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풀, 무서운 풀 앞에 선 농부의 심정이 비장해진다.
▲ 풀 앞에 선 농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풀, 무서운 풀 앞에 선 농부의 심정이 비장해진다.
ⓒ 이종락

관련사진보기


풀이 자라납니다.
불과 얼마 전 땅바닥 나지막이 붙어있어
잔디처럼 깔끔했던 풀,

몇 번의 비와 햇살, 햇볕...
풀은 차츰 녹색의 빛을 띄우면서
대지의 제왕답게 흙냄새 나는 곳 어디라도 점령합니다.

이제 온 땅은 풀의 자리,
농부들은 무서운 풀을 앞에 놓고 비장한 각오를 다집니다.
순진한 농부들은 제초제를 '풀약'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부르며
풀을 제압합니다. 완전히 죽입니다.
며칠 뒤 시퍼렇던 풀들은 스러져가는 가을처럼 누렇게 누워버립니다.

미련스럽다는 말을 뒤로 흘리고 고집스럽게 낫을 쓰는 농부도 있습니다.
죽어도 제초제만은 칠 수 없다고... 낫으로 베고 호미로 뽑고, 하다하다 힘들면
예초기를 돌려 풀을 벱니다.

낫들고 풀 베는데 어디선가 '칙칙' 소리와 함께 바람을 타고 제초제 냄새가 날려 온다.
▲ 제초제와 농부 낫들고 풀 베는데 어디선가 '칙칙' 소리와 함께 바람을 타고 제초제 냄새가 날려 온다.
ⓒ 이종락

관련사진보기


어디선가 바람결에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불어 옵니다.
이웃 할배가 너무도 편한 모습으로 고추밭에 제초제를 뿌려줍니다.
풀약이 아니라 제초제라고, 너무 독한 약이라 땅이 죽어버린다고...
제초제의 편리함에 너무도 익숙해진 분들에게,
대신 풀을 매줄 수도 없기에 뭐라 말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자리를 피하거나 마스크로 코를 가리고 하던 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풀의 신음과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요란한 예초기 엔진소리와 함께 풀들은 산산이 찢겨져 널려집니다.
제초제의 위력 앞에 풀들은 누렇게 죽어갑니다.

스러져 버린 풀 속에는 우리가 먹을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쑥, 민들레, 질경이, 냉이, 명아주, 고들빼기, 쇠비름...
겨우내 땅속의 기운을 흠뻑 품고 세상에 나온 풀들은 이렇게 대부분
사라집니다.

낫은 농부의 친구, 풀도 농부의 친구(?), 낫과 풀이 어우러지고 있다.
▲ 낫과 풀 낫은 농부의 친구, 풀도 농부의 친구(?), 낫과 풀이 어우러지고 있다.
ⓒ 이종락

관련사진보기


먹고 살기 위해, 더 많은 소출을 위해,
풀과 함께 살 수없는 농부의 마음이 해마다 이맘때부터 아파옵니다.
스스로 수그러지는 가을까지...


태그:#풀, #농부, #제초제, #낫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