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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 바위 위에 올라 바라본 낙동강...
▲ 오봉산... 조망 바위 위에 올라 바라본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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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닿는 산과 들이 나날이 푸르름을 더해만 가는 싱그러운 오월이다. 시인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에서 봄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노래했다. 봄은 죽은 듯한 대지에서 미미한 떨림으로 시작된 연한 새순과 꽃들로 순식간에 생명의 경이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는 계절이기에 그 아름다움을 슬픔이라는 정서와 보탰다. 혹자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봄은 때에 따라 화창해지기도 하고 저절로 노래가 나오는가 하면 눈물이 흐르기도 하며 감정이 천 가지 만 가지로 변한다. 취했을 때 바라보면 즐겁고 깬 뒤에 바라보면 슬퍼지고 궁했을 때 바라보면 왜 그리 구름과 안개가 많으며 호사스런 마음으로 바라보면 하늘도 맑아라."

날씨고 맑고 화창해서 산을 만나러 가기에도 좋은 날이다. 싱그러운 오월의 산, 그 호젓한 숲길을 걷는 것은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오늘은 멀리 가지 않고 딱히 갈 데가 마땅찮을 때 즐거이 찾아가던 금정산도 아니 가고 우리 집 뒷산, 오봉산을 오랜만에 만나러 가기로 했다. 늘 집 뒤에서 든든한 후광처럼 바위처럼 묵묵히 지켜보고 앉아있는 오봉산을 지척에 두고서 자꾸만 조금 더 멀리 다른 산을 다녔었다. 이 산 저산 오가면서 시나브로 올려다보던 오봉산으로 간다.

소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
▲ 오봉산... 소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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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오르며...
▲ 오봉산... 산길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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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에게는 북한산이 있고, 최인호 작가에겐 청계산이 있고, 고 박완서 작가에겐 아차산이 있었듯이 나도 지척에 나의 산을 갖고 싶었지만, 막상 산 밑에 이사를 온 후에도 오봉산을 멀리해왔다. 가끔 산책길 따라 숲속으로 접어들긴 했지만, 숲을 시나브로 드나들고 싶어도 함께 걸을 동무 없어서, 너무 외지다는 핑계로 (무서움이 많다) 멀리해왔다. 가고 오는 시간이나 교통비도 안 들고 바로 집 뒤에 있어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경남 양산시 물금읍과 원동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오봉산(533m)은 이름 그대로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다. 제1봉이 낙동강 바로 동쪽에, 그 반대편 북동쪽 양산시 부근 화제고개 못 미쳐서 제5봉(449m)이 있다. 오봉산의 맞은 편 북쪽엔 토곡산이 자리 잡고 있고 가지산-간월산-신불산 등으로 이어오던 영남 알프스가 낙동강에 이르러 마지막 끝맺음을 하는 것이 오봉산이다. 오봉산의 남쪽은 양산천을 낀 물금, 그 건너편 동쪽에는 금정산이 높이 솟아 있고 북서쪽으로는 화제평야가 접해 있다.

야생화도 많아라...
▲ 오봉산... 야생화도 많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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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여라 이 꽃은 이름이 뭘까...
▲ 오봉산... 신기하여라 이 꽃은 이름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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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듯이 오봉산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인근주민들도 영남알프스나 토곡산 등 주변 산들만 찾곤 한다. 웅장하거나 광활하다거나 우뚝해서 위엄 있는 그런 산은 아니지만 오봉산은 낙동강 조망이 탁월하고 다섯 개의 봉우리를 넘으면서 양옆으로 조망되는 원동 화제마을 일대와 양산 시내 김해, 부산 일대까지 멀리멀리 조망되고 호젓하고 꽤 매력적이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이기도 했고,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패러글라이더 동호인들의 발길이 잦다.

