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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모은 비닐가방. 양손에 들고 엄니께로 가끔 갑니다.
 폐지 모은 비닐가방. 양손에 들고 엄니께로 가끔 갑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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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 12시 경 저는 무거운 폐지를 모은 비닐 가방을 양손에 들고 엄니께 갔습니다. 엄니는 70이 되어가는 나이지만 지금도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파견업체를 통해 이곳저곳 아파트 청소 일을 다니고 있습니다. 또, 놀면 뭐하냐면서 쉬엄쉬엄 폐지를 모아 팔기도 합니다. 저도 길가다 폐지가 있으면 모아 두었다가 엄니께 갖다 드리곤 합니다. 오늘 마침 쉬는 날이라 그동안 모아 놓은 폐지를 들고 엄니를 뵈러 간 것입니다.

"이제 이 엄마는 늙어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만 너희들이라도 잘 살아야 할텐데..."

엄니는 자식들이 늘 안쓰럽나 봅니다. 둘째 남동생이 버스 운전을 하는데 어제밤 꿈에 둘째 아들이 보이더라면서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일어나 시간을 보니 새벽 3시더라고. 꿈을 꿨는데 창호가 큰 소나무 아래 서 있어서 불렀는데 아무 대답도 않고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더라고, 머리엔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말이야.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엄니는 둘째아들 걱정에 한숨을 푹푹쉬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대신 해주고 싶었는데 집에서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아서 엄니 전화를 달라 했습니다. 저는 엄니 전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통화 가능한지 알아 보았습니다.

버스 운전 중엔 통화가 안 될 것이니 피해야 합니다. 통화가 가능하다 하여 엄니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엄니는 혹시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 폐가 될지 몰라서 잘 하지 않습니다. 동생은 무뚝뚝한 성미라서 엄니를 걱정시킬까봐 또 전화를 잘하지 않습니다. 맏아들인 제가 나서서 중간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동생은 작년 어느날 저녁 무렵 버스를 몰다가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날 이후 머리에 받은 충격 때문인지 머릿속에 작은 알갱이 같은 흰 혹이 생겨 한 달에 한두 차례 진찰을 받고 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안 엄니는 혹시나 아들이 잘못될까 걱정을 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파픈 손가락 없다면서.

동생이랑 통화후 안심이 되는지 다시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엄니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제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습니다.

"창기가 두 살 무렵이었어. 이제 막 뒤집고 할 때 였지. 엄마는 그때 어느 집 밭 일을 하고 있었어. 저만치 떨어진 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창기가 왕 하고 우는거야. 달려가보니 글쎄 불알밑에 불개미가 소복하게 우글거리고 있고, 입 주변이랑 온 몸에 불개미가 붙어서 야단인거여. 그 불개미 집을 뒤져 하얗게 생긴 알을 주워 먹고 있더라고."

엄니는 놀라서 얼렁 머리에 쓰고 있던 천으로 불개미를 털어 주었다고 합니다. 엄니는 밭에 일하러 가면서 저를 밭 옆에 뉘어 놨는데 그곳에 불개미 집이 있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거 같습니다. 엄니는 이어 이번엔 7살 때 이야기를 했습니다.

"창기 니가 7살 되었을거야. 시골 집을 얻어 살았는데 화장실이 깊고 컸잖아. 여름만 되면 구더기가 밖으로 뿔뿔 기어나왔지. 한 날 창기가 뭔가를 한 주먹 들고 와 엄마에게 내밀었어. 조그만 주먹 안에서 구더기들이 뿔뿔 기어나오더라고. 바지 주머니에도 잔뜩 주워 넣었지 뭐야. "엄마 고기 구워줘" 하면서 주는데 기겁 하겠더라고. 아이고, 창기야 빨리 갔다 버려라 하면서 등을 떠밀었지. 그런 적도 있었어 니가... 그런데 이제 나이가 벌써 50이 다되어 가는구나.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어."

엄니는 저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때 엄니 말고 제가 잘 따랐다는 저보다 두 살 위의 경희라는 누나와 남동생이 옆에 있었는데 "창기야 그거 더러워 빨리 버려" "형아야 그거 더러운거야 버려" 라고 했다 합니다. 불개미 알을 쌀밥 알갱이로 알고 구더기를 고기로 알았나 봅니다. 저는 아무 기억이 없습니다. 50이 다 된 나이에 어린시절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 입니다.


태그:#옛이야기, #엄니, #울산,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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