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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신고(?神鼓)라고 하는 구리로 만든 북입니다. 기신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소리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구리 북은 이 기신고와 우한박물관에 소장하는 것과 두 점이 지금까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신고가 이곳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 구리 그릇 상설전시장 맨 앞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신고 위쪽에는 봉황이 꾸며져 있습니다.
 기신고(?神鼓)라고 하는 구리로 만든 북입니다. 기신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소리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구리 북은 이 기신고와 우한박물관에 소장하는 것과 두 점이 지금까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신고가 이곳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 구리 그릇 상설전시장 맨 앞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신고 위쪽에는 봉황이 꾸며져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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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토요일 교토시 동쪽 히가시야마(東山)에 있는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교토 동쪽 히가시야마는 교토시내에서도 유명한 별장과 주택가입니다. 교토 중심가보다 약간 높아서 교토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고 동쪽으로는 히에잔(比叡山) 산 연봉이 이어져 있어서 숲과 나무가 좋고 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토 히가시야마에 있는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은 원래 스미토모(住友) 재벌 창업주 후손이 사는 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별장을 헐고 미술관을 지었습니다. 스미토모는 지금도 20 여 개 기업을 가진 일본의 다국적 기업입니다.

스미토모 집안에서는 대대로 골동품을 수집해 왔습니다. 특히 스미토모 집안의 15대 손인 슌스이(春翠)는 교토 절 집안에서 양자로 스미토모 가문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스미토모가 동광을 개발하던 시점이라는 점에서 중국 구리 그릇을 집중적으로 사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밖에 차도구나 글씨, 그림을 비롯하여 불교 관련 골동품들을 다수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골동품을 전시하기 위해서 스미토모 여러 회사의 도움으로 히가시야마에 1970 년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상설전시장에 전시하는 구리 그릇 유물은 주로 상(商, 기원전 1600년 경 ~ 기원전 1046년)나라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500 점 이상으로 중국을 제외하고 한 곳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은 구리 그릇 유물뿐만 아니라 그 밖의 소장품도 3천 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의 겉모습입니다. 예로부터 유명한 교토 별장지에 들어서 있습니다. 상설전시관은 방 네 개가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어 입구와 출구가 문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의 겉모습입니다. 예로부터 유명한 교토 별장지에 들어서 있습니다. 상설전시관은 방 네 개가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어 입구와 출구가 문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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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의 이름은 센오쿠(泉屋)와 하쿠코(博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센오쿠는 에도시대 이후 스미토모 집안의 별명이고, 하쿠코(博古)는 박고도록(博古圖錄)에서 따온 것입니다. 박고도록은 중국 송(宋)나라의 왕보가 편찬한 고기도록(古器圖錄)입니다. 선화전의 이름을 붙여서 《선화박고도록(宣和博古圖錄)》이라고도 합니다.

송나라 8대 황제 휘종(徽宗:재위 1100∼1125)이 초기부터 수집하여 선화전(宣和殿) 후원에 보관한 오래된 그릇 1만 점 중 상(商) ·주(周) ·한(漢) ·당(唐)나라 때에 만들어진 정(鼎) ·호(壺) ·종(鐘) ·탁(鐸) ·전(錢) ·경(鏡) 등 839점을 골라서 대략 20 가지로 나누어서 그림으로 나타내고, 크기와 새겨진 문장 등을 적고 해석해 놓은 책입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은 소장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1986년 도쿄 록폰기에 분관을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은 구리 그릇을 상설전시하고 특별전은 한 해에 세 번 정도 열고 있습니다. 3월 17일에서 5월 20일까지는 간다라미술과 실크로드의 그림전이 열리고 있고, 5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는 동양의 글씨전이 열리고, 9월 8일에서 12월 9일까지는 차도구전이 열립니다.