물금 성당을 지나 정안사를 거쳐 고요한 아침 숲으로 접어들었다. 이른 아침 숲은 푸르고 싱그럽다. 숲에서 어디선가 이름도 잘 모르는 새소리가 청아하다. 발치께엔 야생화천국이다. 나는 이 작은 들꽃들에 종종 매료된다. 그냥 외면하고 지나가질 못해 번번이 서고 또 서는 까닭에 걸음엔 속도가 붙질 않는다. 들꽃들은 그 빛깔이 대부분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다. 눈에 띌 듯 말듯 수줍게 핀 들꽃도 있고 가끔은 화사한 빛깔로 눈길을 잡아채는 야생화도 있다. 소나무 둥치를 친친감고 올라간 담쟁이 넝쿨들도 소나무에 잇대어 그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숲은 서늘하다.

정안사에서 얼마간의 산속 길은 몇 번 산책삼아 몇 번 와본 길이라 익숙하다. 숲은 고요해서 산길 걷고 있는 사람이 우리 둘뿐인가 생각하고 있던 찰나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과 스친다. 일찍 산행을 마치고 오는 사람들이다. 오르막길을 얼마 동안 걷다보니 체육시설 앞에서 네 사람의 중년남녀가 앉아 쉬고 있다. 부산서 예까지 온 사람들이라 한다. 우리도 여기서 잠시 숨을 돌려 내처 올라간다.

길가엔 유난히 보랏빛 싸리꽃이 많다. 떨어진 씨가 발아해서 생긴 어린싸리나무들인 듯한데 낮게 핀 싸리나무마다 보랏빛 꽃을 달고 있어 꽃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많이 보아 익숙한데 이름을 몰라 불러 볼 수 없는 야생화들도 많다. 아무래도 식물도감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봄엔 산과 들에 어디든지 야생화들의 천국인 것 같다. 봄 산 닿는 곳마다 야생화들에 내 마음 홀리니 말이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낙동강...자전거 도로도 보이고...
▲ 오봉산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낙동강...자전거 도로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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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오름길 가다보니 갈림길이다. 왼쪽 오른쪽, 우린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오르막경사 길을 얼마쯤 가다보니 원두막 같은 정자가 보인다. 오랜만에 와서 보니 꽤 달라진 것들이 많다. 잘 만들어놓은 이정표하며 정자하며 나무 의자 등 달라진 것들이 많다. 정자가 있는 오거리(?)에서 오봉산 정상까지는 1.0km, 우리가 올라온 길 장안사까지는 0.6km, 96계단은 2.2km, 대동아파트까지는 3.1km, 임경대 등. 잠시 휴식 후 오봉산 정상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름길에서 양산 가촌마을과 김해 낙동강과 멀리 화명동까지 희미하게나마 조망되고 낙동강 옆으로 생긴 자전거도로가 비뚤비뚤 가르마처럼 선명해 보인다. 능선 삼거리다.

낙동강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곳 바위 위에 올라앉았다. 낙동강은 총 유역면적이 2만 386km2, 본류길이가 525.15km로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서 발원해 영남지방의 중앙저지를 통해 남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남한에서는 제일 긴 강으로 우리나라 전체로는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영남지방의 거의 전역을 휘돌아 남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낙동강은 삶의 젖줄이면서 6.25 등 전쟁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에 없던 돌탑도 있고...
▲ 오봉산... 전에 없던 돌탑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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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바라본 오봉산 능선...
▲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오봉산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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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이다. 저녁놀이 붉게 물들었던 날에 이곳에 섰던 적이 있다.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노을이 하늘가를 물들이고 강물을 붉게 물들였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그때 붉은 노을빛을 보며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었다. "1.4후퇴 때 낙동강이 온통 피로 붉게 물들였니라." 그 낙동강이 말없이 흐르고 있다.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줄기와 자전거 도로, 화제마을의 바둑판같은 논밭들과 맞은 쪽 김해 무척산과 그 뒤로 펼쳐진 산산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낙동강은 위 아래로 막힘없이 길게 휘어져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낙동강 조망바위에 올라 앉아 한동안 망중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숲은 나뭇잎이 무성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어 걷는 길 내내 시원하고 상쾌하다. 숲길은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고 고요해서 생기를 머금고 있어 좋다. 걸어도 걸어도 피곤치 않다. 느릿느릿 여유 있게 걸어서 더욱 좋다. 발길 닿는 숲길 걷다보면 심심찮게 조망바위가 나타나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가는 재미도 있다. 초록으로 물든 숲길 걷다보면 초록으로 온 맘 온몸이 짙게 물들 것만 같은 싱그러움이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
▲ 오봉산...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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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정상(해발533m)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오봉산 정상 주변 숲 그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옆에는 전엔 보지 못했던 높다란 돌탑이 우뚝 세워져 있다. 오봉산 정상에서는 화제마을, 오봉산 능선 길과 양산시내 멀리 금정산과 낙동강 등이 두루 조망된다. 햇빛을 피해 숲길로 접어들었고 숲속 언덕배기에 올라 앉아 모처럼 단 둘이서 오붓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버너와 코펠을 가져 와서 라면을 끓여먹는다. 에고, 가까운 산이라고 먹을 것 준비를 너무 부실하게 준비한 것 같다. 밥 한 덩어리라도 더 가져오는 건데.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보니 조금 허전하지만 어쩔 수 없다. 행동식 초콜릿으로 산길 걷는 중간에 먹어서 보충한다.

