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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패션왕>에서 과감한 PPL(간접광고)로 화제를 모았던 차가 있습니다. K9, 극중 패션 대기업 후계자 정재혁(이제훈 분)의 '애마'로 등장했던 이 차, 정식 출시가 되기도 전에 드라마를 통해 공개됐다는 점에서 특히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렇듯 자동차 마니아들로서는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차배우'에 대한 관심이 아무래도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전하는 목격담이 때로는 놀랍기까지 합니다. 그 놀라움은 세계인을 관객으로 삼는 할리우드 영화에 이르면 더욱 배가되는 것 같은데요.

국내 PPL에 대한 나름의 거부감도 세계를 무대로 할 때는 영 맥을 못 추더군요. 그보다는 반갑기만 하니,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정리해 봤습니다. 우리 '토종차'들의 할리우드 영화 진출사, 필모그래피라고 할까요. 더불어 최다 출연 '차배우'도 소개합니다.

사실상의 데뷔작 <본 슈프리머시>

영화 <본 슈프리머시>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화면을 '질주'한 EF쏘나타
 영화 <본 슈프리머시>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화면을 '질주'한 EF쏘나타
ⓒ Univers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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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 토종차의 필모그래피를 소개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부터, 바로 맷 데이먼 주연의 2004년 개봉작 <본 슈프리머시>입니다.

사실 그전까지 우리 토종차들의 할리우드 영화 진출은 미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리꾼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2003년 <이탈리안 잡>에서 싼타페, 역시 2003년 개봉작인 <분노의 질주 2>의 티뷰론 등 그야말로 찰나에 스쳐 지나는 엑스트라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인식을 단박에 깨뜨렸던 영화가 <본 슈프리머시>입니다. 그 '차배우'는 EF쏘나타, 영화 초반부 근 10분이나 화면을 질주하는데요. 등장하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마을에 숨어살던 제이슨 본이 추격자를 눈치채고 '여친'을 태우고 도망가는 장면, 혹시 기억나시나요?

그 때 추격자가 이용했던 차가 EF쏘나타였는데요. 특히 과민반응 아니냐고 묻는 '여친'에게 자신의 직감을 설명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진짜라고, 저놈이라고, 현대차"라는 대사까지 제이슨 본의 입에서 흘러나오기까지 합니다. 와우∼

톰 크루즈 앞에서 사라졌던 EF쏘나타

영화 <우주전쟁>에 등장하는 EF쏘나타
 영화 <우주전쟁>에 등장하는 EF쏘나타
ⓒ UIP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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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행인1'로 출연한 싼타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행인1'로 출연한 싼타페
ⓒ 20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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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효과 때문이었을까요. <본 슈프리머시> 이후 우리 '차배우'들의 할리우드 영화 출연은 꾸준히 이뤄집니다. 그 다음해인 2005년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에도 토종차는 나타나는데요.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나름 '스토리'가 있는 역할이었습니다.

도로를 뚫고 마침내 그 모습을 나타낸 외계인이 무차별적으로 광선을 쏴대는 장면, 혼비백산해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던 톰 크루즈가 떠오르시나요. 그 앞에서 더 빨리 도망가려고 도로 한 켠에 세워놨던 차에 올라타는 장면, 그 차가 EF쏘나타였습니다. 금방 사람과 함께 가루로 사라지지만요.

그 후로도 토종 차배우의 할리우드 영화 출연은 이어집니다.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 편집장(메릴 스트립 분)의 황당한 스테이크 심부름에 정신 없이 차도를 건너는 앤 해서웨이 옆 '지나가는 행인1'로 싼타페가, 2007년 <디스터비아>에서는 주연 샤이아 라보프 이웃집 아저씨의 차로 NF소나타가 역시 잠깐 스쳐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8년, 토종 차배우들의 할리우드 러시 

영화 <허트로커>의 EF쏘나타
 영화 <허트로커>의 EF쏘나타
ⓒ 케이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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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스맨> 중반에 나타나는 NF쏘나타
 영화 <예스맨> 중반에 나타나는 NF쏘나타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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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전작들에 비해 다소 부진했던 토종 차배우들의 활약은 2008년에 다시 활발해지는데요. 우선 아카데미 6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허트 로커>, 다만 '악역(?)'에 가까웠습니다. 이라크 무장세력이 설치한 폭탄이 설치된 승용차로 EF쏘나타가 출연합니다.

