엄마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렇게 웃으신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의 파안대소를 계기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는 훨씬 유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가 만든 스탠드. 엄마의 욕망은 스탠드 만들기로 분출됐다
엄마가 만든 스탠드. 엄마의 욕망은 스탠드 만들기로 분출됐다 ⓒ 박수현
가정에서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사는 사람은 바로 엄마가 아닐까.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도 많지만... 3남매로 구성된 우리집. 부모님은 3남매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시느라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셨던 것 같다.

엄마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으셨을 터. 하지만, 그런 마음을 입밖으로 쉽게 꺼내놓지 않으셨다. 매일매일 맛있는 진수성찬을 차려주시고, 가족들을 돌보는 데 온 힘을 쏟으셨다.

그러던 엄마가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가족들을 위해서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는 것은 여전하다. 다만 본인을 위해서, 본인이 재미있어 하는 일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엄마는 사회복지관에 다니면서 한지공예·기공체조·수공예 등을 배우고,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엄마는 당신이 배운 것들을 우리에게 자주 이야기해 주셨다. 그리고는 배운 것을 실생활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당신이 직접 한지로 만든 스탠드를 완성한 후 뿌듯해 하며 사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아, 엄마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구나! 그동안 엄마는 우리들 챙기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하면 좋은 정보도 찾아드리면서 도와드려야겠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엄마와 이런 대화를 자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요즘은 어떤 것이 재미있는지 등등. 일평생 도움만 받아왔던 내가 이제는 엄마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엄마가 일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엄마와 함께 한 즐거운 시간... 엄마는 내 최고의 친구다
엄마와 함께 한 즐거운 시간... 엄마는 내 최고의 친구다 ⓒ 박수현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항상 백화점, 마트, 식당 등을 다니시며 바쁘게 일하셨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 3남매의 교육비를 벌기 위함이었다. 물론 아버지께서도 바쁘게 일하시며 돈을 벌었지만, 자식이 3명이나 되다 보니 아버지의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항상 일을 다니셨다. 때문에 엄마는 항상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집안일을 했다. 항상 부지런한 엄마, 온종일 쉬는 시간이 30분도 채 안 돼 보였다.

그러던 엄마가 이제 일하기 싫은 날에는 텔레비전도 보시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기도 한다. 사실 어린 시절 나는 움직이기 싫을 때가 많아 바닥에 누워 뒹굴거릴 때가 잦았다. 엄마는 내가 그럴 때마다 "아이고, 하루 종일 퍼져 있구먼, 일어나서 좀 움직여라!"며 재촉하시곤 했다. 솔직히 그럼 엄마의 말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향집에 내려가면 엄마와 함께 누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지금에 감사한다.

어머님은 피자가 좋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로 1990년대 말 국민가요가 됐던 <어머님께>.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로 1990년대 말 국민가요가 됐던 <어머님께>.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 JYP 엔터테인먼트

우리는 흔히 '엄마는 피자,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싫어한다'고 알고 있다. 1990년대말, 국민가요였던 <어머님께>(GOD)의 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이처럼 자식들에게 맛있는 것을 양보하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또한, 엄마들은 몸에 좋지도 않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런 음식들을 잘 사주지 않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엄마는 피자와 아이스크림 같은 패스트푸드는 좋아하지 않거나 잘 사주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기기도.

그런데 이런 선입견이 확 깨지는 사건이 있었다. 3년 전, 엄마가 오랜만에 부천집에 오셨다. 언니와 나는 엄마에게 피자를 사달라고 졸랐다. 당연히 안 된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던 엄마. 언니와 나는 엄마의 입에서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는 말씀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 걸. 엄마는 흔쾌히 "피자를 사겠다"고 말씀하셨다. 언니와 나는 완전 횡재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런데 더 신나는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동네 피잣집이 아닌 '미OO 피자'를 사주셨던 것.

"엄마는 여기 피자가 참 좋더라, 깔끔하고!"

그날을 계기로 엄마는 당연히 패스트푸드를 싫어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확 깨졌다. 이후 엄마와 카페도 가고 햄버거도 먹으러 다닐 수 있게 됐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다양한 일을 겪으며 새롭게 알아가는 엄마의 모습. 엄마와 한결 더 친해진 것 같다. 그 어떤 친구보다도 좋고 내 마음을 잘 이해하는 내 친구 '엄마'. 어린 시절에는 항상 자식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느라 여념이 없었다면, 이제는 사회에 적응해가는 자식들의 마음이 외로워질까 봐 새로운 모습으로 자식과 친구가 돼 주시는 듯하다. 엄마의 재발견. 내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된 엄마와 보낼 시간이 기대된다.


#CCC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