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에서 국도 17호선을 타고 구례 방면으로 가다 보면 괴목삼거리가 나온다. 괴목삼거리에서 복숭아로 유명한 월등 방향으로 500m만 가면 동네 가운데 오래된 기와집이 있다. 이곳이 바로 수련산방(樹蓮山房).
수련산방을 표시할 때 대부분 한자를 '물위에 연꽃'이 떠 있다는 의미에서 '수련(水蓮)으로 쓴다. 하지만 이집에는 물 수(水)를 쓰지 않고 나무 수(樹)로 썼다. 그만큼 집 안에 나무가 많고 뒷산에 나무가 무성하다는 의미다.
이런 곳에 맛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농가들 속에 있는 오래된 기와집. 주인인 장경진(67세)씨는 "집 역사가 170년 정도 됩니다"라며 전통 있는 집안임을 자랑한다.
안방으로 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곳에는 찻잔과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문설주 위에 붙어있는 글귀가 눈을 끈다. '돌틈 뚫은 뿌리'. 주인아주머니한테 그게 무슨 뜻인가를 물었더니, "적은 힘이지만 차 마시는 적은 힘으로도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강인함을 의미한다"고 했다.
사진을 찍고 방 안에 들어가자 밥상 위에 놓인 연밥과 반찬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갈한 음식과 맛깔스런 모습에 일행이 탄성을 지른다.
김치, 녹두전, 칠면조, 게, 땅콩, 고사리, 숙주나물, 도라지, 당근, 오이, 양태, 오리훈제, 연잎전, 목이버섯, 땅두릅 등 22가지나 된다. 연잎전에는 부추, 양파, 새우가 들어가 있고, 목이버섯에는 들깨가루, 마늘, 육수가 들어 입맛을 돋운다. 간장과 물엿으로 만든 땅콩견과류는 어른과 아이 상관없이 달짝지근하고 땅콩 특유의 맛이 묻어난다.
내 앞에 오랜만에 보는 조그만 반찬이 보인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어렸을 적, 값이 싸 시골에 사는 어머니가 자주 해주셨던 음식이다. 맛도 없었고 껍질이 씹혀 어른이 되어서는 아예 손도 안 대는 찔럭게볶음이다. 상위에 놓인 모든 음식이 감칠맛이 나니 시도나 해보자며 먹었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살에 양념이 적당히 들어가 맛있다.
수련산방의 대표 음식인 연밥은 연잎에 싸여 고이 모셔져 있다고나 할까. 흑미에 기장과 콩, 은행, 대추, 연근까지 들어가 있다. 한 겹 한 겹 연잎을 벗기니 반짝반짝 빛나는 쌀에 찰기가 있어 입안에 침이 돋는다.
한사코 이름을 쓰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에게 언제부터 식당을 시작하고, 연밥을 시작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그녀는 순천에서 9년간 '장독대'라는 식당을 경영한 경험이 있다.
"남편이 은퇴하고 어머니께서 혼자 계서 모시러 본가로 들어왔어요. 생활하면서 막연히 놀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를 해보자며 시작했어요. 연밥은 무안의 연잎축제에 가서 힌트를 얻었어요. 식당 경영 철학이요? 뭐 철학이랄 것까지 있나요? 다만 내가 가고 싶은 곳, 마음과 몸이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오감이 즐거운 식당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손님이 맛있게 드시라고 기도하면서 음식을 만들어요."식당 뒤에는 찻집이 있다. 따로 만든 찻집이 아닌 행랑채가 찻집이다. 옛날 문간을 다듬어 만든 찻상과 꽹과리를 가운데 구멍을 뚫어 시계를 만든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방 안에 우물물이 연결돼 차를 끓이는 것도 인상적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를 물었다. 그러면 그렇지. 주인인 장경진(67)씨는 순천에서 조경 사업을 하던 경력자다. 마당 가운데 판 조그만 연못하며 600가지가 넘는 조경수가 손님들의 마음을 끌었는가 보다. 2년밖에 안 됐는데 KBS <VJ특공대>에 나온 후로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온다는 안주인.
온갖 정성을 들여 인테리어와 음식을 한다는 아주머니는 "건강해서 오래 동안 식당을 하고 호주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남한테 물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젊은 사람들의 마인드를 접목하고 싶다는 게 이유. 호주에서 온 관광객은 "음식이 너무 맛있고 좋았다"고 평가했다.
연잎밥(1만4000원)과 산채비빔밥(9000원) 두 가지밖에 안 하는 수련산방. 산채비빔밥도 반찬이 20가지나 되어 손님들이 끊임없이 온다. 음식에서 작은 행복을 느낀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