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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리멸렬하고, 오로지 당내 권력관계로만 후보를 결정하고, 안정감을 주지 못하면서 과거의 불안정한 사회를 연상케 하면 이길 방법이 없지. 민주는 둘째 쳐도 당장 먹여살릴 것처럼 보이고, 분란 없이 가는 데는 박근혜가 낫다 싶으면 이명박 때처럼 잘못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당한 위기지. 민생과 안정의 능력을 보여줄 리더십, 중요합니다."

 

정확히 120분이 넘었을 때였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로 허리를 길게 늘인 뒤 뒤통수에 양손가락을 낀 채로 벽에 걸린 그림을 잠깐 응시했다. 마치 현재 놓인 '민주진보 정치의 시계'가 몇시를 가리키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당장은 암울해도 탈출구는 있겠지 하는 익살도 머금은 채로.

 

4·11 총선 직후 유럽 5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손 전 대표는 좀 다른 차원에서 '한국 정치의 비전'을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국가발전모델은 무엇인가, 우리 공동체의 비전은 무엇인가 등이 그의 화두 같았다. 평소 말이 무겁기로 유명한 그가 유럽순방 이후 더 묵직한 담론을 들고 나타난 격이다.

 

어차피 대선에 출마할 것을 뭐하러 총선에 출마하느냐며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택한 손 전 대표는 이날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아무리 보수 쪽에서 복지 포퓰리즘이라 공세해도 이미 우리는 진보의 시대를 살고 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복지사회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어떤 진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진보는 지속가능한 진보여야 하고 구호만 남발하는 진보가 돼서는 안 된다"며 "이념으로만 형예화되는 진보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진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손 전 대표는 "이번 (이해찬-박지원 합의) 사태가 국민들 눈에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국민들에게 '저들만의 잔치'로 좌절을 줬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내대표 선거는 의원 사이의 선거여서 결과가 그 정도였지 대중 선거였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냉정하게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국민들은 민주당이 잘살게 해 줄 능력을 갖출 것이라 기대를 가졌지만 요즘 국민들은 회의하기 시작했다"며 "민주당이 착각을 하고 주제 파악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통합을 하면서 지지율이 확 올라가니까 민주당이 오만해지고 교만해져 위치 파악에 혼동이 생겼다"며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는데 승리를 목전에 둔 것처럼 행동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발생한 통합진보당 선거부정 사태에 대해서도 손 전 대표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낫다"며 "이념의 진보 기치 아래 모든 것을 '진보'라는 명분 아래 쓸어 넣고 '그럴 수도 있지' 해 왔던 것이 안에서부터 곪아 터져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진보당 사태는 민주당과 혼재돼 민주진보 진영의 불신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민주당의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내년에는 민생 문제를 챙기는 대통령과 정부가 필요하다"며 "그것이 구호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 통합, 남북통합, 정치 통합 그리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유럽5개국 방문... 결론은 '공동체 정신' 회복

 

- 지난 22일, 유럽 5개국(네덜란드와 스웨덴, 핀란드, 영국, 스페인)을 방문했다. 가장 크게 얻은 성과는 무엇인가.

"유럽 5개국을 선정해 간 것은 대한민국 미래의 상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87년 민주화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 체제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순방이었다. 순방 길에서 새로운 사회의 방향, 복지사회로의 길은 옳은 길이고 필연의 길임을 확인했다. 아무리 복지 포퓰리즘이다, 비난이 있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복지사회의 길'이다. 그것이 맞는 길이다. 다만 어떻게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사회적 안정을 유지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미 상당히 안정된 유럽 나라들을 보면 우리가 취해야 할 것, 고려해야 할 것을 주마간산 격이나마 보고 정리할 수 있었다."

 

- 나라별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국가나 정책은 무엇이었나.

"네덜란드에서는 폴더 모델이라는 노사정 합의 모델을 보고자 했다. 노조에서는 임금 억제에 동의해 주고, 경영은 노동시간 단축을 용인하며 정부는 사회보장 제도를 확대해 줌으로써 3자 합의가 가능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형평성이 반드시 지켜지고 사회 보장 지원도 동일하게 이뤄졌다. 타협과 양보에 기초한 합의 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노조가 튼튼히 발달 돼 있어야 균형이 맞춰진다. 우리도 야권을 통합하면서 한 축으로 한국노총이 당사자로 함께 했다. 바로 노동이 튼튼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화합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 스웨덴은 어땠나. 

