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유치되어 공장이 늘어나도 지역민들의 삶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석유, 석탄 등 화석 연료의 고갈로 인해 3차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은 결코 남의 말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삶의 질'이나 '슬로라이프', '로컬푸드' 등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졌다. 물론 앞서 '귀농'이니 하는 말들도 있었다.
관이 서서히 이런 말들을 외치기 한참 전부터 한 개인이 이런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는 곳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북 정읍시 영원면 장재리에 자리한 '송참봉 조선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1박 2일>의 마지막 촬영지로 알려져 이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연휴를 맞아 아이의 직업체험을 겸해서 이곳에 가기로 했다.
부안IC에서 빠져나온 얼마 후 작은 길로 들어서서 10킬로미터쯤 가자 더 작은 시골길로 이 마을의 이정표가 보였다. 모내기가 한참이라 모판이 놓여있는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자 '송참봉 조선마을'의 주차장에 들어섰다.
'송참봉 조선동네 조부모 생활 식숙동식지향'이라는 글자가 쓰인 간판옆으로 난 사잇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마을이 시작됐다. 연휴의 중간이라 마을은 사람들로 붐볐다. 정자에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 주막에 앉아서 술을 한잔하는 사람, 방안에서 점심을 하는 사람, 투호놀이를 하는 사람 등 모두들 시골 마을에서 노는 풍경으로 한적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초가집으로 이뤄진 이 마을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이 마을의 기획자이자 운영자인 송기중 선생을 만나서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천명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송선생은 초로인 64세의 나이였다. 이 마을을 시작한 것은 4년 전이고, 3년 반쯤 되던 때부터 방문객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은 7살적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 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지냈다. 어릴적부터 가끔 '여산 송씨'인 집안의 시제를 위해 시골에 내려왔는데, 십수 년 전부터 이곳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옛 마을을 만들자는 구상을 했어요. 그것도 백성들이 가장 힘들었던 1894년을 생각했습니다. 이 동네에서 동학혁명이 일어나던 해죠. 우리나라에 민속마을은 많지만 서민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 곳은 못봤어요. 그래서 아예 서민의 것으로 살아 있는 민속마을을 꾸미자는 생각을 해 이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송기중)실제로 20여 동으로 된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오밀조밀한 건물들은 한 동네로서 손색이 없었다. 살구나무가 있는 살구나무집을 비롯한 건물들은 가족 단위나 단체별로 숙박을 할 수 있고, 주막은 단체 식사와 숙박을 할 수 있었다. 장작으로 불을 때는 전통한옥에서는 계절에 상관 없이 시골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큰 놀이터의 옆으로 조금 올라가니 '월송서당'이라는 작은 집도 있었다. 실제로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은 아니지만 송기중 선생은 매주 일요일 오전 이곳에서 촌수나 예절 등 옛것을 손수 가르친다고 한다.
"사실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면 집안끼리도 텔레비전이나 보다가 각기 흩어지는 모습이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좀더 옛 모습을 구현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처음에는 화장실 등도 모두 전통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삶과 너무 멀어서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자, 기본적인 위생시설 등은 현대인의 삶에 맞게 바꾸었다. 가끔씩 골치를 썩이던 화재문제도 해결하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이 됐다.
"사실 처음에는 어른들이 재미로 오지만 하루만 지나면 아이들이 더 좋아합니다. 특별한 놀이가 없어도 아이들은 이 시골의 정취를 그대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이곳과 하나가 되면서 떠나기 싫어하더군요."
사실 흙 한 줌 밟기 힘든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전통 속에 녹아 있는 이 마을은 넉넉한 시골을 체험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또한 한 개인의 힘으로 관이 생각한 '슬로 라이프'의 모습을 이미 구현한 만큼 배울 점도 많았다. 이제 현역을 떠나야 하는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도시는 결코 안락한 공간이 아니다. 반면에 작은 채전밭을 일구면 기본적인 먹거리를 해결하는 최소함의 삶을 지향할 수 있는 시골은 어찌보면 행복한 낙원이 아닐까하는 성급한 생각도 했다.
동학혁명의 횟불을 든 황토현과 내소사, 개암사 등 명찰 인근에 자리한 '송참봉 조선동네'는 그런 점에서 한번 들러볼 만한 흥미로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