구리 그릇은 중국에서 기원전 16세기 무렵부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리 그릇은 일상생활용기가 아니고 통치자들의 권위를 상징하거나 왕권과 제사권이 분리되지 않았던 당시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따라서 제기로서 구리 그릇은 신분에 따라서 가질 수 있는 수자가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구리 그릇은 왕권과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규모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상나라에서 서주 전반기에 주로 사용되던 구리 그릇은 도철(饕餮) 무늬라고 하여 괴수 얼굴을 크게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괴수 얼굴의 도철은 원래 잘 먹는 도깨비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나쁜 악령이나 귀신들을 다 잡아먹어버리라는 뜻에서 이 무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도철 괴수 무늬는 구리 그릇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가장 중요한 무늬이기도 합니다. 그밖에 이 도철 괴수 무늬는 하늘의 최고신을 나타내는 무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최고신의 심부름꾼을 나타내는 무늬이기도 합니다. 도철무늬는 위에서 아래로 길게 코를 도드라지게 하고 코를 대칭으로 양쪽에 위에서부터 뿔(소뿔 모양이나 양뿔 모양), 눈썹, 눈, 입, 귀들을 그립니다.

구리 그릇에는 도철 괴수뿐만 아니고 길게 이어지는 용이나 뱀 무늬, 작은 새나 봉황이나 공작과 같은 큰 새 무늬, 코끼리, 개구리, 거북이, 매미들도 나옵니다. 이들은 일부 십장생에 포함되는 것으로 예로부터 거룩하게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특히 매미는 오랫동안 땅속에 있다가 나와서 울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부활과 재생을 뜻하며 그다지 먹이를 먹지 않는 다는 점에서 공무원의 청렴결백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올빼미나 부엉이는 밤에 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고, 어두운 암흑의 세계에서 인간을 보호해주는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구리 그릇

구리 그릇은 주로 제사용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제사에 제물을 올릴 때 사용되는 고기, 물, 술, 곡물 등에 따라서 그릇이 달라지고, 생으로 사용하는지, 익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지고 운반하는지, 담아놓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합니다.

  사진 위쪽은 정(鼎)이고, 아래쪽은 격(?)입니다.
 사진 위쪽은 정(鼎)이고, 아래쪽은 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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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鼎)은 손잡이가 두 개 달려있고 다리가 세 개인 솥입니다. 고기나 뼈들을 끓여서 국을  만들거나 국을 덥힐 때 사용하는 그릇입니다. 가장 중요한 구리 그릇으로 특히 서주 후반기 이후에는 크기가 다른 정이 같이 출토되기도 합니다. 보통 왕은 아홉 개까지 가질 수 있지만 제후나라들은 왕보다 많이 가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2. 격(鬲)은 다리가 셋인데 다리 위가 주머니처럼 생겼습니다. 쓰임새는 정과 거의 비슷합니다. 손잡이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시루를 말하는 헌(獻)입니다. 사진 오른쪽 위는 시루 가운데 모습입니다.
 시루를 말하는 헌(獻)입니다. 사진 오른쪽 위는 시루 가운데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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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헌(獻)은 시루입니다. 격(鬲) 위쪽에 귀가 달린 증(甑)을 올려서 사용합니다. 상나라, 서주 시대까지 격과 증을 한 몸으로 만들었지만 춘추전국시대 이후 증을 나눌 수 있도록 바꾸었습니다. 일체형은 격과 증 사이에 떼어낼 수 있는 발을 놓고 그 위에 곡물 등을 놓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양이 다른 궤(?)입니다. 만든 때나 곳이 각기 다르면 모양도 다릅니다. 궤는 곡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모양이 다른 궤(?)입니다. 만든 때나 곳이 각기 다르면 모양도 다릅니다. 궤는 곡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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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궤(簋)는 받침대와 손잡이가 달린 주발로 곡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받침대가 사각으로 된 것도 있고, 덮개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상(商) 나라 전기에서 춘추시대까지는 손잡이가 보이지만 상나라 후기에는 손잡이가 없어집니다. 다시 서주 시대에는 손잡이 달리는 모양이 일반화됩니다.  

5. 보(簠)는 받침대가 달린 역방추형 즉 옆모습이 다이아몬드 형이고 몸뚱이와 비슷한 덮개가 있는 그릇으로 곡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서주 후기에서 전국시대에 걸쳐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돈(敦), 두(豆), 작(爵), 가(?)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돈(敦), 두(豆), 작(爵), 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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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돈(敦)은 반구형 혹은 반타원형 달걀 모양으로 몸통에 고리모양 귀걸이와 짧은 다리가 세 개 달린 그릇입니다. 덮개도 몸통과 거의 같은 모양이 많고 덮개를 덮으면 둥근 그릇이 됩니다. 곡물 등을 담는 그릇으로 춘추전국시대 중기 무렵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전국시대에 유행하였습니다.

