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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이 푼수라고 하던지, 말던지 우리 부부는 금년도 어버이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남들이 푼수라고 하던지, 말던지 우리 부부는 금년도 어버이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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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갔다가 목요일에 올 거야."

지난 5월 7일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 녀석은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고 아침 일찍 떠났습니다.

딸아이의 카네이션

직장 내의 어버이날 아침 분위기는 참 묘합니다. 가슴에 카네이션을 단 직원들은 마치 대단한 효자를 둔 것처럼 으쓱해 하고, 그렇지 못한 직원은 좀 풀이 죽어 있는 듯한 분위기 입니다. 물론 미혼이거나 어린 아기를 둔 직원들이야 개의치 않겠지만, 초등학생 이상 된 자녀를 가진 직원들은 괜히 주위를 의식하게 되는 날이 어버이날이 아닌가 합니다.

"8일 아침 일찍 화천에 갈게."
"너 수업 있다고 했잖아."
"한번 빼먹지 머~. 대신 서둘러 돌아오면 돼."

7일 저녁 퇴근을 한 내게 집사람은 대학 진학을 위해 원주시에 나가 있는 딸아이가 보내온 문자를 보여주었습니다. 녀석의 메시지 내용은 우리 부부에게 카네이션 하나 달아주기 위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집에 왔다가 바로 돌아가겠다는 말입니다.

"역시 딸은 이래서 딸인가봐!"
"그래서 뭐라고 그랬는데?"

"고마운데, 네 예쁜 마음만 받을 테니 오지 말라고 그랬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딸아이는 유치원 시절부터 지난해까지 어버이날이면 다양한 카네이션을 만들어 우리 부부 가슴에 달아주었습니다.

녀석의 유치원 시절에는 백지에 크레파스로 해바라기인지 호박꽃인지 구분이 모호하게 그린 종이꽃을 카네이션이라고 달아주곤 했습니다. 이걸 달고 출근을 하자니 좀 창피하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딸아이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에라 그냥 달고 나가자' 결정했는데, '이렇게 예쁜 카네이션은 처음 봤다'는 여직원들의 호들갑에 괜히 으쓱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매년 5월 8일만 되면 종이에 그린 카네이션에 이어 다양한 색깔의 천 조각을 이용한 솜씨를 보이기도 하더니, 커가면서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했는지 꽃가게에서 파는 카네이션을 사다가 달아주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무뚝뚝한 아들이 아니란 걸 오늘 알았습니다

 아들 녀석이 시들지 않도록 컵에 물을 담아 꽂아 놓은 카네이션
 아들 녀석이 시들지 않도록 컵에 물을 담아 꽂아 놓은 카네이션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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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 터울인 아들 녀석은 유독 제 누나에게 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딸아이보다 섬세하게 만들지 못한 허접한 카네이션을 한 개 더 달아야 했습니다. 녀석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꽃가게에서 산 똑같은 카네이션을 달고 '나는 두 명의 훌륭한 아이들이 있네'라고 광고라도 하듯이 출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대학 진학을 위해 외지로 나가버리자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녀석은 어버이날을 까맣게 잊었는지 수학여행을 떠나버린 겁니다.

"그까짓 카네이션 아이들 용돈만 축나고 애들에게 부담만 안기는 거야."

딴엔 태연한 척하는 아내의 말 한구석에는 섭섭한 마음이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제주도 날씨는 어떠냐?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다가 목요일에 보자"라는 문자를 아내가 아들에게 보낸 건 5월 7일 저녁 9시뉴스가 끝날 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아들에게서 온 답 메시지를 보더니 박장대소하며 웃어 댑니다. 그러곤 마치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주한테서 온 답 메시지인데 이것 좀 봐."

메시지 내용은 "알았어ㅋ 내일 내 방에 있는 카네이션 달고 가ㅋㅋ"였습니다. 아들 녀석이 다소 엉뚱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번에 또 녀석은 자신의 특유한 엉뚱함을 우리에게 보여준 겁니다.

 아들녀석의 엉뚱함을 보여준 메시지...
 아들녀석의 엉뚱함을 보여준 메시지...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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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녀석의 방으로 달려가 책상 위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남자니까 카네이션 사다가 아무렇게나 제 방에 던져 놓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컵 두 개에 꽂혀진 카네이션. 녀석은 수학여행 가기 전에 미리 꽃을 사다 놓고 시들까봐 컵에 물을 채우고 카네이션을 꽂아 놓은 겁니다.

인간은 이래서 간사한 동물이라고 했나 봅니다. 좀 전까지 아들 녀석에게 섭섭했던 마음이 꽃 한 송이에 의해 큰 행복으로 바뀌니 말입니다. 수학여행 출발하기 전인 아침에 '카네이션 내 방에 사다두었으니까 달아'라고 말을 했을 만도 한데, 녀석은 나름대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이벤트를 구상했나 봅니다. 그것도 꽃이 시들까봐 컵에 물을 담아서.

"누가 우리 아들이 무뚝뚝하대?"라는 내 말에 아내는 "당신이 늘 그랬잖아"라고 쏘아 붙입니다.  

 멋지게 사진을 찍어서 아들에게 인증샷을 날렸습니다.
 멋지게 사진을 찍어서 아들에게 인증샷을 날렸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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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준 카네이션 달았다. 고마워 아들^^"

8일 아침 출근길에 인증샷을 찍어서 녀석에게 보냈더니, "사무실 가서 자랑해ㅋㅋ"라는 내용의 답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녀석의 짧은 메시지에는 '사무실에 나가서 한번쯤 으쓱해 보라'는 따뜻한 사랑이 진하게 담겨 있는 듯합니다.


#어버이날#카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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