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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징맞게 핀 블루베리 꽃 적과를 하던 이태형, 송순단 부부가 꽃을 따내기가 아쉬운듯 웃고 있다.
 앙징맞게 핀 블루베리 꽃 적과를 하던 이태형, 송순단 부부가 꽃을 따내기가 아쉬운듯 웃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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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서산군 운산면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609번을 따라 길게 자리 잡은 마을. 앞으로는 봉림저수지가, 뒤로는 서원산이 마을의 정기를 품어 안은 곳, 봉산면 봉림리.

이웃끼리의 화목함을 보여주듯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초록색 농원 표지판들 사이로 유난히 눈길을 끄는 이름이 있다.

'게으름뱅이 농장.'

농장주 이태형(47), 송순단(46) 부부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농사를 짓는 곳'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지난 17일 게으름뱅이 농장에 들러 이태형, 송순단 부부를 만났다.

2000년, IMF 위기를 겪으며 사업을 접어야 했던 부부는 딱 1년만 쉬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그러나 벌써 12년째 머물며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이제 '귀농인'이라는 이름도 어색한, '봉림리 사람'이다.

임야를 개간해 만든 8000여 평의 과원에는 체리, 블루베리, 사과, 자두 네 종류의 과실수와 함께 수백 종류의 풀과 꽃들이 자라고 있다. 제초제를 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다른 곳에서 옮겨다 심은 야생화들까지 더해졌다.

이 농장에서는 사과나무 유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 사과 스스로 유인해 커나갈 수 있도록 기다린다. 블루베리 농사의 기본처럼 돼 있는 피트모스(외국산 퇴비)도 쓰지 않는다. 외국과실수가 한국에 정착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땅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무의 생장을 위해 풀을 깎아주긴 하지만, 비가 한 번 내리거나 다른 밭에 신경을 쓰는 사이 또 금새 자라버리기 때문에 아직 묘목이 크지 않은 밭을 얼핏보면 풀밭으로 보일 정도다.

"제가 원래 게을러요. 게으름뱅이 농장이란 이름도 사실은 그래서 지었다니까. 허허"

체험객들이 왔을 때 맛있는 점심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과수원 고랑에 배추와 고추 같은 채소를 심어 가꾸고, 과실수의 종류도 봄 체리부터, 여름 블루베리, 가을 자두와 사과까지 순환주기를 맞춰 1년 열두 달 쉴새없이 일하면서 게으르다니...

게으름뱅이 농장 교육실에 붙어 있는 문패.
 게으름뱅이 농장 교육실에 붙어 있는 문패.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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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틈만 나면 교육에 참여해 1년 동안 부부가 받는 수료증을 합치면 10개가 넘을 정도다.

"농촌에 와 살아보니 공부할 게 너무 많아요. 도시에서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거예요"

부부의 공부는 고스란히 교육농장을 찾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처음에는 '하늘, 땅, 퍼런것들' 이렇게만 구분할 줄 알던 부인 송씨가 교육을 통해 얻게된 야생화 지식은 그대로 도시사람들의 것이 된다. 애기똥풀, 망초, 냉이, 까마중, 꽈리, 비름나물, 뽀리뱅이, 잔대….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식물의 한 살이'를 직접 보고 배우는 한편 야생의 식물들 중에 식용나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느끼게 된다. 먹거리 체험으로도 이어진다.

"유치원생들은 대개 도시락을 싸오지만, 초등학생들은 밥만 지어주면 이곳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캔 나물을 넣어 비빔밥을 해먹곤 합니다. 집에서 편식하는 아이들도 너무 잘 먹어요."

대부분 수확철에 체험객이 몰리기 때문에 과일을 직접 따 먹고 부모님께 선물하기는 기본 프로그램이다. 유치원생은 종이로 과일가방 만들기, 과일의 촉감 알기 등을,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은 블루베리 떡케이크 만들기 같은 난이도 높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교육농장은 농가의 안정적 수익과 도시민의 건강한 먹거리 공급이라는 성과로도 이어진다.

아이들의 농촌 교육체험은 부모들에게 전해지고, 친환경인증을 받은 과실수들을 맛본 부모들의 재방문이나 구매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다. 부모들 스스로 홍보대사가 돼 다른 소비자들과의 인연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덕분에 게으름뱅이 농장에서 나는 모든 수확물들은 전량 직거래로 판매된다.

게으름뱅이 농장의 주인 부부가 사는 집 마당에 들꽃들이 어여쁘게 피어있는 모습.
 게으름뱅이 농장의 주인 부부가 사는 집 마당에 들꽃들이 어여쁘게 피어있는 모습.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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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농장에는 블루베리 꽃이 하얀색의 아주 작은 종 모양으로 앙징맞게 피어있다. 가을자두는 아이 손가락 한마디도 안되는 크기에 진초록 빛깔로 단단하게 여물어 간다. 게으름뱅이 농장의 부지런쟁이 부부는 열매 솎기에 여념이 없다.

덧붙이는 글 | 게으름뱅이농장 프로그램 참여 신청은 041-337-0020로 하면 된다. 블로그 주소 blog.naver.com/baram0020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체험농장, #교육농장, #게으름뱅이농장,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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