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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줌의 흙도 보이지 않지만, 긴 겨울 보낸 후 또다시 그곳에 피어났습니다.
▲ 제비꽃 한 줌의 흙도 보이지 않지만, 긴 겨울 보낸 후 또다시 그곳에 피어났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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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스스로 그곳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람따라 혹은 곤충들의 여행길에 동행하다가 그곳에 자리를 잡았을 터이다. 자연은 이것저것 좋은 환경인지 재지 않고, 비록 그곳이 돌덩어리 시멘트 바닥이라도 온힘을 다해서 피어난다.

인간 역시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을 피워낼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간혹 무너질 때도 있지만, 본래 인간은 자연이므로 스스로 절망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피울 수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그들의 절망스러운 상황과 고통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또 다른 삶이 펼쳐지지는 않았을까 싶은 안타까움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의미있는 삶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척박한 땅이라고 대충 피어나는 법이 없는 자연을 본다.
▲ 돌나물 척박한 땅이라고 대충 피어나는 법이 없는 자연을 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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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의 나이를 살아오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많았다. 그리고 딱 한 번 정말 심각하게 세상과 이별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박했었다. 어떤 시대적인 사명감 때문도 아니었고, 그냥 개인적으로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날, 그동안 내가 했던 수많은 말들을 떠올렸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한 말을 내게 하면서 사흘간의 고민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난 후, 그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길 참 잘했다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때 나를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낸 것은 돌틈과 시멘트 벽 사이에 피어난 들풀들이었으며, 문익환 목사님의 말씀이었다.

"절대로 목숨을 스스로 끊지 마세요. 그 각오로 살아가십시오. 그래야 합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폭력에 의해서 타살되고, 스스로 자신들의 목숨을 끊는 소용돌이의 시대에서 통일운동의 선구자이셨던 목사님이 강연회에서 들려주셨던 말씀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풀꽃들을 보면 생명의 경외감을 느낀다.
▲ 생명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풀꽃들을 보면 생명의 경외감을 느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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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악한 것일까? 인간이 약해진 것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에 한참을 머물렀는데, 이제 <아플 수도 없는 나이 마흔이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청춘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파도 웃어야만 하는 나이에 대한 이야기일터이다. 그래, 언제부턴지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으며, 힘들어도 웃어야 했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척해야 했다. 위선의 가면을 하나 둘 쓰면서 자괴감도 느꼈지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때마다 나는 잔잔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들풀에서 얻었다. 특히,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단하던 것들도 이끼가 끼면 서서히 부식되고 종국에는 흙이 된다.
▲ 이끼 단단하던 것들도 이끼가 끼면 서서히 부식되고 종국에는 흙이 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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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그냥 잡초라고 불리워도, 제법 안다고 하는 사람들 조차도 가물거리는 이름을 가졌어도 그들은 그냥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자란다.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 작년과 올해 별 다를 것도 없는데, 그냥 그렇게 묵묵하게 그 길을 가고 또 갈 것이다. 이것이 희망이다.

그들은 우리네 사람처럼 말하지 않고, 글로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온 몸으로 말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다가 때론 멸종됨으로써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들은 타살되었을지언정 단 한 번도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포기한 적이 없다.

기어이 자라고 퍼져나가는 들풀, 그들의 삶은 기적이다.
▲ 범바위취 기어이 자라고 퍼져나가는 들풀, 그들의 삶은 기적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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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바위에 빠짝 붙어서 깊게 뿌리를 내린 범바위취를 한참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거길까?'하는 생각보다는 '참 잘 어울리는 곳에 뿌리를 내렸구나!'했다. 그에게는 힘겨울 수도 있는 상황인데, 내게 주는 의미로 인해 나는 좋아한다.

이것이 사람의 한계지만, 그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무미건조한 사람보다 조금 얄미울지언정 자기를 바라보는 이를 더 좋아하지는 않을까?

우리 주변엔 잔잔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들이 지천이다.

나만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보자. 더 척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활짝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지천임에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면 잠시 자연을 바라보자. 혹은 도시의 돌담이나 시멘트 담벼락 사이의 틈에 피어난 초록생명들을 바라보자.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이 세상 여전히 살만하지 않은가?


태그:#제비꽃, #범바위취, #이까,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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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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