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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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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오랜만에 문학평론가의 자리로 돌아와 18년 만에 평론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문학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는 부제의 <불확실 시대의 문학>이다. 임 소장은 이번에 출간한 평론집을 통해 문학이 위기일 뿐만 아니라 비평 또한 위기라고 지적하면서 그동안 작가와 비평가의 외면을 받았던 '거대담론'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임헌영 소장을 만나 18년 만의 출간에 대한 소회와 더불어 위기에 빠진 문학과 비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임 소장은 문학 외에도 현실 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임 소장은 "MB 정권이 역대 최악의 정권"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정권 아래라면 신오적(新五賊)이 나와도 수백 편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그 이유로 거대담론의 실종을 들었다. 임 소장은 문학의 위기와 더불어 비평 또한 위기라고 지적하면서 "비평에서 비판의 기능이 사라지고 평론의 기능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다 보면 거대담론으로서의 문학은 도서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문학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문학이 위기라고 본다."

또한 임 소장은 4·11 총선 결과와 관련해 "민주통합당이 실패라고 하는데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우리나라가 현재 양심불량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임 소장은 여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38%를 '양심불량층"이라면서 "이들은 아무리 나쁜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보수 정권을 지지하고, 보수 정권의 어떤 범죄도 용납하며, 반대 세력이 어떤 반격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집단 광기에 미친 지도자 뽑을 수 있다"

다음은 임헌영 소장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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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 만에 책을 내셨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그동안 너무 사회쟁점에만 치중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10년 정도 몸을 담고 있었는데 민족문제연구소 하면 저를 떠올리고 저 하면 민족문제연구소를 떠올릴 정도였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권이 해체되면서 한동안 책을 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당분간 책을 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사회활동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본령이 문학평론가이기 때문에 문학 관련 글은 엄청나게 썼다.

그 글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70을 넘기면서 이러다 잘못하면 내 본령인 평론을 전혀  못하고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해 서둘러 책을 내게 되었다."

- 이번에 낸 평론집 <불확실시대의 문학>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나?
"거대담론이다. 우리 역사란 무엇이냐, 한국 사회란 어떤 거냐, 한국사회의 쟁점은 무엇이냐, 우리 민족의 운명은 어떻게 되느냐, 분단의 문제, 민주화의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들을 묶었다. 우리 역사나 사회, 민족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을 문학비평을 빌려 다뤘다."

- 현재를 '불확실의 시대'로 정의했다. 어떤 의미인가?
"마르크스를 비롯한 역사학자들은 인류 자유를 위해서 역사가 발전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역사가 발전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역사가 발전했다면서 역사를 낙관적으로 보고 정의가 이긴다고 봤다. 하지만 21세기 이후의 역사는 그게 맞지 않는 것 같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장 민주주의가 잘 된다는 유럽조차도 국민이 히틀러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국민 전체가 집단 광기에 사로잡혀 미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미국도 그럴 수 있다. 이랬을 경우 세계가 굉장히 위험해지는 거다. 그런 취지에서 불확실의 시대라고 했다. 이름을 붙여놓고 보니까 모든 게 다 불확실하다."

- 불확실한 시대에 덧붙여 '문학의 위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불확실하기 때문에 문학이 뭐라도 해야 한다. 각 분야마다 사람들이 자기 일, 자기 이해관계, 자기 이익을 챙기기 바쁘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대로 자기 표만 얻으려고 하고, 경제인은 자기 이익만 얻으려고 하고, 학자들은 자기 학설만 주장하고, 보통 사람들은 자기 문제만 생각한다. 이렇게 분화된 사회에서 그래도 종합적으로 자기의 이해가 아닌 인류의 문제, 문화의 문제 같은 대의적인 것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아직은 문학인밖에 없다.

문학인 역시 자기 명성을 얻으려고 하고 자기 책을 많이 팔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업인들에 비해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역사와 문화와 사회를 보면서 뭔가 인류 발전에 기여하려 해왔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문학의 역할이 더 중요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문학은 오히려 그런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학을 좌우하는 건 중산층 여자들이다. 그들의 취향에 의해서 베스트셀러가 결정된다. 중산층이 좋아하는 엽기적이면서 충격적인 작품들이 마치 주류 문학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거대담론의 문학이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문학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문학이 위기라고 보는 것이다."

- 문학이 위기라면 비평 역시 마찬가지로 위기가 아닌지?
"비평 역시 미시담론만 다루다 보니 거대담론을 잃어버렸다. 매월 위대한 걸작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학상이 많아졌고 상금도 많다. 그런 상이 매월 몇 개씩 발표되니 단군 이래 최고의 문화 르네상스가 형성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비평가들이 미시담론의 시중을 드는, 미시담론의 보조역할밖에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비평의 위기다.

위기라고 해서 문학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반드시 거시적인 것만이 문학이 아니고 미시도 문학이다. 하지만 거시담론을 다루는 문학이 전체의 2~3할은 있어야 하는데, 거시담론을 해야 하는 작가조차도 거시담론을 안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 전체에서 거시담론을 2~3할, 중시담론을 2~3할 정도 하고 나머지 5~6할을 미시담론이 해야 하는데 거시담론이 문단 전체에서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 임 소장은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민주화 사회가 되어서 억압도 없고 창작 자유도 있다고 여기고 축배를 들었고, 독자들이 거기에 익숙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MB 정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최악의 정치 하고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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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임 소장은 상당히 신랄하게 비판을 가했다. 그는 "MB 정권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최악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리적인 지수나 행정효율적인 지수나 민족사적인 지수나 역사적인 관점이나 민주주의 발전사로 보나, 남북문제로 보나, 세계 인류평화 기여도로 보나, 문화정책적인 면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볼 때 최악의 정권이다."