7. 두(豆)는 낮은 접시에 긴 다리가 달린 굽잔으로 곡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서주 전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쳐서 만들어졌지만 춘추 후기부터 전국시대 중기에 걸쳐서 많이 늘어납니다. 춘추전국 때는 몸통이 깊어지고 손잡이와 덮개가 있는 것이 많습니다.

8. 작(爵)은 세 다리가 달린 몸통을 가진 그릇으로 따르는 곳이 달려 있는 그릇입니다. 따르는 곳 반대쪽이 날카롭게 튀어나왔습니다. 몸통 한 가운데에 위에서 아래로 긴 손잡이가 달려있습니다. 이것은 술을 덥히는 그릇입니다. 상나라 전기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특히 상나라 후기에는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서주 때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여 후반기에는 자취를 감춥니다.

9. 가(斝)는 옆으로 긴 손잡이가 위에서 아래로 달려있고 다리가 세 개 있는 그릇입니다. 그릇 위 양쪽으로 기둥이 두 개 서있습니다. 그릇 몸통이 주머니 세 개로 된 것, 둥글게 생긴 것, 바닥이 평평한 것 등 여러 가지 모양이 있습니다. 작(爵)과 같이 술을 덥히는 그릇으로 생각됩니다. 상나라 중기부터 서주 전기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 치(?)이고, 아래 사진은 존(尊)입니다. 치(?)는 전시품이 없어서 다른 그림을 올렸습니다. 아래 사진 왼쪽 존(尊)은 부엉이 모양 존입니다. 부엉이는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부엉이가 밤의 세계, 즉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고 어둠의 세계에서 인간을 지켜주는 신앙적인 존재로 여겨져 자주 나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 치(?)이고, 아래 사진은 존(尊)입니다. 치(?)는 전시품이 없어서 다른 그림을 올렸습니다. 아래 사진 왼쪽 존(尊)은 부엉이 모양 존입니다. 부엉이는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부엉이가 밤의 세계, 즉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고 어둠의 세계에서 인간을 지켜주는 신앙적인 존재로 여겨져 자주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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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觚)는 입이 나팔모양으로 크게 벌어지고 여덟 팔(八) 자 모양으로 굽어지고 굽이 달린 그릇입니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목과 굽 사이에 짧은 부분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잔이라고 생각됩니다. 상나라 중기에 나타나서 서주 후기까지 보이지만 특히 상 후기에는 작(爵)과 같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11. 치(觶)는 목과 몸통의 경계에 구별이 없고 목이 몸통과 거의 비슷하게 튀어나온 그릇입니다. 기본적으로 횡단면은 타원형을 띤 것이 많고, 뚜껑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데 사용합니다. 은허 때부터 서주 전기에 걸쳐서 만들어졌지만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고(觚)와 비교해서 출토되는 수가 적습니다.

12. 존(尊)은 입이 나팔모양으로 크고 높은 굽을 가진 그릇입니다. 술을 담아서 신 앞에 올리는 그릇입니다. 어깨 부분이 튀어나와 목이 깊게 굽어져 있는 것, 어깨가 없이 원통형 몸통으로 된 것, 목이 튀어 나온 것, 전체가 짐승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 등이 잇습니다. 상나라 중기에 나타나서 서주 중기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사진은 모두 모양이 각기 다른 유(?)입니다. 왼쪽 위 사진은 호랑이 입안에 사람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호랑이의 힘으로 인간이 보호를 받는다는 뜻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이 유는 호유(虎?)로 기원전 11 세기 서주 전기 작품으로 보입니다(높이 35.7cm, 무게 5.09kg). 유는 술을 담아서 운반하는 주전자입니다.
 사진은 모두 모양이 각기 다른 유(?)입니다. 왼쪽 위 사진은 호랑이 입안에 사람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호랑이의 힘으로 인간이 보호를 받는다는 뜻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이 유는 호유(虎?)로 기원전 11 세기 서주 전기 작품으로 보입니다(높이 35.7cm, 무게 5.09kg). 유는 술을 담아서 운반하는 주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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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卣)는 몸통이 강하게 튀어나오고 횡단면이 대추 모양으로 되어있고 뚜껑이 있고, 그릇 양쪽을 잇는 유 자 형 손잡이가 달려 있는 그릇입니다. 양쪽에 손잡이가 붙어있는 것, 목이 가늘고 둥근 항아리에 손잡이가 붙은 것, 새나 짐승 모양 그릇에 손잡이가 달린 것 등도 보입니다. 술을 담아서 운반하는 그릇입니다. 상나라 후기부터 서주 중기까지 보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방이(方?), 시광(??), 화(?), 뇌(?)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방이(方?), 시광(??), 화(?), 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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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방이(方彝)는 굽이 달린 사각 몸통에 지붕 모양의 뚜껑이 있는 그릇입니다. 지붕 가운데 꼭대기에는 커다란 꼭지가 달려있고 몸통과 뚜껑 네 면과 한 가운데에 꾸미개가 달려있습니다. 서주 때 만들어진 그릇에는 손잡이가 양쪽으로 한 쌍 붙어있는 것도 있습니다. 술을 담아서 신에게 올리는 그릇입니다. 상나라 후기부터 서주 중반 무렵까지 만들어졌습니다.  

