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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래봤자 아저씨'들의 이야기. 기획시리즈 '오빠라고 불러줘'는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고픈 '마음만은 오빠'들의 고군분투를 담습니다. [편집자말]
중학교 2학년 딸 하영이 그림, '아빠가 쓰고 딸이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딸 하영이 그림, '아빠가 쓰고 딸이 그리고'
ⓒ 이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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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오고 헐렁한 바지 입으면 아저씨고…."
"결혼 아직 안한 것 같은 애들은 오빠, 결혼한 것 같고 나이 들어 보이면 아저씨 아닌가요?"
"외모가 중요하지요, 배 나오면 안 되고, 결혼하지 않아 보여야 하고. 근데 기분이 좋아야 해요, 아무리 핸섬해도 제 기분이 나쁘면 무조건 아저씨지요."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보니 오빠와 아저씨의 차이가 입방아에 올랐다. 맨 처음 대답은 50대 초반, 두 번째는 50대 후반, 세 번째는 30대 후반의 여성이 한 것이다. 이들의 신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밝히지 않는다. 나의 지인들로 해두자.

듣고 보니 내가 여태껏 '오빠'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상대로 이놈의 '배' 때문이다. 세 명 중에 두 명씩이나 배를 거론한 것을 보니 분명하다.

내 몸무게는 무척 오만한 편이다. 10년 넘게 80kg 밑으로 거의 떨어져본 적이 없다. 반면, 내 키는 참으로 겸손하다. 몸이 한껏 늘어난 이른 아침에 재면 172cm(반올림해서)고, 중력의 법칙에 따라 몸이 눌려 있는 저녁에 재면 가까스로 171cm라고 박박 우길 수 있는 정도다.

눈치 챘겠지만 이 정도 신체 조건이면 당연히 배가 어느 정도 나오게 돼 있다. 그 어느 정도가 얼만큼인지 궁금하다고? 음~ 화장실에 갔을 때 마땅히 보여야 할 중요한 것(?)이 배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 허망함을 느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목욕탕에 가서 늘어진 뱃살을 보면 허탈해지는 수준이다. 흔히 이런 배를 '배둘레햄'이라고 한다.

'김경호 머리' 본 어머니 "머리 깎을 돈도 없어? 내가 줄게"

마흔이 넘은 지금은 마음을 어느 정도 비웠지만 서른 고개 중턱을 넘어갈 때까지도 난 이른바 '오빠'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 간지가 좌르르 흐르는 '오빠'가 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도 있다.

아저씨가 아닌 오빠로 남기 위해 살을 뺀 게 아니라 난 엉뚱하게도 머리를 길렀다. 1990년대 후반, 내 나이 '서른 즈음에'. 그때는 한창 가수 김경호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무대에 오르면 김경호보다 열 살 많은 아줌마들까지 "오빠, 오빠~"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머리만 기르면 나랑 나이도 비슷한 김경호처럼 오빠가 될 수 있으리라 상상한 것이다.

가수 김경호. 이 머리를 하면 '오빠'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가수 김경호. 이 머리를 하면 '오빠'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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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빼지 않고 머리를 기른 이유는 그때만 해도 삐져나오는 뱃살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키와 몸무게는 지금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나름 운동으로 단련된 균형 잡힌 몸인지라, 호흡 조절만 잘하면 뱃살을 감쪽같이 감출 수 있었다.

'운동', '단련' 이런 말할 때마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인데 어째서 몸무게가 그 모양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실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내 몸은 정말 연구 대상이다. 운동도 좋아하고 그리 많이 먹는 편도 아닌데 어째서 몸무게는 항상 80kg을 웃도는지를(그리 많이 먹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내 주장일 뿐이다. 이 주장에 아내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머리를 기르기 위해서 굉장한 각오가 필요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30대 남자가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그 나이 또래 여성이 스포츠형 머리를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머리카락이 어깨 근처까지 내려왔을 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은 "요즘 무슨 일 있어?"였다. 나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하던 말이다. 하던 일 때려치우고 혹시 집에서 노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그 다음에 자주 듣던 말은 "혹시 결혼은 하셨어요?"라는 말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주로 묻던 말이다. 젊어 보여서 그러는 게 아니다. 결혼을 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언니' 한마디에 아내의 비웃음... 곤두박질친 '오빠의 꿈'

그래도 밖에서 듣던 말은 얌전한 편이었다. 집안에서는 훨씬 더 심한 말을 들어야 했다.