심심찮게 조망 바위가 있어 숲길 걷다가 조망 바위 위에 올라 한숨 돌리고 걷곤 한다. 오월의 싱그러움이 온 몸으로 전해진다. 오래전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높은 바위에 다다랐다. "견우야 미안해~"를 외쳤던 그 장소다. 높이 우뚝 솟은 바위 꼭대기에 한 그루의 소나무는 멀리 멀리서도 조망되던 그곳이다. 바위를 더듬어 다시 숲길로 접어든다. 둥글레꽃도 연한 아이보리 빛으로 작고 아기자기한 종처럼 대롱대롱 달렸고 이름 모를 꽃들도 예서제서 눈길을 잡아챈다.

정상에서 바라본 원동 화제마을...
▲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원동 화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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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바위들이나 나무에는 곰팡이 같기도 하고 이끼 종류 같기도 한 반점(지의류?)같은 것들이 번져 있다. 이어지는 능선 길은 오르막길 걷다가 내리막길, 편편한 능선 길, 또 오르막길, 내내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다지 높은 경사가 아니라서 천천히 걷는 걸음엔 무리도 없고 산길은 상쾌하고 싱그럽다. 나뭇잎들이 만들어주는 빛과 그늘. 힘든 줄도 모르고 걷고 또 걸어도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호젓한 오월의 싱그러운 숲길을 즐거이 걷는다. 고개를 넘고 보면 또 고개가 앞에 버티고 있지만 그다지 힘든 길이 아니다. 적당히 운동이 되고 스릴도 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호젓한 오봉산 숲길 걸으면서 오봉산에 연신 감탄을 보낸다. "이렇게 좋은 줄 정말 몰랐네. 자주 와야겠네요" 하고 남편이 말하면 나는 마치 후렴구라도 넣듯이 "오봉산이 이렇게 좋은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싱그러운 오월의 오봉산 숲속 길을 다섯 개의 봉우리를 넘고 넘어서 걸었다. 제2봉을 앞에 두고 하산한다. 한적하고 고요한 숲을 마음껏 향유하고 쉼을 얻고 산행을 마쳤다. 피어 흐드러진 야생화들도 만났다. 좋은 계절이다.

오봉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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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1. 일시: 2012년 5월 12일(토) 맑음
2. 산행기점: 물금성당(정안사)
3. 산행시간: 5시간 20분
4. 진행: 물금 가촌집(10:05)-물금성당(정안사 10:10)-체육시설(10:35)-
정자(10:50)-능선 삼거리(11:10)-오봉산 정상(12:00)-점심식사 후 출발(1:00)
-96계단 능선 삼거리(1:45)-안부(2:40)-팔각정(3:20)-갈릴리교회. 범어대동아파트(3:25)



태그:#물금 오봉산,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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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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