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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입양을 한 이득신씨 가족의 단란해보이는 모습
 공개입양을 한 이득신씨 가족의 단란해보이는 모습
ⓒ 이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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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가장 큰 선물 동생을 받았어요."

여덟 살 성빈이는 동생이 생기던 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아빠는 아이에게 "가족이 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며 "낳지 않아도 입양을 통해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아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동생이 생겨서 날아갈 듯 기쁘기만 했다. 그런데 아기는 어딘지 조금 아파 보였다. 태어난 지 석 달이 채 안됐는데 두 번이나 큰 이별을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었다.

이득신(44·회사원)씨 가족에게 5월은 특별하다. 가정의 달이라서가 아니라 '입양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이씨 부부는 2007년 5월 4일, 생후 80일 된 남자아이 '성주'를 둘째 아들로 맞았다. 성주(6)가 가족이 된 날이 '입양생일'이다. '배 아파 낳은 아이' 성빈(13)이는 동생이 집으로 오던 날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선물을 받은 날'로 기록했다. 새 생명의 탄생 만큼이나 '새로운 가족의 탄생'은 고귀한 사랑의 결실이었다.

"우리 가족은 5월 4일을 '입양 생일'이라 그래요. 지난 4일에도 외식을 했죠. 케이크 사고 촛불 켜고. '성주야, 오늘은 우리 성주가 가족이 된 날이야. 오늘이 입양 생일이야' 그러면 성주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그래도 좋아하죠. 박수치고 후 불고."

아이가 젖먹이일 때부터 해준 말... "가슴으로 낳은 우리 아들 사랑해"

이씨가 입양하기까지 모든 것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아내는 "자신이 없다, 두렵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특별한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의 표현대로 '가랑비에 옷 젖듯', 그는 아내에게 조금씩, 자주 입양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그토록 입양을 원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씨는 "10여 년 전 사업에 실패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에게 가족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을 지탱해 주는 희망이었다. 그런 일을 겪은 후 어느 순간 버려진 아이들이 보였다.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의 부모가 되고 싶었다.

이씨는 입양하는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제적 문제나 사회적 편견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 아내도 마찬가지였고, 최초의 입양 때에는 '내가 낳지 않은 자식을 내가 정말 내 자녀처럼 키울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커요.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서 결국 입양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일단 입양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둘째, 셋째를 다시 입양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그때는 입양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경제적인 두려움이 생기는 거죠."

물론 아내는 지금 누구보다 두 아이들을 사랑한다. 성주에게서 얻은 기쁨과 행복으로 셋 째 아이를 입양할 계획까지 갖고 있다. 이득신씨는 성주가 젖먹이일 때부터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가슴으로 낳은 우리 아들. 형아는 몸으로 낳았고, 우리 성주는 엄마 아빠 가슴으로 낳았어요".

성주는 이제 유치원에 들어갈 만큼 자랐다. 지금도 이씨 부부는 성주를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가슴이 설렜고, 네가 얼마나 작았고, 얼마나 예뻤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더불어 아이가 '낳은 부모'와 '기른 부모'가 다르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형아는 엄마가 낳았지만 성주는 낳아준 엄마가 따로 있어. 그런데 그 엄마가 키울 수 없어서 나와 아빠가 우리 성주를 키우는 거야."

성주도 자신이 형과 다르다는 걸 안다. 하지만 슬프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득신씨는 큰 아이는 든든하고, 작은 아이는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한다.

"성주가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줬어요. 유치원에서 만들어 가지고 7일 저녁에 달아줬어요. '엄마 아빠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라고 쓴 카드도 줬어요. 참 뭉클해요. 기분 정말 뿌듯하죠."

'두 번째 노력' 끝에 만난 성주... "우리 아이 예쁘죠?"

성주는 새 가족을 만나기까지 두 번의 이별을 겪어야 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입양기관에 맡겨졌고 생후 2개월 때 한 부부에게 입양이 됐다. 하지만 보름 만에 파양이 되어 다시 입양기관으로 돌아왔다.

