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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순교자]에 등장하는 미국 기독교의 존재감

작년쯤인가 아주 흥미로운 소설을 만났다. 1964년에 미국에서 발표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김은국의 [순교자].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순교자 12명과 생환한 목사를 둘러싼 미스테리 형식으로 남과 북의 이념갈등과 군대의 선전 전략 등 종교를 넘어선 인간의 보편적 고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도덕적이고 심리학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내가 이 소설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왜 기독교가 등장하는가' 하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기독교와 목회자는 아주 오랫동안 토착 문화를 형성해 왔고, 광범위한 신자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한 의문은 김진호 목사의 [시민K, 교회를 나가다](현암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현대사를 챙겨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개신교의 부분은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다. 현대사는 대부분 정치사이며, 문화나 종교 등의 영역은 부록으로만 다뤄지기 때문이다. 종교의 관점에서 이렇게 전면에 다뤄진 경우는 드물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대부분 1907년의 이른바 '평양대부흥운동'을 중심으로 다뤘다. 앞서 소개한 [순교자] 역시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

하지만 김진호는 그에 앞서 '러일전쟁'에 주목한다. 러일전쟁은 1904~05년 만주와 한국의 배타적인 지배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다. 전쟁터는 한반도 영토인 북부 지역이다. 그에 앞서 1893년부터 미국은 한국에 선교사를 대거 파송하기 시작했고 평안도와 황해도를 포함한 서북 지역이 전체의 80퍼센트를 점하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바로 이 근방에서 벌어진 것이다. 미국은 1865~77년의 재건시대 이후에 급속한 성장과 도시화, 산업 발달 그리고 유럽인들의 이주가 이루어질 정도로 초강대국으로 입지를 확고히 다진 상황이었다. 전쟁 중인 일본은 지역의 한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하거나 총알받이, 군수물자 동원에 견디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미국 선교사와 교회는 메시아 그 자체였다.

일제시대(이 기간 중의 신사참배 강요), 한국전쟁, 장기 독재 체제에 수십 년 동안 시달린 국민들의 심리는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전통 문화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열패감, 그리고 극한 상황 속에서 생기는 급격한 종교적 성향이다. 힘 있고 문화 수준이 높은 미국의 개신교는 신봉의 실체로서 한국인의 내면에 오랫동안 자리잡아 왔다. 제3세계에 '갑'으로 자리잡은 미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예컨대 스페인 내전(1936.7.1~1939.4.1)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이스라엘의 비호 속에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잠입해 최소 8백 명(팔레스타인 추정 3천명)을 죽였고, 이 중의 절반 이상이 어린이와 부녀자였던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1982년 9월 16일)을 주도한 레바논의 극우파인 팔랑헤 당 기독 민병대원 역시 기독교와 미국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공식 추산만 3만 명이 살해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 제주4.3 역시 북한 출신의 기독교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이 이승만 정권의 비호를 받아 일으켰다는 점에서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정치가 불안정한 제3세계의 내전과 독재에 시달리는 국가에서 보이는 아주 흔한 현상이다. 때문에 종교사회학자이자 세계적인 성서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슬리(Richard Horsley)는 "미국이 그 악마적 생명력을 지속하는 이유는 식민지적 종교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07년평양대부흥회를 경험한 신도와 1920년대 한국의 고급 두뇌를 대부분 흡수한 미션스쿨의 학생들은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현 정부의 유행어 중의 하나인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과 한국사회의 제도를 지배하고 있는 고급 관료 집단의 상당 부분은 이렇게 연결된다.

높이 솟은 십자가가 보여주는 이야기

높이 솟아오른 교회 건물과 십자가의 위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웅대한 권위에 위압감을 받게 된다. 일정 정도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착취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조그마한 가치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선망을 받으며 환상을 심어준다. 이러한 대형 교회의 이미지는 그대로 현대사를 관통한다.

미국의 창건자 중 한 사람인 해밀턴의 중상주의, 즉 "돈이 되면 뭐든지 한다"는 기조는 종교개혁 이후 부르조아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서는 순복음교회 조용기의 3박자 구원론(영의 성공, 물질의 성공, 건강의 성공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구원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주장)은 '번영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중산층의 욕망과 결합했다. 그리고 대형 기도회와 기독교를 결합한 순복음교회 모델은 한국 교회의 표준 공식이 되었다. 대형화한 교회가 증가하는 것은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전체 기독교 신도가 대형 교회로 재결집한 것일 뿐 신도수 자체는 증가하지 않았다. '하늘 아래 두 명의 하느님이 존재할 수 없다'는 기독교 특유의 배타성과 권위주의는 타 종교와 비 기독교인들을 타자화함으로써 점차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기독교 신도 수 자체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보여준다. 이 상태에서 소규모 교회들의 피터지는 경쟁이 전개되었고 사상 초유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2007년 7월 23일)이 벌어진다.

신도를 모으기 위한 교회의 절박함이 '단기선교' 제도를 낳았고, 성금이라는 값싼 실천으로 자긍심을 얻기 위한 신도들의 욕구가 이를 떠받쳐 주었고, 뭔가 재미난 것을 바라는 중산층 가정 젊은이들이 이를 유지시켜 주었다. 결국 뭔가 자극적인 것이 필요한 상황에서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초대형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짬짜미'다. 3명 이상만 모여도 잡아간다는 서슬퍼런 군부독재 시절에 기독교는 100명 규모 이상의 집회를 우습게 여길 정도로 자주 했다. 1973년 빌리 그레이엄 한국 전도대회는 하루에만 110만 명(20일간 450만 명)을 기록했고, 한국대학생선교회가 주최한 '엑스폴로 74 전도대회'는 6일간 무려 655만 명이 참여했다. 1980년 '80복음화대성회'에는 일주일 동안 무려 1천7백만 명의 대중이 모였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 84쪽) 이는 사실상 독재 권력(군부 독재)과 오랜 유착이 있었다는 의미다. 이들은 '미국', 그리고 '반공'이라는 강력한 공통분모가 있다. 사실상 한국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권력과 교회가 반분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와중에 교회가 민중과 화합하고 '작은 교회'의 운동을 통해서 시민사회의 존경을 받은 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글은 한국사 속의 거대한 뿌리인 개신교의 모습을 탐색하는 것이 1차 목표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민K, 교회를 나가다]를 참조하기 바란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는 1990년까지 맹렬히 확산되던 개신교의 세가 한풀 꺾이면서 이제는 시민들의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개신교의 현주소를 현대사와 종교사회학의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읽은 메시지는 아래 성경의 구절이 잘 요약하고 있다. 세상의 어떤 것이 이 진리를 피하겠느냐마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7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셜북스(http://www.facebook.com/socialbook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김진호 지음, 현암사(2012)


#시민K, 교회를 나가다#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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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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