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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는 경기 북부에 있는 몇 안 되는 가볼 만한 절이다. 보광사 외에 한나절 코스로 다녀올 만한 절을 들자면 강화에 전등사와 정수사가 있고 남양주에 봉선사, 수종사가 있으며 가평에 현등사, 양평에 용문사, 사나사가 있다. 보광사가 지어질 때, 한강 이북의 6대 사찰로 꼽혔다 하니 지금도 그 명맥은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894년에 창건된 천년사찰이다
▲ 보광사 전경 894년에 창건된 천년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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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는 파주 광탄 고령산 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보광사에 가려면 됫박고개를 넘어야 한다. 됫박처럼 가팔라 됫박고개로 불렸다. 의주로 옛길 혜음령 고개와 더불어 예전엔 서울에서 북으로 가려면 첫 번째 마주하는 험한 고개였다.

혜음령 고개를 넘어서면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고려 때 지어진 '국립호텔' 격인 혜음원과 용미리석불입상이 있었는데 됫박고개에는 이에 상응하여 보광사가 있었다. 그러니까 보광사와 용미리석불입상은 동서로 나란히 하고 있는데 모두 험한 길을 떠나는 길손들의 편안한 휴식처와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대상이며 장소였다.

소령원의 원찰, 보광사

보광사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4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1200년 전에 터를 잡은 것이니 천년 사찰인 셈이다. 고려 고종 2년(1215년)과 우왕14년(1388년)때 중창, 삼창을 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광해군 14년(1622년) 때 다시 지어진 것이다.

보광사 10여 리 밖에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이 있다. 영조 때 보광사를 소령원의 원찰로 삼으면서 대웅보전, 광응전, 만세루 등을 신축내지 중수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수리를 하고 건물을 신축하기도 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되었다.

보광사가 사력(寺歷)에 비해 대접을 덜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눈여겨볼 만한 건물은 대웅보전과 만세루다. 만세루는 영조가 1740년 대웅보전과 광응전을 중수할 때 신축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격이 예사롭지 않다. 정면 9칸에 승방이 딸려있는 큰 건물이다. 규모와 생김새가 왕실원찰에서나 볼 수 있는 구조다.

누각 , 앞마당, 전나무가 있는 만세루영역이 보광사에서 가장 평온하다
▲ 만세루 영역 누각 , 앞마당, 전나무가 있는 만세루영역이 보광사에서 가장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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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만세루라 부르고 있지만 건물 앞에 걸려있는 편액에 '염불당중수시시주안부록(念佛堂重修時施主案付祿)'이라 적혀 있어 염불당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고 1898년(광무2년) 서울의 상궁 등이 시주해 중수했다. 원찰인 관계로 왕실의 발길이 잦았고 동행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터, 이 염불당은 상궁들이 예를 올리고 쉬어간 곳으로 추측된다.

보광사는 소령원의 원찰답게 영조와 관련이 깊다. 대웅보전 오른편 언덕에 어실각이 있다. 사방 한 칸짜리여서 아담하면서 앙큼하다. 여기엔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다. 어실각 바로 옆에 영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가 있다.

대웅보전 현판도 영조의 글씨라 전해진다. 광응전 편액은 추사의 글씨였다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그래도 보광사의 사력과 사찰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들이다. 대웅보전 공포에 수(壽)나 복(福)자가 들어간 길상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도 원찰에서 볼 수 있는 표현물이다.

공포에 새겨진 수(壽)와 복(福) 등의 길상문자는 원찰(願刹)에서 볼 수 있는 표현물이다
▲ 대웅보전 공포의 길상문자 공포에 새겨진 수(壽)와 복(福) 등의 길상문자는 원찰(願刹)에서 볼 수 있는 표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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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는 사찰 상징물의 보고

대부분의 절은 다양한 장식문양과 조형물로 불국의 이상세계를 구현하려 애쓴다. 그중 보광사는 원찰이라는 특수성이 있기도 하지만 다른 절보다 다양한 상징물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만세루 마루에 결려 있는 목어다. 목어는 법고, 운판, 범종과 함께 사물의 하나이다. 만세루의 품격에 걸맞은 아주 수준 높은 목어(木魚)다. 만세루중수(重修)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인 목어 형식인 용의 머리에 물고기 몸인 용두어신(龍頭魚身)모양을 하고 있다.