양부모가 가족들과 충분한 합의와 동의를 구하지 못한 채 성주를 입양했기 때문이다. 성주의 조부모가 될 분들은 이미 입양을 했는데도 '근본을 알 수 없는 자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끝까지 반대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성주는 다시 다른 부모를 기다려야 했다. 핏덩이도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걸 느꼈던 걸까? 성주는 파양이 된 직후 폐렴을 심하게 앓아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이렇게 성주도 두 번째만에 새로운 가족을 만났지만, 이득신씨 부부도 두 번의 노력 끝에 성주를 만났다.

"입양을 마음 먹고 아내와 입양기관을 찾아갔는데 첫 번째 입양기관에서 거절을 당했어요. 당시 사업을 말아먹고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입양을 하려니까, 경제적 어려움을 큰 이유로 들어 거절을 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너무 까다로운 조건을 이야기한 것 같아요. '첫째가 아들이라 딸을 입양하고 싶다', '나도 A형, 아내도 A형이니까 아이의 혈액형도 A형이었으면 좋겠다', '예쁜 아이였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조건들이 까다로웠죠."

그러나 그는 곧 깨달았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부모도 자식을 선택해서 낳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내 몸으로 낳는 아이도 성별을 선택할 수 없잖아요. 아이가 눈이 큰지 작은지, 코가 오똑한지 납작한지… 이렇게 저렇게 생긴 아이를 내가 낳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아내하고 둘이서 우리가 왜 거절 당했을까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몇 달 동안. 왜 우리한테 적합한 아이를 찾으려고 하는가, 정말 부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 그 아이를 입양하면 될텐데라는 생각에 두 번째 입양기관을 찾아가서는 '주는 대로 받겠다'고 했죠."

처음 만났을 때 성주는 많이 아팠다. "처음에 아이를 봤는데 온몸이 아토피로 시뻘겋고 귀에서 진물이 흐르고…그렇게 심한 아토피는 처음 봤어요. 그래도 폐렴이나 아토피는 충분히 나을 수 있는 거니까, 우리가 보살피면 분명히 나을 수 있는 거라 심각하게 눈에 들어오진 않았죠."

성주는 누구보다 건강하게 자랐다. 이득신씨는 핸드폰에 저장된 아이 사진을 보여줬다. "지난 주에 유치원에서 체육대회 할 때 찍은 사진인데 예쁘죠? 지금 아프지도 않고, 아토피도 우리한테 온 지 몇 달 만에 씻은 듯이 다 나았어요. 무엇보다 성주한테 항상 고마워요. 잘 자라주니까." 성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음꽃을 피웠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야, 니 동생 입양한 거 맞아? 어쩜 그렇게 닮았어!"

지난 2월 성주의 생일날. 성주와 형 성빈이.
 지난 2월 성주의 생일날. 성주와 형 성빈이.
ⓒ 이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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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주를 공개입양했다. 입양은 결혼이나 출산처럼 가족이 되는 또 다른 방법일 뿐, 숨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씨는 공개입양으로 성주가 정서적으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개입양은 주위사람들한테 알린다는 게 초점이 아니라 아이한테 자신의 입양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줌으로써 밝고 건강한 정체성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방황할 거라는 건 편견이에요. 물론 아이들은 상처가 있죠.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나를 키우지 않았다는 그런 기본적인 상처는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나는 나를 키워주는 부모님을 만나서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죠. 공개입양을 하면 입양된 사실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알려주기 때문에 사춘기 때 혼란을 느낄 이유가 없어요."

이씨의 부모님은 가슴으로 낳은 손주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연히 반대를 했죠. 장인, 장모님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막상 아이를 입양해서 데리고 가서 인사시켰더니 너무 예뻐하시더라고요. '어차피 입양을 했고, 니들이 키우는 거지 내가 키우냐, 잘 키워라'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가짜 손자는 못 받아들인다' 하시던 장인, 장모님도 지금은 너무 예뻐하세요. 성주가 워낙 애교가 많아요."