"스웨덴은 복지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기술력과 경쟁력 갖고 있다. 거기에서 복지국가의 경제적인 기반이 있다. 복지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뒷받침할 재정이다. 복지국가들은 필수조건으로 완전고용을 구현했다. 완전고용이 돼야 복지 비용이 준다. 복지 제도 자체도 완전 고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로 갖췄다. 2차 대전 때부터 복지국가였던 스웨덴은 복지국가 망국론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나라다. 복지와 성장이 결코 배치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나라였다."

 

- 핀란드는 주로 교육문제를 살폈나.

"핀란드에서는 교육 문제를 주로 봤다. 초중등이 통합된 기초 학교를 봤는데 교육 전체를 본 것 같았다. 학교 전체가 하나의 커뮤니티고 놀이터더라. 핀란드 아이들이 피사(PISA) 학습 능력 세계 1위라고 한다. 우리도 수위권이다. 핀란드에는 놀면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어린이들이 있고 우리는 노예 생활을 하면서 1등한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자명하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나이에 맞게 생활하고 놀도록 자율성을 주고 거기에서부터 공부하게 하는 것이 창의성의 기초가 된다. 우리도 가능하다."

 

- 영국과 스페인에서는 주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

"영국은 NHS 의료 제도만 집중적으로 봤다. 국민들이 어떻게 의료 진료 제도를 신뢰하게 되고, 국가적으로 의료보험 재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쓰는지에 집중했다. 국민들이 돈이 없다고 해서 불이익 받지 않고 진료 접근권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의료 보장 재정 현실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 핵심이다. 국민 주치의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가 내 관심사다. 1차 진료기관을 정상화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다.

 

스페인은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둘러봤다. 정말 부럽더라. 협동조합 안에 금융조합, 소비조합, 생활 보장 협동 조합 등 국가 기구가 다 만들어져 있다. 이런 기반 속에 스페인에서 가장 큰 유통업체가 만들어졌다. 몬드라곤 안에 있는 회사들의 경쟁력도 매우 높다. 우리 경제 체제로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부산에 소규모 신발공장들이 있는데 협동조합 형태로 모아 브랜드를 만들고 공동디자인·공동 판매할 수 있다. 지난 해 협동조합 기본법을 만들고 올 12월에 발효되는데 협동조합을 위한 금융기관 설립은 포함이 안 돼 있다고 한다. 우리가 정권 잡으면 이것도 보완해서 재정과, 판로나 디자인 지원 등을 해주면 앞으로의 경제 체제 모델이 될 수 있다."

 

- 유럽의 국가 모델을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복지사회를 꿈과 이상만 갖고 그대로 이식하는 건 안 될 테니 우리 사회에 맞게 해나가야 한다. 유럽 국가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은 제도만 보지 말고 문화를 보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통합과 합의의 문화를 말한다. 우리가 그걸 만들어야 한다.

 

이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공동체 의식이다. 개인주의화돼 가고 개인 간의 경쟁이 사회적 논리의 기본이 돼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공동체 정신임을 다시 느꼈다. 더불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라는 생명 평화의 가치를 볼 수 있었다.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는 일자리에 있다. 일자리가 다시 복지의 성장 동력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바탕이 된다.

 

우리는 진보 과잉의 시대에 있는지 모른다. 그 진보는 지속가능한 진보여야 하고 구호만 남발하는 진보가 돼서는 안 된다. 이념으로만 형해화되는 진보가 돼서는 안 된다. 일자리도 만들 수 있고 성장과 배치되지 않는 진보, 그렇게 함으로 해서 국민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진보가 돼야 한다."

 

"지지율 상승에 민주당 오만... 진보가 불안감 주면 안 돼"

 

- 이번 5개국 순방은 사실 내년에 정권교체하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염두에 둔 여행이었다고 봐도 무방한 것인가.

"그런 면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국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를 짚어 보자고 한 것이다."

 

- 향기로운 유럽에 계실 동안, 민주통합당 안에서는 소위 '담합논쟁'이 뜨거웠다.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러닝메이트 합의'로 상당한 논란이 진행됐는데, '이박 합의'를 어떻게 해석하나.

"지나간 얘기를 하고 또 해서 뭐하겠나. 다만, 국민들에게 정치는 '저들만의 잔치'가 됐다. 이번 (이-박 합의) 사태가 국민들 눈에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에게 좌절을 줬다. 원내대표 선거는 의원 사이의 선거여서 결과가 그 정도였지 대중 선거였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민주당원으로서 해당적 발언이지만, 국민의 관심은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에 있지 않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누가됐든 나라를 편안하게 운영하고 잘 먹고 살게 해주면 된다. 민주당이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국민이 지지해 주는 것이다."