역할이 역할인 만큼, 그 긴장감만큼이나 꽤 오랜 시간, 그 모습을 '현대'로고까지 선명하게 보여주는데요. 결국 화염에 휩싸이지만...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이라크였던 만큼, 중동 지역에서 우리 토종차의 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출연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역시 2008년 개봉작 <예스맨>, 한국말 강습 장면으로 화제를 뿌렸던 영화답게 우리 '차배우'들이 두 차례나 등장하는데요. 주연 짐 캐리가 주유소에서 우연히 만난 앨리슨(주이 디샤넬 분) 스쿠터를 얻어 타고 가는 장면에서는 기아차 프라이드가, 영화 중반부 짐 캐리가 역시 앨리슨을 만나러 가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폭주'하는 장면에서는 NF쏘나타가 각각 출연합니다.

액션영화 <퍼니셔 2>에도 아반떼와 베르나가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확실히 2008년은 우리 차배우들에게 다작의 해였던 듯 합니다.

마침내 <인셉션>까지... 그리고 <본 슈프리머시>의 남은 이야기

영화 <예스맨>의 한 장면. 기아차 프라이드 뒷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예스맨>의 한 장면. 기아차 프라이드 뒷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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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사와 악마> 초반 등장하는 카니발
 영화 <천사와 악마> 초반 등장하는 카니발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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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는 2009년으로 이어집니다. 톰 행크스 주연의 <천사와 악마>, 영화 초반 랭던 교수(톰 행크스 분)가 교황 궁무처장(이완 맥그리거 분)을 만나고 문서고로 향할 때 두 '배우'가 동시 등장합니다. 삼엄한 경계 속에 수색견이 '킁킁거리는' 장면, 베르나가 '로고' 노출 역할을, 카니발이 몸통 노출 역할을 각각 맡아 출연하죠.

그리고 2010년!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인셉션>을 통해 토종 차배우의 위치는 크게 격상되기에 이릅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뤄진 숨막히는 추격전, 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운전하는 와인색 세단이 제네시스란 사실은 자동차 마니아들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반가움을 느끼기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할리우드 주요 출연작들을 살펴보니, 우리 '차배우'들 필모그래피의 분기점은 역시 <본 슈프리머시>였던 것 같습니다. <본 슈프리머시>의 EF쏘나타가 있었기에 <인셉션>의 제네시스가 가능했다고 할까요. 할리우드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 또한 EF쏘나타였던 것 같으니까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EF쏘나타가 <본 슈프리머시> 출연 당시, 현대차가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영화사 측 요청에 따라 차량을 인도 현지 법인에서 지원하기는 했지만, 영화 출연을 위한 금전적 후원은 없었다"는 것이 현대차의 공식 입장이었습니다.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던 셈입니다.

국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영화 <인셉션>의 제네시스
 국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영화 <인셉션>의 제네시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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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차배우들, CF 활동에 주력하나?

그래서 다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2010년 이후 토종 차배우들의 출연이 부쩍 줄었다는, 혹은 뚝 끊긴 것 같다는 것인데요. 제네시스의 <24> 출연이나 <메이크 잇 오어 브레이크 잇> 소렌토 출연 등 '미드' 활동도 2010년을 정점으로 잠잠한 듯합니다.

그 대신 올해 들리는 소식은 세계 1억 명이 시청한다는 미국 NFL 결승전 수퍼볼 광고에 현대차의 벨로스터가 출연했다거나 햄스터가 등장하는 기아차의 쏘울 광고가 미국에서 화제가 됐다는 정도입니다. 토종 차배우들, 이제는 CF 활동에 주력하는 걸까요.

현대기아차 관계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영화 출연과 관련 특별한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케팅 방향이 바뀌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문화의 힘과 그 가능성을 믿는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3>에 출연한 오렌지색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더 록>의 페라리, 그들 '슈퍼 차배우'가 남긴 인상은 꽤나 강렬했습니다. 그 '힘'은 CF보다 훨씬 오래 가고 훨씬 강력하다고 확신합니다. PPL이란 용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그런 '세계적 차배우'의 탄생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태그:#본 슈프리머시, #인셉션, #PPL, #현대기아차, #EF쏘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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