사랑하면 닮는다. "성빈이 친구들이 성주가 입양된 아이라는 걸 알고 물어봤나 봐요. '야, 니 동생 진짜 입양했어? 아닌 것 같아. 입양했으면 어떻게 그렇게 얼굴이 닮을 수 있어?'" 두 아이는 서로 닮아 갈 만큼 뜨거운 형제애를 나눈다. 이제 열세살인 아이도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 간의 사랑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득신씨 가족은 아낌없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서로 꼭 닮은 완벽한 가족이 되었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씨는 성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성주는 운동을 되게 잘해요. 공도 아주 잘 차고, 덤블링도 해요. 비보이 춤 있죠? 손 짚고 이렇게 막 도는 거. 그거를 따라 한다니까요. 저는 성주가 하고 싶어하면 운동도 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내는 또 운동선수는 싫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성빈이나 성주나 어떤 직업을 갖든 바른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함께 사는 세상에서 편견을 갖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고 누군가에게 군림하지 않고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이 좋은 일 했다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하죠"

몇 년 전부터 정부는 '아동수출대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국내입양을 적극 장려하고 홍보해왔다. 그 결과 해외입양이 감소하고 한국사회에서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입양아와 입양부모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입양가족을 힘들게 한다.

"편견은 각오하고 시작한 거지만 시선은 느끼죠. 친구들은 '참 좋은 일 했다. 그런데 난 네가 이해가 안 된다' 이 정도죠, 그게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좋게 바라봐주죠. 그런데 편견이 가장 심한 곳은 제가 다니는 교회예요. 물론 편견 없이 대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뒤에서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프죠."

종종 주변의 반응이 이씨 부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성주가 네살 때 잠시 난폭한 성향을 나타냈어요. 사실 그맘때 아이들은 일시적으로 그런 성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일시적이죠. 그런데 우리 성주가 그랬을 때 사람들이 '걘 입양돼서 그러는 거니까, 얘 조심해야 돼'라고 대놓고 얘기할 때 마음이 아팠죠. 자기 새끼가 그랬다면 그렇게 얘기 안 했을 거예요. 이 아이에 대해서만 유독 다른 잣대로 바라보는 거죠." 모든 입양 부모들의 가장 큰 바람은 입양아들이 편견 없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씨는 더불어 입양부모들이 입양과 양육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친부모 밑에서 자라야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고,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편견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자라야죠. 입양부모의 역할이 중요해요. 입양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입양부모들도 많이 공부를 해야 해요."

홀트아동복지회 김은희 사회복지사는 "공개입양 분위기 확산으로 우리 사회의 입양문화가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편견으로 국내 입양부모들이 어려움을 호소한다"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입양사실을 알리면 아이가 무슨 문제가 없는지 더 살피는 지나친 친절, 어린아이라서 하는 당연한 행동인데 '입양아라 상처를 받아서 저렇다', '입양아들은 불행할 것 같다', '커서 자기부모를 찾아갈 것이다', '잘못된 길로 갈 것이다' 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는 입양부모들이 많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그는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 사회 곳곳에 입양가족이 꽤 많다, 이제 남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며 "출산을 하는 것처럼 입양을 선택한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은 "모든 아동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입양된 아동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득신씨는 마지막으로 이런 바람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함께 사는 세상이죠.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이나 생각은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나와 모습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나와 다른 생각들이 존재하는 것이지 정상-비정상이 존재하는 건 아니죠. 스스로 갖고 있는 그런 편견을 없앴으면 좋겠어요. 입양을 생각하는 후배 입양부모들이 있다면 나의 기준이 아니라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입양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성주는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와 함께 살지는 않지만, 이씨 부부로부터 '함께 사는 세상', '나눔과 사랑'이라는 정신적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아이는 가족의 품에서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있다.





보건복지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국내입양된 아동은 1548명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소외되는 아이들의 그림자가 있다. 친부모에게 병력이 있거나 친부모가 좋지 않은 이력을 가진 경우, 장애가 있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부모를 찾지 못한다. 2011년, 1548명의 아이들은 이 땅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916명의 아이들은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보육시설로 보내진다. 가정의 달 5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현실이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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