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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앞두고 소소하지만 비싼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회사가 직원들에게 선물을 주고자 하는데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정확히는 계약된 기사에게까지 선물을 줘야 하는지 난상토론이 벌어진 것이다.

선물을 주자는 측의 논리는 아주 간단했다.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우리의 일을 하는 기사이니 다른 사무직들과 마찬가지로 선물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역사는 반복된다
▲ 기사들은 직원인가? 역사는 반복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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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에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는 사뭇 엄중했다. 그들은 우선 기사들이 회사의 직원이 아닌, 사업자 등록자로서 엄연히 하나의 거래처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선물을 주다 보면 기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더불어 추후 법적인 분쟁이 생겼을 시 선물의 관행들을 근거삼아 기사들이 회사에게 직원의 입장으로서 4대 보험 등을 청구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선물이지만 그와 같은 관행이 회사의 입장으로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위 문제는 결국 기사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지만, 그것은 그 후 내게 매우 큰 잔상을 남겼다. 화물연대파업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특수고용직이 갖는 사회적 위치를 다시금 상기시켰던 것이다. 직원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거래처 사장도 아닌 것이 어설픈 계급적 위치에서 온갖 부담과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그들.

그러나 나를 더욱 경악시킨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분명 더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허울밖에 남지 않은 사장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하지 않는 그들. 왜 기사들은 그런 현실에 불만을 품지 않는 걸까? 변혁을 포기한 걸까?

이와 관련하여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 중 하나는 그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망각하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인 동시에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노동자 대신 중산층이라고 우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정체성을 지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5월 1일만 봐도 명확하다.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노동절'이다

그때가 좋았다
▲ 2004년 5월 1일 그때가 좋았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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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월 1일 메이데이(May-day), 즉 노동절이다. 1886년 미국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의 쟁취와 유혈탄압을 가한 경찰에 대항하기 위해 투쟁했던 5월 1일을 기념하고자 만들어진 노동절.

그러나 2012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는 한국 노동자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나처럼 회사로부터 '근로자의 날' 기념 선물을 받고 하루 쉬는 노동자들도 있는 반면, 어떤 노동자들은 거래처 회사가 쉬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근무를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자의 신분이 아니므로 근무를 해야 한다. 정신적 노동이든 육체적 노동이든, 정규적인 노동이든 비정규적인 노동이든 어차피 같은 노동이건만 현실에서는 그 대우가 천지차이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하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고전적인 노동자의 정의 자체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100여 년 전 2차 산업이 주를 이루던 사회에서 자본가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규정되어진 노동자의 정의가 분업화, 전문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때에 비해 현대 사회의 산업구조는 3차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고, 국가나 공적 영역 역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노동자 역시 여러 계급으로 분화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분업화, 전문화 되는 사회와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다양한 형태와 처우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규정하는 노동자의 정의와 그에 따른 처우가 불편하기만 하다. 왜? 아직 우리 사회는 정식으로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5월 1일 달력을 보자. 아직 우리 사회는 공식적으로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이라고 표기한다.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근로자이다. 비록 1958년부터 지속된, 3월 10일 대한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전신) 창립일을 노동절로 기념해왔던 관행(1963년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명칭이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다)은 1994년에 5월 1일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지도 명칭은 그대로인 것이다.

혹자들은 근로자와 노동자가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물을 것이다. 아래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어차피 노동을 해서 임금을 받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노동자 :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얻은 임금을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 근로자 :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

그러나 이와 같은 판단은 큰 오류이다. 모든 단어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지니게 마련인데, 근로자와 노동자는 그 단어의 쓰임새에 있어 매우 다른 궤적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정반합의 지혜
▲ 노동자의 정체성이 필요하다 정반합의 지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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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노동자를 떠올려 보자.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그렇다. 노동자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빨갱이의 단어로서 우리 사회에 있어서 금기어였다. 북한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그 흔했던 '동무' 대신 '친구'가 보편화 되었듯이, '노동자'는 불순하고 새빨간 단어로서 대체제가 필요했던 단어였다. 게다가 정의를 보자. 노동력을 판매한다지 않은가. 결국 인간의 노동을 상품으로써 개념화한 것인데 이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기인한다. 그러니 정권의 차원에서 '노동자'는 음험한 단어일 수밖에.

반면 근로자를 보자. 단어가 주는 의미 자체가 근로(勤勞), 즉 '부지런히 일하다'이다. 이 얼마나 순치된 단어인가. 사장이 주는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이에게서는 그 어떤 불순함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주면 주는대로 일하고 받는 것이 근로자의 본질이다. 따라서 1963년 박정희 정권이 기존의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꾼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 즉 순치된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근로자의 날'이 아직까지도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근로자의 날은 기존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바뀌었고, 노동청은 노동부로 승격되었지만(그나마 다행으로 근로부는 없다) 아직 사회적으로는 레드콤플렉스 등과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는데 주저거리고 있다. 스스로의 계급을 부정한 채,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선택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정체성이 거세된 사회.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민주주의 사회의 발전이 대립되는 세력의 갈등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면, 노동자의 자아부정은 결국 사회적 대립의 각을 세울 수 있는 주체의 붕괴를 의미하고 이는 사회를 일방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즉, 노동계급의 견제와 제어를 받지 않는 자본이 사회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함으로써 많은 폐해를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 사회란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문제 아닌가.

따라서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전통적인 개념으로서 노동자를 다시 세우는 일이며, 이와 같은 맥락으로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환이 될 것이다. 모든 언어는 모든 사유를 규정하는 바, 사회적으로 근로자 대신 노동자가 유통된다면 실제로도 사회에는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나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모두 수고하신다.


태그:#노동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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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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