15. 시광(兕觥)은 횡단면이 타원형으로 한쪽 끝에 물을 따르는 구멍이 있고, 반대쪽 끝에는 손잡이가 달려있는 그릇입니다. 뚜껑이 반드시 있지만 물을 따르는 곳에 짐승 얼굴을 한 괴수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받침대에 굽이 달린 경우가 많습니다. 술을 따르는 그릇입니다. 상나라 후기부터 서주 중기 무렵까지 모이지만 출토된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16. 화(盉)는 둥근 몸통에 물을 따는 꼭지가 있고 덮개가 있는 그릇입니다. 보통 다리가 세 개나 네 개 있지만 굽만 달린 것도 있습니다. 술이나 물을 딸기 위한 주전자입니다. 상나라 중엽부터 전국 시대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서주 이후의 그릇은 덮개와 몸통이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뚜껑이 없어지지 않도록 궁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17. 뇌(罍)는 목이 짧고 강하고 긴 어깨, 바닥을 향해서 좁아진 몸통을 가진 그릇입니다. 어깨 부근에 고리를 붙여서 손잡이가 두 곳에 달려있습니다. 또한 상나라 후기부터 서주 중기에 걸쳐서 만들어진 그릇에는 몸통 아래에 손잡이가 한 개 달려있습니다. 전국시대까지 오랜 기간 동안 만들어졌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호(壺), 이(?), 반(盤), 부(?)입니다. 반(盤) 한가운데 개구리가 있고 주위에는 동심원으로 뱀이 그려져 있습니다. 현실에서 뱀과 개구리는 천적관계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는 현실 관계를 벗어난 이상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호(壺), 이(?), 반(盤), 부(?)입니다. 반(盤) 한가운데 개구리가 있고 주위에는 동심원으로 뱀이 그려져 있습니다. 현실에서 뱀과 개구리는 천적관계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는 현실 관계를 벗어난 이상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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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호(壺)는 밖으로 열린 구멍에 긴 목과 둥근 몸통을 가진 그릇입니다. 목이나 어깨 부근에 귀가 두 개 달려있습니다. 덮개가 없는 것이 많습니다. 술이나 물을 담아두는 그릇입니다. 상나라 후기부터 전국시대 이르는 오랫동안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횡단면이 타원형이고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서주 후반기가 되어서 급격히 늘어난 뒤 중요한 그릇 가운데 하나로 발달했습니다.

19) 이(匜)는 횡단면이 타원형으로 된 낮은 몸통을 지니고 따르는 곳이 넓은 그릇입니다. 따르는 곳 반대쪽에는 손잡이가 있습니다. 발굽이 있는 것도 있지만 네 발을 가진 것도 많습니다. 손을 정화시킬 때에 물을 부어주는 그릇으로 다음에 나오는 반(盤) 같이 사용됩니다. 서주 중기 이후 전국 시대까지 만들어졌습니다.

20) 반(盤)은 몸통이 낮고 입이 매우 넓으며 굽이 달려있는 그릇입니다. 네 발 혹은 세발 다리가 달린 것도 있습니다. 손을 정화시킬 때 물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상나라 후기부터 전국시대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서주 중기 이후에는 이(匜)와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21) 부(䍌)는 술을 담아두는 그릇입니다. 보통 짧은 목과 둥글고 큰 몸통을 지니고 있으며 높이보다 폭이 큽니다. 