"자네 같은 머리 하고 다니는 사람을 옛날에는 모두 반란군이라고 불렀네, 반란군 알지? 아, 빨치산 말일세."

장모님이 명절날 한 말이다. 

"얘, 아배야, 너 그렇게 힘드니? 머리 깎을 돈도 없어? 내일 읍내 가자. 내가 돈 내줄게."

이 말은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한 말이다.

"얘, 너처럼 머리 크고 목 짧은 사람은 단정한 게 나아…."

나보다 아홉 살 많은 친누나가 한 말이다.

사실 가족들에게 이보다 더 모진 말도 들었지만 난 꿋꿋하게 버텼다. 조금만 더 길러서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으면 덥수룩한 머리가 가수 김경호처럼 찰랑거리는 머리로 바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생면부지의 여인에게 충격적인 한마디를 듣게 된다.

"언니…, 언니…."

이게 설마 나를 부르는 소리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연히 뒤를 돌아볼 이유도 없었다. 누군가 등을 쿡 찌르는 느낌이 들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화장을 진하게 한 40대 여인이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 여인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아~ 죄송해요, 제가 잘못 봤네요" 하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제서야 이 여인이 그토록 애타게(?) 부른 '언니' 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여인은 내 뒷모습을 보고 나를 '오빠'도, '아저씨'도 아닌 뚱뚱한 '언니(아줌마)'로 착각한 것이다. 퇴근하고 아내가 운영하는 꽃집에 들렀다가 당한 일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내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내의 웃음이 한여름 뙤약볕처럼 따갑게 느껴졌다.

아내의 웃음을 피해 난 곧장 미용실로 달려갔다. 미용실 '언니(아줌마)'에게 "스포츠로 잘라주세요, 아주 짧게요"라고 말했다. 미용실 언니는 두말 없이 내 머리카락을 이발기로 밀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내 긴 머리카락과 함께 '오빠의 꿈'도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살과의 전쟁... 운동했더니 밥맛만 좋아지고

왼쪽 20대 초반, 오른쪽 30대 중반 내 모습...20대 초반 몸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왼쪽 20대 초반, 오른쪽 30대 중반 내 모습...20대 초반 몸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지만...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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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도 '오빠'가 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살을 빼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머리를 아무리 길러도 펑퍼짐하고 둥글넓적한 몸으로는 가수 김경호 같은 오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과만 말하겠다. 수년 동안 노력했지만 80kg 밑으로 떨어진 것은 딱 한 번뿐이다. 생으로 굶어 보기도 하고 몸에 무리가 올 만큼 심한 운동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자전거에 꽂혀서 밤낮없이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던 시절에 딱 한 번 78kg 몸무게를 한 달간 유지했을 뿐이다.

왜 고작 한 달이냐고? 나도 그게 궁금하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 운동을 과하게 한 탓에 밥맛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상상할 뿐이다. 정말 저주스런 식욕이다. 이런 이유로 난 결국 간지가 좌르르 흐르는 '오빠'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냐고? 아니다. 난 지금도 '오빠'가 되기 위해, '나는 오빠다'라고 외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불룩 튀어나온 배를 집어넣으려고 살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요즘 내가 오빠가 되기 위해 하는 노력은 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팔팔한 20대 아이들처럼 부지런히 뛰는 것이다. 오빠는 청춘을 이르는 말이고, 꿈이 있어야 청춘이니, 늘 꿈을 꾸고 있어야 진정한 오빠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갖은 수모를 겪으며 머리를 기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날렵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생으로 굶지도 않았을 테고.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진리를 깨닫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에, 가끔은 지친다. 생활이 나를 속여서 슬퍼질 때도 있고. 그럴 때마다 역시 오빠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난 이렇게 외친다. "꿈을 꾸자, 나는 진정한 오빠다"라고.


태그:#오빠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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