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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원, 마을 입구.
 대명원, 마을 입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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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잿빛 건물뿐이다. 길 위로 요즘 보기 드문 시멘트 블록 벽과 슬레이트 지붕이 줄줄이 나타난다. 벽이고 지붕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어둡고 차가운 회색이다. 마을 안쪽을 연결하는 길바닥조차 같은 색조다. 길은 열려 있는데 그 길로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을 찾기 힘들다. 마을 구석구석 냉기가 서려 있다. 한낮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에도 감출 수 없는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어디 마을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거기에 '대명원도시개발조합'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없었다면, 바로 발길을 되돌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조합 건물 역시 텅 비어 있다. 불 꺼진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 네댓 개의 방문이 달려 있지만, 그 방문 안에서도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건물인지 아닌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조합 건물 옆의 복지회관 역시 잠겨 있다.

조합 건물 뒤를 돌아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역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을 안쪽으로 오래 전에 버려진 축사 건물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가축은 단 한 마리도 없다. 창문이라고 만들어 놓은 곳에 찢어진 비닐조각만 펄럭인다. 어디라고 특정 지을 수 없는 곳에서 바람을 타고 계속해서 가축의 분뇨 냄새가 풍겨온다. 그 냄새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을까?

마을 한쪽에 담뱃가게와 의료실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봐서 사람이 살았던 마을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잿빛 시멘트 건물들 사이로 자동차가 보이고, 더러 집 앞에 빨래가 걸려 있는 것도 보인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마을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사람 사는 생기를 잃어 버린 마을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대명원도시개발조합 건물과 그 옆의 대명복지회관.
 대명원도시개발조합 건물과 그 옆의 대명복지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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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 한센병을 앓는 제대 군인들이 정착한 곳

이 마을 이름은 '대명원'이다. 일명 '한센병 환자 요양촌'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후 한센병에 걸린 제대군인들이 중심이 돼 만든 마을이다. 당시에만 해도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서 소록도 같은 특정 지역에 강제 격리된 채 살아야 했다. 사회적으로 이 병에 깊은 오해와 편견이 있었던 탓이다. 대명원 사람들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람이 못 사는 곳에서 손발이 터지도록 산을 개간해" 이곳에 자신들만의 정착촌을 세웠다.

대명원은 현재 강원도 원주 시내 외곽 호저면 만종리 포복산 북쪽 산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로는 숲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원주 시청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1.5km도 떨어져 있지 않다. 포복산을 돌아가는 도로를 달린다고 해도, 채 4km가 안 되는 거리다. 하지만 이 마을은 원주 시내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전혀 다른 세계에 놓여 있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에 어떻게 마을을 이렇게 방치해 두었는지 의아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42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박달미를 넘어가는 낮은 고개 위에서 도로 너머로 잿빛으로 뒤덮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겉보기엔 오래 전에 버려진 마을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대명원 사람들은 마을이 형성된 이래 60여 년을 사회적인 온갖 편견과 차별을 견디며, 묵묵히 살아왔다. 주민 대부분이 양돈과 양계 사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넉넉한 삶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을 안에서는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큰 탈 없이 살았다.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130세대에 300여 명이다. 주민들의 나이가 평균 80세에 가깝다.

이 마을이 2007년 시작된 도시개발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2007년은 서울시에서도 뉴타운이니 뭐니 해서 한창 택지 개발 붐이 불 때였다. 당시 원주시는 대명원 일대 53만㎡에 공동주택, 단독주택, 학교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 계획만 정상적으로 진행됐어도 별 탈이 없었다. 당시에는 개발 사업이 2, 3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 후로 6년이 지났다.

 42번 국도에서 바라다본 대명원. 마을이 온통 잿빛이다.
 42번 국도에서 바라다본 대명원. 마을이 온통 잿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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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경기 침체로 부도 맞은 시공사, 중단된 도시개발사업

마을 주민들은 개발 계획이 확정되고 땅값 등 보상금을 모두 받게 되면 바로 마을을 떠날 예정이었다. 떠날 때 보상금을 완불하는 조건으로 이사 준비까지 마쳤다. 계약에 따라, 축산업 등 마을 안에서 하던 모든 일을 중단했다. 그런 와중에 시공사인 풍림산업이 갑자기 부도를 맞으면서 택지 개발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사이 주민들은 전체 토지보상금 중 1/3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았다. 하지만 풍림산업이 부도가 난 이후로는 보상금이 더 이상 지급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이제나 저제나 사업이  다시 계속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택지 개발 사업은 언제 다시 시작될지 불투명하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받은 보상금이 바닥을 드러냈다. 앞서 받은 보상금의 일부는 사업을 하면서 진 빚을 갚는 데 쓰고, 일부는 생계를 유지하는 데 사용했다.