부릅뜬 눈, 수행자는 잠들지 말라는 의미다
▲ 목어 부릅뜬 눈, 수행자는 잠들지 말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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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부릅뜨고 있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는 밤낮으로 수행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는 목탁과 같은 이치다. 이런 의미가 있는 목어이니 눈을 크게 뜨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보광사의 하이라이트는 대웅보전이다. 대웅보전이 보광사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다. 1740년(영조16년)에 중건되고 1900년 전후하여 중창했다고는 하나 거의 새로 지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이때 모습이라 할 수 있어 대략 100여 년 된 모양이다.

보광사 대웅보전은 반야용선의 선실과 같은 곳이다
▲ 대웅보전 보광사 대웅보전은 반야용선의 선실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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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정면 두 기둥 위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이 있어 이 대웅보전은 피안의 극락정토로 향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높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제법 우람하게 서 있는 모습은 물 위에 떠 있는 반야용선을 보는 것 같다.

대웅보전 정면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은 대웅보전이 반야용선임을 상징한다
▲ 용두 대웅보전 정면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은 대웅보전이 반야용선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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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의 가장 큰 특징은 대웅보전의 벽에 있다. 다른 건물과 달리 보광사 대웅보전 벽은 목판으로 되어 있고 거기에는 여러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표현물로 대웅보전으로 부족했는지 아예 대웅보전 뒷벽 벽화에 반야용선을 그려 넣었다. 불교미술에서는 반야용선을 타고 열반의 세계로 향하는 모습이 자주 표현되는데, 보광사 벽화에도 여지없이 그려져 있다.

 피안의 극락정토로 향하는 반야용선도
▲ 반야용선도 피안의 극락정토로 향하는 반야용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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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벽화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뒷벽에 있는 연화화생도(蓮華化生圖)다. 연꽃은 우주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인식되어 불교에서는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往生)하는 화생(化生)의미를 지닌다. 만개한 연꽃 위에 보살과 동자가 앉아 있는데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만개한 연꽃 위에 보살과 동자가 앉아 있는데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 연화화생도 만개한 연꽃 위에 보살과 동자가 앉아 있는데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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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북쪽 벽에는 코끼리 벽화가 있다. 보통 코끼리 등에는 보현보살이 타고 있는데 흰 코끼리는 길상을 의미한다. 이 벽화는 보현동자가 코끼리 등에 타고 코끼리를 몰고 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마치 심우도(尋牛圖)에서 6단계인 기우귀가(騎牛歸嫁,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를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이 때 소도 완전히 흰색을 띠고 있다. 소와 동자가 완전히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흰 코끼리는 길상을 의미한다
▲ 흰 코끼리와 보현보살 흰 코끼리는 길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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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벽 아래모퉁이에 민화풍으로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약간 후미진 곳에 그려진 호랑이여서 호랑이의 용맹성을 이용하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려는 벽사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쪽 벽에는 위태천과 해태를 타고 있는 천인상, 신장상을 나란히 그려 넣었다. 보광사에 사천왕상을 대신하려는 듯하다.

대웅보전 뒷벽 외진 곳에 그려져 있어 호랑이의 용맹함으로 액을 물리치려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 호랑이 대웅보전 뒷벽 외진 곳에 그려져 있어 호랑이의 용맹함으로 액을 물리치려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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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 뒤에 있는 전나무 숲은 보광사 여행을 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전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어 잠시나마 속세를 떠난 기분이 든다. 그러나 계속해서 밀려오는 사람들은 속세의 우환이 되어 거기에 오래 머물도록 놔두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광사, #소령원, #연화화생도, #반야용선, #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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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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