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친엄마인가요? 진보라는 아이가 칼로 두 동강 날 때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들이 힘없는 서민을 대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농민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으로 기대했다니... 이명박 정권과 뭐가 다를 게 있나 하는 비통한 생각이 듭니다."
단지불회 회주 명진 스님은 최근 통합진보당의 사태를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지혜'에 비유하면서 침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또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최근 불거진 조계종단의 도박사건에 대해서도 "국민과 불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면서 "올 여름은 저도 참회하면서 깊은 산중에서 하안거를 보낸다"고 말했다.
"진보의 싹 짓밟는 만행"
3개월 동안의 하안거를 위해 조만간 경북 문경 봉암사로 떠날 채비를 하는 명진 스님을 14일 서울 한남동의 단지불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통합진보당의 분란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리는 중이었다. 그 첫 구절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구약 열왕기상 3장 12~13절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지혜를 보면 '어느 날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서로가 자기의 아이라고 싸우자 묘안이 없던 솔로몬 왕이 부하들에게 칼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살아있는 아이를 칼로 베어 두 여자에게 반씩 나눠주라고 한다. 솔로몬 왕의 명을 받은 부하가 칼로 베려고 하자 가짜 엄마는 보고만 있고 진짜 엄마는 큰 소리로 아이를 살려서 저 여인에게 주라고 울부짖는다.'
누가 친엄마인가? 진보는 자기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역사의 흐름을 정의롭게 흘러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때론 분하고 억울하고 내가 옳다는 것이 묻히더라도 참아가면서 힘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끝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변해가는 게 진보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의 싸움은 한국의 진보를 싹부터 짓밟는 만행과 다를 바 없다."
그는 이어 "통합진보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에서도 이번 사태와 같은 정파 간의 갈등과 대립이 여러 차례 있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한 문제들이 자정되지 못한 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오다 보니 이런 문제가 또 다시 불거진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진보의 죽음, 진보의 절망을 보면서 차라리 양심적인 보수에 희망을 거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난투극을 벌이면서 서로 싸우고 머리끄덩이 잡고 늘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뭉칠 수 있겠냐"고 일갈했다.
"모욕스럽더라도 물러나는 게 진짜 엄마"
그의 죽비는 먼저 당권파를 향했다.
"설사 억울하고, 당권파가 매도되는 상황을 막겠다는 심정이 있더라도 폭력으로 진보의 싹을 짓밟는 행위는 어린애가 죽어도 좋으니 반이라도 갖겠다는 추악한 욕망으로밖에 볼 수 없다. 민주당은 계파간 갈라먹기해서 4·11 총선 망쳐놓았는데, 통합진보당은 자기 욕망과 당의 이익에 매몰돼 선거의 시기인 2012년 거대한 희망의 물결을 끊어놓았다."
그는 이어 "투표 때마다 '아니 형님이 대신 하소' '내가 뭐 아는가'식의 관행을 싹 무시하고 불법적인 집단으로 매몰차게 '역적'으로 내몬 비당권파도 크게 잘한 것은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관행이라고 해도, 잘못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일어난 사안이고, 진보 쪽에서 조직생활을 한 사람들은 너그러이 이해한다고 해도 이런 행태를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면서 "당권파는 모욕스럽게 물러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모욕스럽더라도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이 진짜 엄마"라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최근 불거진 조계종단의 도박사건에 대해서도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각계에서 요청을 받은 강연도 일체 중단할 정도로 머리 깎고 승복 입고 산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했다.
그는 "내가 나서서 깃발을 든다고 해서 조계종 종단이 바뀔 희망이 있겠는가"라면서 "이번 사건은 종단 집행부의 요직에 앉은 사람들이 연루돼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는데 저런 집행부를 탄생시킨 것도 종단의 스님들이고, 내가 종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할 때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도리어 나를 손가락질했다"고 성토했다.
조계종 진흙탕 싸움 피하는 길은?
그는 일부 언론에서 도박 폭로 건을 자신과 연결시키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 이번 '몰카'가 스님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터무니 없는 소리다. 지금까지 MB정권과 그런 식으로 싸우지 않았다. 안상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 대표가 '강남의 좌파 주지를 몰아내라'는 식으로 자승 총무원장을 압박했다는 사실을 폭로할 때도, 일부에선 김영국 거사를 믿을 수 없으니 몰래 녹음을 하자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난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가 폭로한 뒤에도 김영국 거사가 나의 이야기가 사실인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면 난 그냥 떠나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보수언론들은 그간 자승 총무원장을 비판해 온 내가 이 사건을 조종했다고 의심할 수도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 그럼 언론에 나오기 전에 도박 동영상의 존재를 몰랐나?
"그 전에 알았다. 찍고 난 다음에 누가 동영상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누가 찍었나?
"백양사 주지 해임건을 놓고 싸우는 과정에서 돌출된 사안이라고 전해들었다."
- 그런데 그게 어떻게 성호 스님에게 간 것인가?
"그 과정은 전혀 모른다. 나도 그 영상을 보진 못했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영상과 사진만 봤다."
명진 스님은 최근 도박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이 과거 자신과 자승 총무원장이 룸살롱에 간 사실을 공개하면서 1인 시위 한 것에 대해 묻자, "지난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전 사건에 대해 고백한 적이 있다"면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중으로서의 계율은 지켰고, 그 사건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조계종 종회(조계종 최고 의결기관) 부의장직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문건을 보여줬다. 2012년 3월 12일 성호 스님이 <불교닷컴> 기사의 댓글에 달았다는 사과문이다. 그 핵심 부분은 이렇다.
"실체적 진실을 확인해 본 바 명진스님의 주장이 사실이어서 소승은 명진 스님의 명예를 심대히 훼손한 점에 대해 우선 참회의 글을 올리며, 참회하는 의미에서 당분간 1인 시위를 중단하고자 합니다.(중략) 과거 시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감옥살이를 한 진정한 민주화의 화신이시자 바른 말씀 잘하시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하실 명진 큰 스님의 명예에 심대하게 누를 끼친 점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심으로 참회를 올립니다. 진심으로 참회하는 의미에서 빠른 시일 안에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명진 스님은 조계종 도박사건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자승 총무원장이 지금 곧바로 물러난다면 비슷한 류들이 달라붙어서 권력을 빼앗기 위한 진흙탕 싸움을 벌일 것"이라면서 "국민과 불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비대위원회를 구성하고 재가 불자들도 여기에 절반은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총무원장은 이제 종단의 종무 행정에 참여하지 말고 사람들이 쇼라고 욕을 하더라도 조계사 앞마당에서 하루에 천 배씩 참회를 한 뒤에 비대위의 결정을 전폭 수용해서 종회를 설득해야만 파국을 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목탁으로 그들의 머리 내리치고 싶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자신의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하는데 말 표현이 문제가 있다. 부처님이 오시는 게 아니라 우리 내부의 사랑과 자비 이웃에 대한 연민, 이런 마음 자체가 부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되는 날이 돼야 한다. 또 한 가지는 요즘 조계종단의 여러 불미한 사태로 해서 사실은 제가 얼굴 내놓고 인터뷰할 면목도 없다. 다시 한번 머리를 깊이 숙여서 국민 앞에, 불자 앞에 진심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참회를 한다. 용서해 주십시오. 한국 불교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마음으로 참회한다. 올 여름은 저도 참회하면서 깊은 산중에서 하안거를 보내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기자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진보는 죽었다. 절간의 목탁으로 그들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죽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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