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내 기억 속에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그 첫째는 가지무침. 뒤란에서 갓 따온 가지를 가마솥 밥 뜸들일 때 얹어 익힌 다음, 그것을 손으로 길게 찢어 참기름과 볶은 참깨, 고춧가루와 간장을 살짝 넣고 손으로 버무린 것이다. 부드러운 질감의 가지에 고소한 참기름이 섞여 토속적이고 정겨운 맛이 살아난다.
두 번째는 고춧잎 절임이다. 늦가을 고추 수확 끝물에 어린 고추와 고춧잎을 함께 훑어 잘 숙성된 멸치액젓에 절여낸 것이다. 약한 불에 단순하게 조리한 것이지만 풋풋한 고추와 고춧잎이 멸젓에 절여져 깊은 맛을 낸다. 여기에 밥을 비벼먹던 기억이 새롭다. 고춧잎 절임 생각만 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멸젓을 넣어 조리하는 것은 전라도 전통식으로 타 지역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세 번째는 호박잎 된장국이다. 애호박 잎을 따다가 된장을 풀어 끓이면 된다. 낚시로 붕장어(아나고)라도 몇 마리 잡을라치면 그것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다. 개운하기가 이를 데 없어 속풀이에 안성맞춤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식당밥으로 대부분의 끼니를 해결하다보니 온갖 음식에 길들여져 있지만, 주홍글씨처럼 내 혀에 깊게 각인된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종종 그런 것들이 생각나 아내에게 부탁해보지만 어머니의 손맛이 재현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특별한 미식가는 아니다. 공장을 통해 대량생산·공급되는 음식보다는 사랑과 정성이 담긴 그런 음식이 그리울 뿐이다.
패스트푸드나 체인점의 획일화 된 맛이 아니라 사람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손맛이 살아있어야 한다. 김치나 된장, 막걸리 등 우리의 전통발효식품은 지역이나 기후, 저장방법 등에 따라 다양한 맛이 연출된다. 특히 김치는 종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지역별로 특색이 있고,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담가먹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편리를 쫓다보니 김치도 공장식 김치가 많아 공장에서 획일화된 라인를 통해 대량 생산돼 가정과 식당, 대형마트 등에 공급된다. 뿐만 아니라 김치와 절임 배추는 중국으로부터 많은 양이 수입돼 우리의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마늘, 양파, 고춧가루 등 양념류의 대부분도 수입되고 있다. 그것들의 이동거리와 보관기간 등을 따지면 안전과 건강을 담보할 수 없는 제품들이다.
모든 병의 근원은 먹거리 문제라고 했다. 회사가 신도시로 이전한 후 회사주변에 들어선 식당들이 대부분 체인형태의 식당들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최소 비용으로 운영되다 보니 체인 식당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이들은 음식을 프레스에서 찍어내듯 만들기 때문에 음식의 깊은 맛이 없고 조미료 범벅이다.
그래도 도시 외곽이나 시골 쪽으로 들어가면 가끔 어머니 손맛이 배어있는 시골밥상을 만날 수 있다. 다소 청결하지 못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넉넉한 인심과 깊은 맛이 살아있다. 텃밭에서 갓 뜯어온 푸성귀를 버무려 내오고, 살아있는 새우와 게를 무쳐 준다. 그야말로 생명이 넘치는 건강이 묻어나는 밥상이다.
이제 와서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어머니 손맛을 다시 맛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청정지역에서 친환경적으로 자란 먹을거리라면 특별한 양념을 가미하거나 조리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맛을 지니고 있다.
날마다 밥때만 되면 무엇을 먹을까 고민에 빠지는 직장인들은 사랑과 정성이 담긴 어머니 손맛을 담은 밥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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