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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인권평화의 숲 콘서트 현장에 걸린 등.
 30일 인권평화의 숲 콘서트 현장에 걸린 등.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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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랑 남산 갈래?"

요즘 이성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사실상 데이트 신청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 서울타워에서 전망을 감상하고, 방송에서 유명해진 '사랑의 자물쇠'도 걸고, 고요한 숲속 길을 산책하듯 걸어 내려오는 데이트 코스가 떠오른다. 봄에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에 꽤나 괜찮은 단풍을 만들어 내니 지금의 '남산'은 설레는 단어가 됐다. 서울을 한 눈에 담고 가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여기서 시간을 30년 전으로 돌려보자. 너무 멀다면 20년만 돌려도 된다. 그 당시 저 말을 들었다면 똑같이 설렜을까? 아마 '서늘'했을 것이다. 그때 '남산'은 지금과는 다르게 무서운 곳을 대표하는 말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몸이 성해서 나올 수 없었고, 어떤 때는 죽어서 나오기도 했다. 군사독재의 상징과 같은 곳. 지금은 이름을 바꾼 국가정보원의 전 명칭 '안기부'가 그곳이다. 그때 '남산'은 곧 안기부였고 안기부가 곧 남산이었다.

30일 오후, 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남산에 잔잔한 음악들이 퍼져나갔다. 안기부 제1별관이 있던 자리, 지금은 서울유스호스텔로 바뀐 과거 본관 건물 인근 숲속에서 남산을 '인권평화의 숲'으로 바꾸기 위한 콘서트 '남산, 사람을 만나다'가 시작됐다. 어두운 과거가 다 씻겨 나간 듯 고요한 휴식의 공간이 됐지만, 너무 쉽게 잊혀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번 콘서트는 그때의 아픈 기억을 딛고 남산을 평화와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숲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인권재단 사람'에서 주최했다.

인권재단 사람은 지난달부터 남산 안기부 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 만들자는 청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청원서명은 6월 말까지 모아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현재 남산에 있는 서울시 별관이 신청사 완공으로 10월쯤 이전하게 되면 그 공간을 인권기념관으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관련자료 보기)

"안기부의 악몽 끝나지 않았다"

인권평화의 숲 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이 공연에 맞춰 박수를 치고 있다.
 인권평화의 숲 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이 공연에 맞춰 박수를 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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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숲 콘서트가 열린 남산 제1별관 터는 1961년 중앙정보부(이후 안기부)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의 시작이 됐던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통감관저터 뒤편으로 가파른 석조계단을 오르면 평평한 콘크리트 공터가 나타난다. 1970년대 중반 제 1별관이 들어섰고 이곳에서는 주로 통신 도·감청이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1995년 안기부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기면서 폭파해체돼 지금의 공터만 남은 상황이다.

이곳에 100여 명의 시민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무대에는 멍석이 깔렸고 성황당 나무를 꾸며 놓은 듯 오색 천이 걸렸다. 곳곳에 안기부에서 모진 고초를 겪은 이들의 얼굴이 담긴 등이 밝게 빛났다. 등에는 수많은 조작사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 있기도 했다. 내란 음모죄로 끌려왔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방북 후 탄압을 받았던 문익환 목사, 그리고 천상병 시인과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의 얼굴이 바람 불 때마다 일렁였다.

공연은 가수 '우리나라'의 무대와 정희성 시인의 시낭송으로 시작됐다. 이어서 가수 '강허달림'의 공연과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상임대표와 변영주 영화감독의 '인권토크'가 진행됐다. 콘서트에 온 시민들은 가수들의 공연에 흥겹게 박수를 치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호응했다. 또 어두웠던 시절을 담은 시를 낭송될 때면 모두 숨을 죽였다. 안기부 피해자 가족이기도 한 윤미향 정대협 대표가 당시를 회상하자 안타까운 탄식을 뱉기도 했다.

최근 마포구 성미산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개관한 윤 대표는 "1993년, 결혼한 지 5개월 28일 만에 남편이 안기부에 잡혀갔다"며 "지금 딸아이가 그때 뱃속에 있었는데 며칠을 찾아와서 면회하게 해달라고 울고불고 구르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의 남편 김삼석씨가 연루됐던 '남매간첩단사건'은 결국 안기부가 조작한 사건임이 이후 밝혀졌지만 윤 대표는 "아직 그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정대협을 후원하려고 하는 제일동포분이 있었는데 최근 '윤미향의 남편이 간첩이니 그를 후원해서는 안 된다'는 협박을 받고 아주 어려워했다"며 "벌써 20년이 지났고 그 때 뱃속에 딸이 이제 대학을 가는 마당에 모든 상처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 뒤로 또 다시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런 콘서트를 여기서 자주 열어서 서울시가 허가 안해도 자연스럽게 인권과 평화가 이야기되는 공간으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큰 박수를 받았다.

영화 <낮은 목소리> 시리즈로 위원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온 변영주 감독도 "이명박 정부가 잘못된 영화정책을 펼치면서 독립영화 전용관을 빼앗겼는데 이번에 100% 민간에서 기금을 마련한 '인디스페이스'가 광화문에 문을 열었다"며 "성미산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과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여기 인권과 평화의 숲을 연결하는 인권관광코스를 만들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서울시가 관리... 34년 공작정치 흔적도 없어

30일 인권평화의 숲 콘서트에 참석한 변영주 영화감독과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30일 인권평화의 숲 콘서트에 참석한 변영주 영화감독과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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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콘서트는 배우 맹봉학씨의 시낭송과 조성진 마임 작가의 퍼포먼스로 이어졌고 가수 이한철 밴드의 공연으로 절정에 달했다.

콘서트 중간 무대에 오른 자원봉사자 대학생 김미선씨는 "대학생으로 어떻게 하면 사회참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인권평화 숲 캠페인을 알게 됐다"며 "우리 젊은 세대는 남산하면 관광지로만 생각하고 안기부라는 어두웠던 역사가 있는 줄은 전혀 모른다, 우리가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때를 잘 알아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시민 모두가 이 캠페인에 함께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상임이사는 "안기부가 있던 남산을 기억하자는 취지를 문화적으로 알리기 위해 콘서트를 개최했다"며 "우리가 계속 상기하지 않으면 아픈 역사는 끝끝내 잊히기 마련이다. 이곳을 시민들이 그때를 잊지 않으면서도 인권과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재단 측에 따르면 박정희 군사정권의 가장 큰 무기였던 남산의 안기부는 가장 세력을 넓혔을 때 2만4800여 평의 부지에 총 41개동이나 되는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김영삼 문민정부 때까지 이어졌고 국가 체제를 지킨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인권유린을 일으켰다. 남산 안기부 부지에는 각종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으나 건물의 구조를 통해 그 용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을 뿐 34년간의 공작정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히 정리돼 있다.

서울시는 1995년 12월 27일 총 854억 원을 들여 남산 안기부가 사용했던 2만4880여 평의 토지와 41개동 1만3958평의 건물을 매입해 현재까지 관리운영하고 있다.


태그:#남산, #인권숲, #인권재단, #박정희, #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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