 사진 왼쪽 위는 조(俎), 도마이고, 아래는 로(爐)이고, 한 가운데는 순우(錞于), 맨 오른쪽은 정(鉦)입니다. 순우와 정은 악기입니다.
 사진 왼쪽 위는 조(俎), 도마이고, 아래는 로(爐)이고, 한 가운데는 순우(錞于), 맨 오른쪽은 정(鉦)입니다. 순우와 정은 악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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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조(俎)는 고기를 자르거나 날고기를 올려놓는 도마입니다. 옻칠 도마가 많이 사용되는데 청동도마는 매우 드뭅니다. 

24) 로(爐)는 위쪽에 먹거리를 놓고 아래에 불씨를 넣는 부분으로 되어 있는 가마입니다. 먹거리를 덥히는데 사용합니다.

25) 순우(錞于)는 어깨가 굵은 원통형 몸통으로 바닥이 없는 타악기입니다. 어깨와 바로 이어진 짧은 목은 발굽을 뒤집어 놓은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위쪽이 평평하고 가운데에 꼭지가 달려있습니다. 이 꼭지에 중앙에 호랑이 한 마리를 통째로 만들어 놓은 것이 많아서 호순(虎諄)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타악기의 한 종류로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때까지 만들어졌습니다.

26) 정(鉦)은 종의 몸통 부분에 길고 가는 막대기 모양의 손잡이가 붙어있는 타악기입니다. 위쪽 손잡이를 쥐고 휴대용으로 쓰는 타악기로 춘추전국 시대부터 한나라 때에 걸쳐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 크기에 따라서 늘여놓은 종들, 유종(紐鐘), 용종(甬鐘)입니다. 이들은 모두 구리 악기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 크기에 따라서 늘여놓은 종들, 유종(紐鐘), 용종(甬鐘)입니다. 이들은 모두 구리 악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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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박(鎛)은 횡단면이 타원형으로 걸어놓고 쓰는 종으로 아래가 평평합니다. 거는 곳은 얇은 판 모양의 유 자 형 고리로 되어있습니다. 이것만 단독으로 출토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러 개가 같이 나옵니다. 서주부터 전국시대에 걸쳐서 만들어졌습니다.

28) 종(鐘)은 횡단면이 럭비 볼처럼 생겼고 아래쪽 양 두 쪽이 날카로운 것이 종입니다. 거는 부분은 막대기 모양인 것을 용종(甬鐘)이라고 하고, 유 자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것을 유종(紐鐘)이라고 합니다. 모양이 비슷한 것이 여러 개 있는데 크기의 역순으로 음계를 형성합니다. 아래쪽 한 가운데와 양쪽 끝 부분을 두드려서 두 가지 소리를 냅니다. 서주시대부터 전국시대에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은 구리 그릇 유물을 시대에 따라서 방 넷에 나누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방 셋이 구리 그릇 유물이고 나머지 한 방은 청동 거울을 모아놓았습니다. 구리 그릇을 사용하는 제사가 없어지면서 구리 그릇도 점차 자취를 감춥니다. 이후 구리 그릇을 만드는 기술은 구리 불상을 만드는 기술로 이어집니다.

구리 거울

요즘 거울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거나 옷차림을 고칠 때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과거 청동거울은 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되는 신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거나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청동거울에는 여러 가지 신령한 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구리거울을 무늬 중심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반이문경, 연호연경, 이체자명대경, 방격규거경, 수대경, 내행화문경들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반이문경, 연호연경, 이체자명대경, 방격규거경, 수대경, 내행화문경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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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이문경(蟠螭文鏡),
2) 연호연경(連弧連鏡)
3) 이체자명대경(異體字帶鏡)
4) 방격규거경(方格規矩鏡)
5) 수대경(獸帶鏡)
6) 내행화문경(內行花文鏡)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화상경, 신수경, 삼각록신수경, 산모문영, 사신경, 12지문경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화상경, 신수경, 삼각록신수경, 산모문영, 사신경, 12지문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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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상경(畵像鏡)
8) 신수경(神獸鏡)
9) 삼각록신수경(三角綠神獸鏡)
10) 산모문경(狻㹸文鏡),
11) 사신문경(四神文鏡)
12) 12지문경(支文鏡)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해수포도경, 쌍봉쌍수문경, 유금서화문경, 쌍앵서화문경, 서상문경, 단화문경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해수포도경, 쌍봉쌍수문경, 유금서화문경, 쌍앵서화문경, 서상문경, 단화문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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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해수포도경(海獸葡萄鏡)
14) 쌍봉쌍수문경(雙鳳雙獸文鏡),
15) 유금서화문경(遊禽瑞花文鏡)
16) 쌍앵서화문경(雙鶯瑞花文鏡)
17) 서상문경(瑞祥文鏡)
18) 단화문경(團華文鏡)

