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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모내기철을 맞이 했지만 봄가뭄으로 물을 대지 못한 천수답을 바라만 보고 있는 농민들의 가슴이 타들어 가고 있다.

더욱이 옛날에나 있었던 이웃마을 주민간에 '물꼬싸움'이 벌어질 조짐이 보여, 가뭄을 대비한 행정의 세심한 수리시설 유지관리가 절실한 실정이다.

충남 예산군은 조례에 따라 농어촌공사 관리지역 외의 천수답 유지관리를 위해 '수리계'를 조직운영하고 있으나, 규약에 의한 합리적 운영보다 관행에 치우친 비효율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곳이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행정의 손길이 양수장 전기료 지원과 시설 개보수에 머물고, 수리계의 운영관리에까지는 미치지 않는데에 있다. 가뭄기에 발생하는 주민갈등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리시설을 이용하는 주민들간 이해관계에 행정의 적극적인 조정역할이 요구된다.

 광시 서초정2리에 사는 농민 양태준씨가 물을 대지 못해 둑새풀이 무성한 논을 가리키고 있다.
 광시 서초정2리에 사는 농민 양태준씨가 물을 대지 못해 둑새풀이 무성한 논을 가리키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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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 경로당에 삼삼오오 모여앉은 마을노인들은 모내기 걱정이 한 짐이다.

한 할머니는 "이젠 아들(백창기씨) 내외가 농사짓는데 30마지기는 물을 못 대 모내기를 못했다. 지하수를 퍼서 짓는데 그것도 먹을 물밖에 없다"고 걱정을 쏟아 놓았다.

이 마을의 논들은 천수답으로, 대부분 지하수를 뚫은 관정을 통해 논물을 가두고 있고, 가뭄기에 대비해 동산리 양수장(무한천 상류)에서 마을까지 농수로가 배설돼 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이 수로로 물이 넘어온 것이 이젠 기억에도 없다. 지금 건논자리와 숭골(마을지명)에는 물이 없어 난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 백현길 전 이장은 "5~6년 전에 농수로 보수공사까지 마쳤는데 그 짝(동산리 수리계)에서 물을 넘겨주지 않는다. 우리가 수세를 안줘서 그런 것 같은데…"라며 드러 내놓고 말못할 사정이 있음을 내비쳤다.

서초정2리는 23일 현재 물을 대지 못한 건답이 8만㎡(120여마지기)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장전양수장에서 서초정리로 물을 넘겨주지 못하는 사정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장전양수장 수리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홍승환 장전리 이장은 "장전·동산리에 사는 물을 받은 농가들은 평당 60원에서 80원까지 수세를 내서 그 돈으로 수감(수리계장) 보수를 주고, 정비를 하는 등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짝(서초정2리) 마을이 물을 가져 가려면 각종 비용을 공동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장전·동산리의 몽리구역(수리시설에 의해 물혜택을 입는 구역) 450여마지기 물을 댈려면 밤낮으로 뿜어야 하는데 너도나도 먼저 달라고 난리다"고 속사정을 설명했다.

군 행정의 적극적인 조정과 양수장 시설확충 등 대안이 요구되고 있다.

 “물 좀 주소” 햐얗게 핀 찔레꽃 옆에 양산을 쓰고 앉은 양수기가 메마른 우목천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물 좀 주소” 햐얗게 핀 찔레꽃 옆에 양산을 쓰고 앉은 양수기가 메마른 우목천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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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마을인 장신리 지역 농민들은 윗동네인 신흥소류리에 물이 있는데도 물을 대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박옥만 장신리 이장은 "아직도 백답(마른 논)으로 나자빠져 있는 자리가 수두룩하다. (신흥저수지)물은 안내려주고, 동네사람들이 데모라도 할 판이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하수 사정이 좋은 논자리는 물을 대서 모를 다 심었는데 물이 없어 써레질도 못한 농민들은 자연스럽게 물을 가둔 쪽을 원망하는게 인지상정이고, 물꼬싸움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윗마을인 신흥리쪽 주민들도 물을 풀지 않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신흥리 삼거리에서 만난 마을주민은 "물이라는게 위부터 대서 아래로 내려가는게 이치다. 우리 마을에서 저수지를 관리하는 만큼 장전골, 모냥골, 상짓말 등 윗고랑까지 물을 대고 난 뒤에 아랫마을로 내려야 한다는게 여기 주민들의 생각이다. 문제는 현재 주민들이 1~2마력 양수기로 물을 뿜어 올리고 있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앞으로 신속하게 물을 대고 아랫동네로 내려줄 수 있도록 군이 양수시설을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에 대해 한 지역인사는 "앞으로 봄가뭄이 길어져 저수지 물이 바닥을 보일 경우 이웃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간에 갈등이 깊어지고 민심도 사나워질 것이 분명하다. 벌써부터도 멱살잡이할 기세다"고 귀뜸한 뒤 "행정에서도 '가물 때는 으레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양수시설 지원과 주민관계 조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봄가뭄, #물꼬싸움, #수리계, #천수답, #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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