그 결과 지금 주민들은 "그저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실정이다. 약값과 병원비 등을 포함해 한 달 생활비만 70, 80만 원이 드는데,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 등의 명목으로 나오는 지원금은 40, 50만 원에 불과하다. 그 돈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어렵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다시 빚을 지기 시작했다. 그 빚이 또 가구당 수백만 원에 달한다. 남은 보상금은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은 양계니 양돈이니 축산업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집은 나날이 허물어져가고 있다. 건설사와 맺은 계약 때문에 축산업은 물론이고 집을 개보수하는 일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다. 마을 주민들은 남은 생애나마 편안하게 살 수 있기를 원했지만, 이제는 그 소원마저 이루기 힘들게 됐다.

마을 주민들은 이런 상태로 6년째 발이 묶여 있다. 그러면서 마을 내부에서조차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민들 중 일부가 대명원도시개발조합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조합은 일부 주민이 주체가 돼 구성됐고, 그동안 주민을 대표해 택지 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평상시 이웃 간에 그다지 큰 소리를 낼 일이 없었던 마을이, 이제는 조합 반대 측과 지지 측으로 나뉘어 크게 동요하고 있다.

 대명원도시개발조합 건물 앞에 내걸린 현수막.
 대명원도시개발조합 건물 앞에 내걸린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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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하는 주민들, 청와대로 시위하러 올라가야 할 판

대명원은 지금 겉은 사람이 사는 듯 마는 듯 조용해 보이지만, 그 속은 분노와 불신으로 들끓고 있다. 아직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분노가 언제 어떻게 마을 사람들의 가슴을 뚫고 나올지 모른다. 마을은 그야말로 폭풍전야, 폭풍이 일기 직전의 고요한 상태를 맞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주민들은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해결해 줄 수도 없다는 데 더 절망적이다.

그렇다고 하늘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어, 마을 주민들은 이제는 "서울 건설사로, 청와대로 가서 시위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공론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일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누군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주민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신분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자신의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주민들이 맛본 소외감과 박탈감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는 그 모든 걸 불사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주민들 모두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서야 할 판이다. 상황이 꽤 절박하다.

대명원 주민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면서도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온갖 편견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자신들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이 모든 게 너무 두렵다. 벌써부터 자신들이 시위를 벌인다고 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회의적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어떻게든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것을 간곡히 바라고 있다. 평생을 한센병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온 데다, 고령에, 그 이상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마을은 이미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망가졌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이곳에 발이 묶인 채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하늘을 보고 통곡을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마을 안, 버려진 축사와 주택들.
 마을 안, 버려진 축사와 주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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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난 호소하는 건설사,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주민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현재 대명원 주택개발사업에 인허가를 내준 원주시는 물론이고, 그동안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했어야 할 시행사와 시공사들 모두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다. 당장 사업을 재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미 일정 부분 투자가 된 사업을 완전히 접을 수도 없다. 사실상 진퇴양난이다.

이 일과 관련해 원주시청의 한 담당 공무원은 "(주민제안 방식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시에서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주민들이 생계와 관련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원주시는 1999년 당시 대명원 일대를 택지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의 인구증가율에 비춰 2003년까지 200만㎡의 택지가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이 불황을 맞으면서, 지금은 더 이상 택지 개발에 나설 시공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행사인 에이원개발주식회사는 현재 부도를 맞은 풍림산업 외 다른 시공사를 물색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마땅한 시공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현재는 경영상 마을주민들을 지원할 방법이 없음을 밝혔다.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하루를 이어가기 힘든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주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자체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능한지는 알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은 사실, 지금은 누군가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관심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이다. 마을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외다.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오는 길, 다시 여전히 해결할 길이 막막한 마을의 갑갑한 현실과 마주친다. 허물어져가는 낡은 집들과 분뇨 냄새가 가시지 않은 버려진 축사들, 경제적으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고 자랑하는 나라에 아직도 이런 마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 마을이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방치돼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대명원, 오래 전에 버려진 축사들.
 대명원, 오래 전에 버려진 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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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원#대명원도시개발조합#원주#에이원개발주식회사#풍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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