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수암골

수암골과 청주 시내
 수암골과 청주 시내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수암골은 청주의 우암산 자락 경사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달동네다. 수암골이 달동네가 된 것은 6.25사변 때 청주로 밀려든 피난민들의 임시 거처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후  청주시로부터 자재와 시멘트를 지원받아 20평 내외의 판자촌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현재 수암골의 토대가 되었다. 수암골은 수동과 우암동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수암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당시 수암골은 행정구역상 수동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1988년 2월 영동과 수동 그리고 북문로 지역이 합해져 중앙동이 되었다. 그 후 수암골은 중앙동 제15통에 속하게 되었다. 중앙동 제15통 3반인 수암골에는 현재 58세대 106명이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평균연령이 60세를 넘어 과거의 생기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엉성한 맨홀
 엉성한 맨홀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수암골로 가는 길은 청주시 상당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상당로 우암오거리에서 대성로를 지나 수동로로 이어진다. 수동로는 다시 수암로와 연결되는데, 버스는 수동로까지 그리고 승용차는 수암로까지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표충사 앞에서 차를 내려 수암골의 상징인 팔봉 제빵집으로 걸어 올라간다. 좁고 경사진 길은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다.

포장도로 아래로 하수도가 지나가는지 철제 맨홀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주변의 콘크리트가 깨져 맨홀의 한쪽이 일렁거린다. 위험하다. 이 길을 올라가면 언덕 위에 2층의 팔봉 제빵집이 있고, 그 앞으로 수암로가 지나간다. 우리가 수암골이라고 부르는 곳은 수암로 56번길 일대다. 마을 동쪽으로는 우암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청주대학교가 있다.

관광명소가 된 수암골

수암골의 뻥튀기
 수암골의 뻥튀기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청주의 달동네 수암골은 이제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렇게 된 것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2010)와 <카인과 아벨>(2009)이 이곳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수암골을 찾기 시작한 건 <제빵왕 김탁구>의 인기 덕분이다. 사실 나는 <카인과 아벨>은 보지 못했고, <제빵왕 김탁구>는 본 적이 있다. <제빵왕 김탁구>에 나오는 팔봉 제빵집이 현재 수암골에 있다.

그러나 수암골에서 <제빵왕 김탁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건 팔봉 제빵집이 유일하다. 그것도 수암골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이다. 제빵집 주위에는 조그만 공원도 마련되어 있고, 작은 음악회도 열리고, 옛 정취도 재현해 놓고 있다. 아저씨가 튀밥을 튀기고, 아주머니가 설탕으로 달고나를 만든다.

70년대 교복과 교련복
 70년대 교복과 교련복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5월 12일이 마침 수암골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그래서 음악회가 열리고,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고등학생, 고학생, 장사꾼으로 분장해 흥을 돋우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검정 교복과 교련복이 우리를 과거 70년대로 돌아가게 만든다. 우리 회원 중 일부가 빵집으로 들어가 단팥빵과 곰보빵을 사가지고 나온다.

빵집은 아래에서 보면 3층이고, 위에서 보면 2층이다. 1층은 빵집이고, 2층은 커피숍이다. 2층 벽에는 '탁구도 먹고 홀딱 반한 팥빙수, 아메리카노, 냉커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곳 팔봉 제빵집에 새겨진 글 중에는 <제빵왕 김탁구>에 나오는 팔봉선생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이다."

공연하는 사람들
 공연하는 사람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팔봉 제빵집 앞 수암로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수암골이 청주의 관광명소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수암골을 관광명소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지만, 이제 사람들은 달동네의 기억, 옛 추억을 찾아 이곳에 온다. 그래서 청주시는 수암골을 청주관광의 3대축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첫째가 상당산성과 고인쇄박물관이고, 둘째가 수암골과 <제빵왕 김탁구> 전시체험관, 셋째가 성안길과 육거리 전통시장이다. 수암골은 2008년 수동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벽화마을로 알려지게 되었고, 공방과 풍물패를 만들어 삶과 예술의 접목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경제활동이 주가 되는 생활문화공동체'마실'을 만들기에 이른다.