 

- 지금 민주당이 그런 정당인가.

"작년 말 야권통합을 통해 국민들은 민주당이 잘살게 해 줄 능력을 갖출 것이라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국민들이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착각을 하고 주제 파악을 못했기 때문이다. 통합을 하면서 지지율이 확 올라가니까 오만해지고 교만해져 위치 파악에 혼동이 생겼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는데 승리를 목전에 둔 것처럼 행동했다.

 

이를테면 한미FTA에 대해, 우리가 다 이겼으니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처럼 당 대표가 FTA 폐기 서한을 제출했다. 국민 전부가 보는 것과 운동권적 차원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 진보의 흐름이 역사적 대세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진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바탕 확보를 위해서는 진보가 국민에게 불안감을 줘서는 안 된다.

 

'선장의 역할은 배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이라고 한다. 항로를 잡는 시발점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있다. 국민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위치파악이다."

 

-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보나.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이 과정을 거치는 게 낫다. 이념의 진보 기치 아래 모든 것을 '진보'라는 명분 아래 쓸어 넣고 '그럴 수도 있지' 해 왔던 것이 안에서부터 곪아 터져 나온 것이다. 생각 있는 진보 세력 내부의 자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진보당 사태는 민주당과 혼재돼 민주진보 진영의 불신을 가중시킬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민주당의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진보 세력은 스스로 '지지세력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공학적인 정치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보다 지지세력 확보에만 매몰돼 있다. 지지세력이야말로 변동이 심하다. 지난 번 총선에서 <나꼼수> 논쟁도 그런 측면의 일이다. 민주당 당 대표가 한미FTA 폐기 봉투를 들고 미 대사관 앞에 갔을 때 이것을 국민이 어떻게 볼까를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민주당에 통합 리더십 절실... 민생 챙기는 대통령 필요"

 

-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보나.

"민생을 기반으로 한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크게 보면 안정감을 줄 리더십이 요구된다. 이는 권위주의적인 안정이 아니다. 개발 독재 시대 리더십에 의한 안정은 잠시 동안은 통용이 돼도 민주적인 욕구 분출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4년 전에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의 경제 능력의 표면만 보고 찍어 실패한 정권을 만들었으나 민주적 리더십 없이 사회는 다시 불안해짐을 확인하지 않았나. 민주적 리더십이 가장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당 내의 문제의 경우, 원내대표 선거에서 국민들은 '정치인들만의 잔치'에 좌절했는데 이 상황에서 통합의 힘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 민주통합당에 통합의 효과는 얼마나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

"잠재적 효과는 크다. 지금 그것이 통합하고 난 뒤의 위치 파악을 못해서 통합하고 올라가니 다 왔다고 착각해서 그런데. 통합의 잠재적 파워는 기본이 된다. 그걸 다시 살리고 제대로 위치 파악해서 국민의 눈으로 본 자세를 갖추면 통합은 정권교체를 위한 잠재력을 가졌다."

 

- 전당대회·대선 경선 룰 결정도 앞으로 남은 과제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민주적으로 좋은 방식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들끼리 나눠 먹는 룰, 특정한 쪽이 유리한 룰이 되지 않게 공정한 룰이 돼야 한다. 또한 어떻게 국민의 뜻을 반영할 수 있게 만드냐에 충실하면 된다. 중요한 세력 간에 편하게 나눠먹기 위해 룰을 만들면 국민들도 다 안다. 국민에게 또 한번의 좌절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 끝으로 한 말씀하신다면.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의 길은 내가 당 대표로 있으면서 설정해 놓은 새로운 정치의 기본이다. 이제 그 고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음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2013년 체제에서 더 나가는 2040년, 2050년의 목표를 세워야 2013년 체제가 제대로 성취되지 않겠나.

 

대통령은 시대정신이 결정한다는 믿음이 있다. 국민들이 당장만 보고 대통령이 펼쳐 나갈 미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의 대통령은 국민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국민들 삶은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매우 피폐해졌다. 때문에 민생 문제를 챙기는 대통령과 정부가 필요하다. 그것이 구호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나는 사회 통합, 남북통합, 정치 통합을 얘기했다. 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삶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태그:#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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