임 소장은 이런 정권 아래라면 신오적(新五賊)이 나와도 수백 편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문학의 위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임 소장은" 70년대 정권에서는 김지하가, 80년대에는 김남주가 나왔으며, 90년대에는 박노해를 비롯한 노동자 시인이 나왔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아무도 없다"면서 "소설 역시 조정래와 황석영 이후에 거대담론을 하는 작가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지난 4·11 총선에 대해서 "민주통합당이 실패하고 하는데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우리나라가 현재 양심불량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임 소장은 여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38%를 '양심불량층'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들에게는 집권정당이 올바른 세력인지, 역사를 바로 보는지, 역사를 퇴보시키는지, 민주주의인지 독재인지, 통일로 나아가는지 등의 가치기준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어떤 논리로도 이들은 설득이 불가능한 세대"라고 지적했다. 이런 양심불량층이 38%가 되는 나라는 양심불량국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임 소장의 풀이였다.

"아무리 민주당이 잘못했어도 90년대와 같은 분위기였다면 여당이 결코 표를 얻을 수 없어야 한다. 그게 양심인 거다. 어떻게 그걸(여당)을 지지하는가? 그 부정을? 양심이 있다면 그런 당 소속의 국민대표를 뽑을 수 없는데 뽑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양심불량층이 늘어난 것에 대해 임 소장은 "8·15 이후 지금까지 60년이 지났지만 민주주의를 고작 11년밖에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19 후에 1년,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10년, 우리가 경험한 민주주의는 고작 11년이다. 나머지는 계속 군부독재, 민간독재나 그 후계자들인 불량정권이 집권하면서 계속 양심불량층을 늘려왔다. 이들은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보수 정권을 지지하고,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보수 정권을 용납하고, 반대세력이 어떤 반격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무섭지 않나?"

이런 양심불량층의 양산으로 젊은이들의 양심이 마비되어 비판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 임 소장의 주장이다. 이런 현실에서 문학이 각성제 노릇을 해야 한다고 임 소장은 힘주어 말했다.

"문학이 그런 역할을 하는 시대가 지났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럼 문학이 무엇을 하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문학이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해왔고, 인류가 있는 한 문학만이 그걸 할 수 있다. 다른 대체 세력이 없다. 문학인이 해야 한다. 거대담론을 잃어버리는 동안 우리 사회가 타락하고 부패해왔다. 그래서 제가 거대담론을 꺼내면서 문학평론집을 낸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 청산되지 않고 통일 된다면 살벌한 역사 될 것"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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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 시대에 문학평론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불확실 시대의 문학>에 문학평론의 기능을 다섯 가지로 정의 내렸다. 그 가운데 가장 앞선 기능은 현재의 문학작품을 분석·평가해서 독자들에게 정확히 이해시키는 것이다. 어떤 작품이 나왔으며, 이 작품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문학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역사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고 역사에 남을 것인지 등을 평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평론가들은 그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 뭐든 나오면 그게 최고의 걸작이고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처럼 호평을 한다. 비평은 비판과 평론인데 비판의 기능이 없어졌다."

- 지금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하는 평론가가 있다면?
"누구를 거론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몇몇 양심적인 평론가가 그런 역할을 하는데 그것 갖고는 안 된다. 더 많아져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평론가의 역할과 관련해서 임 소장은 "작가들이 거대담론을 다루면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는 선입관이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며 조정래 작가의 말을 예로 들어 지적했다.

"조정래가 한 말이 있다. 작가들 자신들이 독자들이 원하지 않는 소설을 써놓고 안 팔린다고 욕을 한다는 것이다. 거대담론을 필요로 하는 국민들이, 거대담론을 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훨씬 많다. 지금 정치적으로 답답한 시대라 독자들은, 국민들은 시를 보고 속을 풀고 싶은데 추천할 시가 없다. 추천할 소설도 없다. 그런 게 나오면 누가 안 보겠나? 다 볼 사람이 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작가나 시인들이 해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계속해서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시인론과 소설론을 비롯한 작품론을 내고, 이후에 필화사건을 다룬 글을 연재하고 책으로 낼 생각이다. 아직 어디에 연재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전에도 연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또 금년이 유신 40년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유신이 뭔지, 박정희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마치 그때 아주 잘살았던 것처럼 추억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데 그 환상을 깨기 위해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유신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올 하반기부터 유신 때의 금지곡, 금서 등을 발표하고 전시회와 강연회, 대담을 할 예정이다. 유신 때 어땠는지 젊은 세대들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문학평론가로서 당시의 금서, 검열에 걸렸던 문학에 대한 글을 써서 연재할 계획이다."

임 소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친일파와 '레드 콤플렉스' 청산이다.

"친일파와 레드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않고 통일을 외칠 자격이 없다. 레드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고 통일이 된다면 살벌한 역사가 될 것이다. 이걸 해결해야 한다."


태그:#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문학, #거대담론, #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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