  사진 왼쪽 위부터 서화문경, 선각불제존경상, 해수포도방경입니다. 당나라 때에는 거울이 여러 가지 모습을 띠기 시작합니다. 사진 아래 왼쪽부터 단문척(?文戚)은 자루에 고정시켜서 쓰는 도끼입니다. 위에 있는 선각불제존경상의 명세도입니다. 이 거울은 일본 국보입니다(지름 15.1cm, 무게 777g). 구리 북, 사와동고(四蛙銅鼓)입니다. 북 가장자리에는 거북이 네 마리가, 북 한 가운데 태양무늬가 장식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북은 화남에서 베트남에 걸쳐서 보입니다(높이 51.8cm, 무게55.3kg).
 사진 왼쪽 위부터 서화문경, 선각불제존경상, 해수포도방경입니다. 당나라 때에는 거울이 여러 가지 모습을 띠기 시작합니다. 사진 아래 왼쪽부터 단문척(?文戚)은 자루에 고정시켜서 쓰는 도끼입니다. 위에 있는 선각불제존경상의 명세도입니다. 이 거울은 일본 국보입니다(지름 15.1cm, 무게 777g). 구리 북, 사와동고(四蛙銅鼓)입니다. 북 가장자리에는 거북이 네 마리가, 북 한 가운데 태양무늬가 장식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북은 화남에서 베트남에 걸쳐서 보입니다(높이 51.8cm, 무게55.3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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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서화문경(瑞花文鏡)
20) 선각불제존경상(線刻佛諸尊鏡像)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 특별전에서는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수집한 불교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실크로드는 동서양 문물이 교차되는 중요한 거점이면서 불교 전달 과정에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무역상인, 불교승려 등이 머물면서 많은 불교 유물과 유적을 남겨두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 이후 서구열강의 많은 나라들이 실크로드를 탐험 조사하면서 흩어져 있던 유물과 유적을 떼어내 자신의 나라로 가져갔습니다. 지금 실크로드의 중요한 지역에는 불교 유물이나 유적이 거의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불교 유물이나 일본 이곳저곳에 있는 불교 유물을 이곳에 모아놓았습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은 스미토모 재벌 주인 가문에서 그간 수집해 온 골동품과 땅을 내놓아서 지어진 것입니다. 재벌이 돈을 모아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실크로드 특별전에 전시된 사리용기와 내용물입니다. 공 모양 돌 용기, 은제 원통형 용기, 금제 용기 안에 사리가 들어있습니다. 금판에는 카로슈티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카로슈티(Kharoshthi) 문자는 고대 인도 서북부 인더스강 부근에서 사용된 글자로 기원전 5세기 무렵 알람 문자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이며 5 세기 이후 프라후미 문자로 바뀝니다. 우리나라 절 부근에는 사리탑이 있어서 사리 신앙이 엿보이는데 일본 불교에서는 사리가 그다지 중요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크로드 특별전에 전시된 사리용기와 내용물입니다. 공 모양 돌 용기, 은제 원통형 용기, 금제 용기 안에 사리가 들어있습니다. 금판에는 카로슈티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카로슈티(Kharoshthi) 문자는 고대 인도 서북부 인더스강 부근에서 사용된 글자로 기원전 5세기 무렵 알람 문자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이며 5 세기 이후 프라후미 문자로 바뀝니다. 우리나라 절 부근에는 사리탑이 있어서 사리 신앙이 엿보이는데 일본 불교에서는 사리가 그다지 중요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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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이트>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 홈피, http://www.sen-oku.or.jp/, 2012.5.14.

가는법> JR교토역이나 교토 시내에서 5번, 100번 버스를 타고 미야노마에초(宮ノ前町)에서 내린 다음 동쪽으로 200 미터 쯤 걸어가면 됩니다. 주변에 난젠지(南禪寺) 절, 이에칸도(永觀堂) 절들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현국(朴炫國)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태그:#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미술관, #구리그릇, #청동기, #구리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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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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