팔봉 제빵집
 팔봉 제빵집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더욱이 2010년 12월에는 인근 내덕동 문화산업진흥재단에 <제빵왕 김탁구> 체험전시관이 생겨났다. 그곳에는 드라마 세트가 재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제빵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판타스틱 제빵쇼를 관람할 수도 있다. 그곳에 가면 가장 신나는 제빵 여행을 할 수 있고,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무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마을 전체가 갤러리가 되다

솜씨자랑 I
 솜씨자랑 I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제 우리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어 마을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그 여행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다. 그런데 그 골목길을 따라 이어지는 담장과 벽에서 우리는 재미있는 그림들을 발견한다. 2008년부터 청주 민예총 회원들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그린 풍속화들이다. 민중미술답게 사실적이고 색깔이 강렬하다.

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그림은 수암골 골목 지도다. 골목의 어느 지점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정확히 알려 준다. 그리고 다음에 만난 그림이 숨바꼭질이다. 소녀가 눈을 가리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거나 숫자를 세는 듯하다. 윤갑석씨댁 담벼락에 그려진 '솜씨자랑 I'도 재미있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그린 그림으로, 수암골의 삶과 역사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반전평화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전쟁(War)이 아닌 평화(Peace)를 외치기 때문이다.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연인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연인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옛날에 그려진 '먹보의 입속' 옆에는 추가로 여자 친구가 그려졌다. 연인들은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어떤 축대에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넣었고, 그 위로 이들이 꿈꾸는 아파트에서의 현대적인 삶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저녁 9시 이후 관람을 자제해 달라는 수암골 주민들의 부탁도 적혀 있다. 그들도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기 때문이다.

의류함에도 그림을 그려 넣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생선 한 마리, 그리고 그 위로는 꽃비가 내린다. 2009년 5월 9일 정희가 그렸다. 또 다른 벽에는 청주 민예총 필름카메라 동호회에서 제공한 수암골 사진이 걸려 있다. 전봇대와 벽을 이용한 그림도 눈에 띈다. 다른 그림이 평면적이라면, 이 전봇대 그림은 입체적이다.

이야기가 있는 벽화
 이야기가 있는 벽화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나는 이제 피아노 건반 계단을 통해 우암산로로 올라간다. 그러자 수암골과 청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보니 전혀 달동네 같지 않다. 아마 최근에 지붕개량 사업을 한 것 같다. 나는 이제 옛날 수동과 우암동의 경계를 따라 나 있는 길을 통해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이 길 옆에는 문학성이 깃든 그림들이 많다.

'꽃을 보면 내 입은 한 마리 새가 되어 향기를 퍼뜨리네.' '너를 사랑하는 것이 책을 읽는 것과 같다면 그렇게 너를 읽을 수만 있다면' '어디서건 무슨 일을 하건 좋은 날이 되세요.' 그런데 이게 영어로 적혀 있다. 'Whereever whatever have a nice day.' Whereever라는 단어는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뜻만 통하면 되지. 문학성을 얘기하기는 곤란하지만, '철수의 일기'는 정말 솔직하면서도 풍자적이다.

철수의 일기

철수의 일기
 철수의 일기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5월 15일 날씨 맑음
오늘 엄마가 나한테 무러따.
넌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복권방을 차릴 거라고 대답해따.
그러자 또 엄마가 왜냐고 무러따. 그래서 또 대답해따.
아빠가 맨날 로또 외엔 답이 엄따고 엄마한테...
그래떠니 엄마가 갑자기 꿀밤을 때려따.
엄마가 밉다.

또 한 블록을 내려오니 옛날 농구화로 만든 화분이 있다. 쉽게 말해 헌 농구화에 흙을 넣고 그곳에 꽃묘인지 식물을 심었다.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운동화 사이로 과일 주스와 맥주병도 보인다. 그 아래 블록에는 옛 향수를 자극하는 펌프 그림이 있다. 그래도 펌프 주둥이만은 배관을 이용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역시 예술은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수암골에 이야기꺼리를 더해주고, 살 만한 동네로 만든다.

운동화 화분
 운동화 화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 때문인지 수암골에는 절도 생기고 사진관도 생겼다. 이들도 이제 수암골의 작은 공동체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들이 있어 수암골이 더 풍요로워지고 다양해졌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다루려고 한다. 수암골 사람들은 또한 담장 밖의 좁은 공간을 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곳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밭에 들어가지 마유~ 담 무너져유~!"

덧붙이는 글 | 5월 12일(토)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달동네 수암골에 다녀왔다. 수암골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방송 후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곳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2회 다룰 예정이다.



태그:#청주 수암골, #<제빵왕 김탁구>, #수동, #담과 벽의 그림, #공공미술 프로젝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